"사람이 먼저다", "사람을 향하라" 등 짧은 문장으로 온 국민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대표 카피라이터 정철이 조금 독특한 책을 냈다. 바로 <사람사전>. 이 책은 제목에서처럼 사전과 같다. ㄱㄴㄷㄹ... 순서대로 단어들이 등장하고 그 단어들을 정철식 방식으로 정의하고 있다. 일반적인 사전적 의미가 아니라 주관적이며 현실적인, 사람 냄새가 묻어나는 인간적인 단어의 정의들로 가득하다.

 

 

사전답게 책의 뒷부분에는 단어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색인이 별도로 되어 있다. ㄱㄴㄷㄹ... 순서대로 넘버링이 된 단어들을 차례로 만나게 된다.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밑줄을 긋고 오래 기억하고 싶은 문장들을 발견하게 된다.

이 책은 꼭 처음부터 읽을 필요가 없다. 사전적 책이니만큼 내가 찾아보고 싶은 단어를 찾아봐도 되고 펼쳐서 읽고 싶은 곳부터 읽어도 상관이 없다. 맨 마지막인 1234번째 단어가 궁금해 책을 다 읽기 전 먼저 살펴보았다. 마지막 단어는 #힘 그 설명을 읽으니 미소가 지어졌다.

"마지막 단어. 왜 힘이라는 단어가 이 책의 끝을 장식하는 영광을 안았을까. 책이 주는 게 힘이니까. 지혜라는 힘. 발상이라는 힘. 재미라는 힘. 감동이라는 힘. 위로라는 힘. 그대가 첫 페이지부터 한 장 한 장 넘겨 여기까지 왔다면 이런 말을 드린다. 힘드셨죠? 맨 마지막 단어는 과연 뭘까 궁금해 다 건너뛰고 여기에 왔다면 이런 말을 드린다. 힘내세요."

 

 

 

<사람사전>을 읽으며 가장 가슴 쿵-- 내려앉게 만들었던 단어 "가만히"

처음엔 이게 무슨 뜻이지? 했다. 문장을 조금 더 읽었을 때 그 의미를 생각하니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또한 #할머니라는 단어에서는

"보고 싶다. 보러 간다. 이렇게 글을 쓰고 싶다. 그러나 이젠 쓸 수 없다. 쓸 수 있을 때 썼어야 했다. 볼 수 있을 때 보러 갔어야 했다." 라고 적혀 있다. 내게는 엄마라는 단어가 그렇다. 이젠 보러 갈 수도 없게 되었기에 이 문장을 읽으며 울컥하기도 했다. 이렇듯 읽을 읽는 이에 따라 생각하고 느끼는 바는 다 다를 것이라 생각한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곳곳에서 여러 감정을 소용돌이에 빠질 단어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정철의 사람사전을 읽다 보면 역시 카피라이터라는 생각이 들 만큼 센스 넘치고 뭉클한 감동을 선사한다. 기존의 단어를 설명하는 딱딱하고 개념적인 사전적 의미가 아니라 엉뚱하면서도 기발한 정철식의 단어 해석은 보다 현실적이고 공감하기에 충분하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마음 따스함이 번졌듯 이 감동을 함께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 곁에 두고 가끔 펼쳐보며 따스한 감동의 날을 이어나가기에 좋은 책이다. 살아 있는 1234개의 단어들이 이 책을 읽는 이들에게 희망을, 따스한 위로를 전할 것이다.

 

 

 

 

#500 배려

입으로 격려. 마음으로 염려. 눈빛으로 우려. 박수로 독려. 하지만 배려를 가장한 충고는 구려. 간섭은 질려.


- P151

#19 가방

세사에서 가장 무거운 물건.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물건. 학교 갈 땐 책 한 권만 넣어도 무겁고, 여행 갈 땐 온갖 짐을 다 쑤셔 넣어도 가볍고. 가방의 무게는 기분의 무게. 스트레스의 무게. -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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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가볍고 두께도 부담스럽지 않은 책이지만 구병모 소설 <심장에 수놓은 이야기>는 결코 가볍게 읽히지 않는, 묵직하면서도 이 시대의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소설이다.

가정폭력, 직장에서 이루어지는 갑질과 폭력 등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겪을 수밖에 없는 생채기들을 곧 쉰을 앞둔 중년 여성 시미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또한 타투라는 소재를 가져와 냉혹한 현실과 폭력 등으로 시달리는 우리 세대들에게 판타지적인 내용으로 따스한 위로를 전한다.

