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가볍고 두께도 부담스럽지 않은 책이지만 구병모 소설 <심장에 수놓은 이야기>는 결코 가볍게 읽히지 않는, 묵직하면서도 이 시대의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소설이다.

가정폭력, 직장에서 이루어지는 갑질과 폭력 등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겪을 수밖에 없는 생채기들을 곧 쉰을 앞둔 중년 여성 시미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또한 타투라는 소재를 가져와 냉혹한 현실과 폭력 등으로 시달리는 우리 세대들에게 판타지적인 내용으로 따스한 위로를 전한다.

상처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과연 어디 있을까... 누구나 상처를 안고 상처를 받으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 책에서는 시미도 그렇고 화인도 그렇고 모두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인물로 등장한다. 시미는 젊은 날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다 이혼을 통해 고통 속에서 벗어났지만 어린 아들을 두고 떠나와야 했던 아픔과 어미로서 곁에서 함께하지 못하고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으로 지금껏 살아왔다. 이혼 후 남편은 아이를 그녀에게 보여주지 않았기에 늘 그리움과 안타까움으로 몰래 아이를 지켜봐야 했던 그녀. 그렇게 아이는 어른이 되었고... 엄마의 존재가 오히려 불편하기까지 한 관계가 되었다.

......저기요, 로 시작한 말은 이렇게 이어졌다. 그게 있잖아요 사실은, 제가 가장 필요로 했을 때 있어주지 않으셨거든요 옆에, 일일이 말씀은 안 드리는데 제가 다 혼자 견뎠고 아버지를, 그래서 지금은 뭐랄까요, 이렇게 말예요 뒤늦게, 옷이니 밥이니 엄마 노릇하려고 좀 안 하셨으면 좋겠거든요. 그게 말하자면요, 그냥 노릇으로 보이는 게 아니라 행세처럼 여겨지거든요, 무슨 얘긴지 아시겠어요?

가족이 파괴되고 관계가 망가지고...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가 된 사람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시미와 같은 경험을 한 적은 없지만 내가 아는 사람 중에도 젊은 날 이혼을 하고 자식을 뺏겨 수십 년을 아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산 또 한 사람의 시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아픔과 그리움을 어떻게 다 말할 수 있을까... 고통의 시간을 견디며 아이가 성인이 되어 엄마를 이해해 주고 오해를 풀기 바라는 마음으로 견뎌왔을진대 정작 아들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을 때 그 어미의 마음은 어떨까... 또한 자식 입장에서는 그토록 엄마의 품을 그리워하고 필요로 했을 숱한 날들을 생각하니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미어지는 심정이었다.


시미의 시선으로 시미의 입장에서 이야기는 계속 전개된다. 그 와중에도 또 다른 사건들이 등장하게 되는데 과연 이 스토리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싶지만 결과적으로는 하나의 이야기로 모여진다는 사실.

환상과 현실을 오가는 묘한 느낌의 이야기와 폭력과 공포가 가득한 세상 속의 이야기가 팽팽한 긴장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예전에는 문신을 했다 라면 불량스럽게 여기거나 조직에서나 하는 것으로 치부했는데 요즘은 시대가 바뀌어 타투가 유행처럼 번져나가기도 한다. 자신을 표현하는 도구로, 무언가 삶의 의미를 부여한다거나 패션의 한 장르처럼 인정하는 자연스러운 하나의 문화가 되었다. 본문에서 피부에 새겨지는 건 자신의 심장에도 새겨지는 거라는 문장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지금도 온갖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 속에서 나를 지키기 위해서 어쩌면 구병모식 환상이 꼭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원하는 걸 말해주세요.

무엇이 당신을 돌봐줬으면 좋겠는지.



......같은 이유는 아니었다. 아이의 마음속에 시미가 들어섰던 적이 없음을, 아이를 너무 오랫동안 떠나 있었으며 그 간극을 돌이킬 수 없음을 인정해야 했다. 세상의 어떤 당위나 도리나 윤리도 모성을 자연의 순리로 강제할 수 없었고 이미 완전한 타인들을 교착시킬 수 없었다. - P134

실은 피부에 새겨진 건 자신의 심장에도 새겨지는 겁니다. 상흔처럼요. 몸에 입은 고통은 언제까지고 그 몸과 영혼을 떠나지 않고 맴돌아요. 아무리 잊은 것처럼 보이더라도 말이지요. -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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