상처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과연 어디 있을까... 누구나 상처를 안고 상처를 받으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 책에서는 시미도 그렇고 화인도 그렇고 모두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인물로 등장한다. 시미는 젊은 날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다 이혼을 통해 고통 속에서 벗어났지만 어린 아들을 두고 떠나와야 했던 아픔과 어미로서 곁에서 함께하지 못하고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으로 지금껏 살아왔다. 이혼 후 남편은 아이를 그녀에게 보여주지 않았기에 늘 그리움과 안타까움으로 몰래 아이를 지켜봐야 했던 그녀. 그렇게 아이는 어른이 되었고... 엄마의 존재가 오히려 불편하기까지 한 관계가 되었다.

......저기요, 로 시작한 말은 이렇게 이어졌다. 그게 있잖아요 사실은, 제가 가장 필요로 했을 때 있어주지 않으셨거든요 옆에, 일일이 말씀은 안 드리는데 제가 다 혼자 견뎠고 아버지를, 그래서 지금은 뭐랄까요, 이렇게 말예요 뒤늦게, 옷이니 밥이니 엄마 노릇하려고 좀 안 하셨으면 좋겠거든요. 그게 말하자면요, 그냥 노릇으로 보이는 게 아니라 행세처럼 여겨지거든요, 무슨 얘긴지 아시겠어요?

가족이 파괴되고 관계가 망가지고...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가 된 사람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시미와 같은 경험을 한 적은 없지만 내가 아는 사람 중에도 젊은 날 이혼을 하고 자식을 뺏겨 수십 년을 아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산 또 한 사람의 시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아픔과 그리움을 어떻게 다 말할 수 있을까... 고통의 시간을 견디며 아이가 성인이 되어 엄마를 이해해 주고 오해를 풀기 바라는 마음으로 견뎌왔을진대 정작 아들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을 때 그 어미의 마음은 어떨까... 또한 자식 입장에서는 그토록 엄마의 품을 그리워하고 필요로 했을 숱한 날들을 생각하니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미어지는 심정이었다.


시미의 시선으로 시미의 입장에서 이야기는 계속 전개된다. 그 와중에도 또 다른 사건들이 등장하게 되는데 과연 이 스토리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싶지만 결과적으로는 하나의 이야기로 모여진다는 사실.

환상과 현실을 오가는 묘한 느낌의 이야기와 폭력과 공포가 가득한 세상 속의 이야기가 팽팽한 긴장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예전에는 문신을 했다 라면 불량스럽게 여기거나 조직에서나 하는 것으로 치부했는데 요즘은 시대가 바뀌어 타투가 유행처럼 번져나가기도 한다. 자신을 표현하는 도구로, 무언가 삶의 의미를 부여한다거나 패션의 한 장르처럼 인정하는 자연스러운 하나의 문화가 되었다. 본문에서 피부에 새겨지는 건 자신의 심장에도 새겨지는 거라는 문장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지금도 온갖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 속에서 나를 지키기 위해서 어쩌면 구병모식 환상이 꼭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원하는 걸 말해주세요.

무엇이 당신을 돌봐줬으면 좋겠는지.



......같은 이유는 아니었다. 아이의 마음속에 시미가 들어섰던 적이 없음을, 아이를 너무 오랫동안 떠나 있었으며 그 간극을 돌이킬 수 없음을 인정해야 했다. 세상의 어떤 당위나 도리나 윤리도 모성을 자연의 순리로 강제할 수 없었고 이미 완전한 타인들을 교착시킬 수 없었다. - P134

실은 피부에 새겨진 건 자신의 심장에도 새겨지는 겁니다. 상흔처럼요. 몸에 입은 고통은 언제까지고 그 몸과 영혼을 떠나지 않고 맴돌아요. 아무리 잊은 것처럼 보이더라도 말이지요. -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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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운의 완벽한 고백 브라운앤프렌즈 스토리북 1
이정석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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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네이버 사용자라면 라인 프렌즈들은 너무나 익숙한 캐릭터일 것이다. 블로그에 사용하는 스티커로도 라인 프렌즈들을 만날 수 있으니 말이다. 처음엔 라인 프렌즈와 카카오 프렌즈가 헷갈리기도 했다. 그동안 아르테에서 카카오 프렌즈 시리즈로 하나씩 선보인 책들에 이어 이번에는 라인 프렌즈와 함께 스토리북을 출간했다. 카카오 프렌즈들은 그나마 이름도 다 알고 캐릭터도 익숙하지만 라인 프렌즈는 사실 브라운을 가장 좋아하기에 나머지 캐릭터들은 이름도 거의 모르고 그나마 코니나 샐리 정도만 알뿐이다. 라인 프렌즈에서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인 브라운의 이야기가 첫 번째 책으로 나왔다.

책장을 펼쳐보니 라인 프렌즈 캐릭터들의 이름과 특징들을 잘 설명해 두어 새삼 이름도 알게 되었다. 브라운만 알았지 비슷한 초코가 있다는 것도 몰랐었다. 그리고 새로운 사실은 브라운과 코니는 둘이 아주 좋아하는 사이라는 것. 스티커에도 보면 브라운과 코니가 항상 같이 있는 것이 많은데 다 이유가 있었다. 브라운과 코니는 절친 이상의 사랑하는 사이라는 것이다. 뭐든 알고 보면 좀 더 이해가 되듯 이 책을 다 덮고 나니 캐릭터들이 하나씩 이해가 되었다. 아직 첫 책이라 등장하지 않은 친구들이 많았지만 말이다.

 

책의 내용을 언급하기에 앞서 책의 디자인을 보자면... 표지가 마음에 들었다. 깔끔한 디자인과 책 모서리 부분이 라운딩 처리된 것이 깔끔하고 마음에 들었다.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라운딩 처리된 책에 묘한 매력을 느끼는 편이다. 책장을 펼치면 스티커 속 캐릭터들이 예쁜 모습으로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처음 라인 프렌즈샵에 갔을 때 마치 그 캐릭터들이 사는 집과 같이 꾸며둔 것을 보고는 여긴 라인 프렌즈들의 세상인가... 하는 생각을 했었었다. 그때 보았던 것들이 책장을 펼치며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했을 때 단순한 캐릭터가 아닌 현실 속 인물들처럼 느껴지기도 했었다. 처음에는 솔직히 내용에 집중이 잘 안되었다. 기존의 카카오 프렌즈 시리즈 책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정석 작가는 접근하고 있었다. 캐릭터를 중심으로 가슴 뭉클하고 때론 잔잔한 위로가 되어주는 짧은 글 스타일이 아니라 에피소드들을 넣은, 소설 방식을 택했기 때문이다. 처음엔 낯설고 캐릭터 몰입이 되지 않아서 어색하기만 했는데 조금 시간이 지나자 브라운이라는 캐릭터가 한 인물이 되어 점점 빠져들기 시작했다.

무뚝뚝한 듯 보이지만 섬세하고 배려심 많은 브라운은 좋아하는 코니의 감정을 살피는 것에도 무척 예민한 편이다. 코니가 우울해하거나 힘들어할 때 잘 이겨낼 수 있도록 격려하고 울적한 기분을 날려버리게 애써 노력하고 기분전환을 시켜준다. 잠들지 못하는 친구를 위해 보이지 않게 친구의 숙면을 위해 도와주는 모습하며... 취직에 실패한 초코를 위로하는 브라운만의 방식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마음껏 울 수 없는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마음껏 울 수 있도록, 핑계를 제공해 주는 브라운의 배려심은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양파 샌드위치를 만든다며 양파를 잔뜩 까고 썰게 해서 마음껏 울 수 있도록, 슬픔을 툴툴 털어낼 수 있도록 해주는 남다른 배려의 아이콘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브라운에게도 약점이 있었으니 바로 거절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자신 보다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다 보니 거절하지 못하고 그저 참고 받아들이기만 하는 브라운을 주변 친구들은 안타깝게 여기며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브라운에게 거절하는 법에 대해 모두가 마음 모아 훈련을 시킨다. 그리고 또 하나 브라운에게는 비밀이 하나 있는데 그 비밀은 직접 책을 통해서 알아보시라~

이 책은 친구에 관한 책이라고 생각된다. 라인 프렌즈 캐릭터들을 통해 보여주는 진정한 친구란 이런 것이다!라는 것을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소중한 것들을 지키며 세상을 지혜롭게 살아가는 따뜻한 이야기를 9개의 에피소드들을 통해 전하고 있다.

어떤 마음은 준비가 되지 않은 채로 전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있는 그대로.


- P154

‘어디든 함께할 친구가 있다면, 모험할 준비는 이미 끝난 게 아닐까.

집으로 돌아가는 길마저도 흥미진진한 모험 같을 테니까.


- P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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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
닐 셔스터먼.재러드 셔스터먼 지음, 이민희 옮김 / 창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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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내용을 살펴보지 않더라도 표지에서 이미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짐작이 갈 것이다. 그렇다. 이 책은 미국 서남부 지역의 단수 사태로 인해서 일어나는 물 부족 재난 소설이다. 책을 펼쳐 얼마 읽지도 않았는데 목마름을 느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지속되는 갈증을 불러일으키는 책이었다. 수도꼭지에서 물이 나오지 않았을 때만 해도 사태가 심각하게 흘러갈 줄 몰랐다. 하지만 일주일 정도의 단수 사태로 인해 혼동과 계엄령이 내려질 정도로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게 된다. 그 상황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인간의 본성과 윤리 그리고 극단적 상황에서 각자 대처하는 법 등 개개인과 나라와 가족 등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멀쩡했던 지구가 아프기 시작하고... 물 부족 국가가 된 우리나라. 이제 사람들이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환경에 대해 의식을 하기 시작했다. 방송에서 보았던 저 먼 이국땅의 낯선 풍경. 물이 없어서 고인 물을 떠서 먹고 빗물을 받아 생활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절로 얼굴이 찡그려졌을 것이다. '저걸 먹고 탈 나지 않을까?'라며 걱정도 하면서. 하지만 물이 없는 이들에게는 그마저도 생명수와 같을 것이다. 흔히 물만 잘 먹어도 건강해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리 몸에 있어서 물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기에 물이 없어 고통받고 고생하는 지구 반대편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어쩌면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모두에게 닥칠 수도 있을 일이 아닐까... 하고 상상을 해보기도 했었다. 그런데 <드라이>책은 나의 상상이 현실이 되는 듯 생생하게 물 부족으로 생겨나는 여러 문제들을 거침없이 보여주고 있어 더 공포스럽고 섬뜩한 느낌에 끝없는 갈증을 불러일으켰다.

일반적으로 재난 영화나 소설에서는 영웅이 있게 마련이고 어른들이 주축이 되어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이 책에서는 사실 어른들의 활약은 기대하기 어렵다. 오히려 이기적이고 나약한 모습으로 비칠 뿐이다. 10대 아이들 5명이 힘을 합쳐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생존기라 할 수 있다. 10대라고 보기엔 현명하고 냉철한 스타일의 얼리사의 부모는 물을 구하러 나갔다가 생존 여부조차 알 수 없게 되고 평소 언제 닥쳐올지 모를 재난에 대비해 철두철미하게 대비하고 살았던 켈턴의 부모는 정작 가장 빛을 발할 재난의 정점에서 하나의 실수로 무너져버리는 모습을 보인다. 결국 캘턴과 얼리사, 얼리사의 동생과 중간에 만나게 된 재키, 헨리까지 총 5명이 의기투합하여 물을 찾아, 생존을 위해 떠나는 여정을 보게 된다. 무책임한 정부, 물을 마시지 못하자 워터 좀비가 되어 악행을 저지르며 이기적으로 되어가는 사람들, 그 속에서도 함께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배려하고 질서를 지켜려는 자, 법과 규칙을 무시하고라도 사람을 살리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는 자...... 물 부족 사태로 인해 발생되는 사건 속에서 우리는 다양한 형태의 사람들을 보게 된다. 5명의 주인공들 속에서도.

이 책에서는 인간이 환경에 따라 얼마나 무서울 정도로 변화할 수 있는 존재인지 보여주고 있다. 때론 잔인할 수도 때론 착한 존재가 되기도 하는...

대략 일주일가량의 단수 사태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삶은 변했다. 살아남은 사람들에게도 삶은 이전의 삶과 이후의 삶으로 나뉠 것이다. 책의 말미 부분 얼리사가 했던 말들이 유독 마음에 남았다.

 

 

언젠가 닥칠지도 모를 묵시록적 이야기에 더 빠져들며 소설에 몰입할 수밖에 없었다. 소설 속 상황은 종결되었을지라도 책장을 덮으면서도 여전히 목마름이 느껴졌던 것은 상상이 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공포였다. 영화로도 제작이 된다고 하니 이 영화는 개봉하면 꼭 보러 가고 싶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리고 읽고 난 후 수도꼭지에 물을 틀 때마다, 싱크대 앞에 설 때마다 이 책의 첫 문장이 생각난다. 아마도 당분간은 지속될 것이다. 흘러가는 물이 배수로로 빠져나가는 것을 볼 때면 심한 죄책감이 드는 것도 이 책을 읽고 난 후유증이라 생각한다.

따지고 보면 새로운 보통날에 ‘보통‘은 없었다. 정녕 우리네 삶이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모두 지나간 일로 치부할 수 있을까? 영웅들이 평범한 소시민으로 되돌아갈까? 그림자들이 아무렇지 않게 사는 법을 배울까? 각자의 정신적 타격도 언젠가는 무뎌질까? 나는 엄마 아빠에 대한 악몽을 멈출 수 있을까?

물론 현실이 악몽처럼 끔찍하다는 사실은 별로 도움이 안 됐다.


- P442

인체의 60퍼센트가 물이라고 말한 사람이 재키였던가? 이제 나머지 요소는 똑똑히 안다. 재와 먼지, 슬픔과 비통........ 그러나 무엇보다도, 아니, 그런데도 우리를 하나로 묶어 주는 요소는...... 희망이다. 그리고 환희다. 우리 안에서 마르지 않고 샘솟는 모든 것이다.


- P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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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과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김종관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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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만들고 글을 쓴다는 김종관 작가의 에세이. 작가라는 말보다는 감독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릴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책을 읽으면서. 그의 영화 작품은 아직 만나보지 못하였지만 6부에 소개된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뭔가 조금은 다른 미장센을 선보일 것만 같은 기대감이 든 것이 사실이다. 행간의 의미와 여백이 많은 대사들. 소설을 읽다 보면 유난히 여백이 느껴지는 글들이 가끔 있다. 늘상 읽던 글과는 조금 다르기 때문에 글 속의 여백을 느낌과 동시에 글을 읽는 속도도 점점 느려지게 된다.

<하코다테에서 안녕>과 <밤을 걷다> 두 시나리오 작품을 읽으면서 짧지만 묘한 매력을 느꼈다. 특히 하코다테에서 안녕은 눈이 펑펑 내리는 하코다테의 풍경을 보면서 이 대사를 음미해 본다면 훨씬 더 느껴지는 감정이 다를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전 하코다테 거리를 걸으며 느꼈던 감정을 되살려 읽는 것으로 나만의 영화적 장면을 상상해 보는 시간이었다.

 

영화를 찍는 사람은 모든 것이 영화적 장면이 되는 상상을 할 것이다. 사진을 찍는 입장에서도 삶의 순간순간, 만나는 풍경마다 그것이 생각을 담아내는 도구가 된다. 눈으로 만나는 모든 풍경이 이야기가 되고 찰나의 순간을 담아내는 그 순간에도 감각과 감정까지 담기는 것이 사진이다. 이 책에서는 영상을 담아내는 감독만이 가진 감각적 시선과 감정들을 차분하면서도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마치 느린 영화를 보듯 말이다. 책 곳곳에 그가 담은 사진들을 보는 것도 글의 이해와 그가 담아내고자 하는 감정을 표현하고 있는 느낌이라 적절히 어우러진 글과 사진들이 참 조화롭게 느껴진다. 나는 사진 에세이를 좋아한다. 이 한 장의 사진을 왜 담았는지... 무엇을 생각하며 무엇을 표현하기 위해 셔터를 눌렀는지. 그것에 대한 이야기여도 좋고 그 사진을 찍는 과정에서 스친 생각이라든지 에피소드여도 좋다. 물론 이 책은 사진 에세이는 아니다. 그저 작가가 살면서 느낀 기록들을 풀어내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이어주는 도구적 역할을 하는 정도랄까.

저녁에서 밤으로 이어지는,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시점에 바람을 느끼며 읽으면 좋을, 차분하면서도 사색하기 좋은 책이다. 다소 느리게... 아무 페이지나 펼쳐놓고 느긋하게 작가의 감정을 따라 감성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좋겠다 싶다.

영화 이야기와 시네마테크 이야기 부분은 공감되는 점이 많아서 더 흥미롭게 읽었다.

 

 

 

 

 

사라지는 사이 생각해보니, 청춘이란 단어는 청춘을 지나고 있는 이들의 것이 아니라는 그런 생각.


-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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