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러시아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도스토옙스키.그가 스물여섯에 쓴 단편소설 『백야』는짧은 만남 속 사랑을 그린 이야기다.자신을 ‘몽상가’라 말하는 청년은 공허로 가득 찬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밤을 서성이다우연히 나스텐카라는 여성을 만나게 된다.두 사람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조금씩 가까워진다.갑작스럽게 찾아온 두 사람의 사랑은그렇게 덧없이 끝을 맺는다.러시아에서는 여름 동안 백야 현상이 찾아온다고 한다.늦은 시간임에도 환한 낮처럼 밝은 밤.그 위에 내려앉은 듯한 두 사람의 만남은 묘하게 신비로웠다.작품을 읽는 내내 고독이라는 밤이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봄이 오면 우리 페테르부르크의 자연은 갑자기 자신의 모든 권능과 하늘이 내려준 모든 생명력을 드러낸다. “(17p)차갑고 쓸쓸한 밤을 걷던 청년에게도나스텐카와의 만남은 봄처럼 찾아온 것이 아니었을까.나스텐카는 처음 만난 청년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내고,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청년은 어느새 사랑에 빠지고 만다.두 사람의 이야기는 생명력조차 잠들어버린 환한 밤을 배경으로꿈과 현실을 넘나들 듯 흘러간다.사실 짧은 만남만으로 이렇게까지 깊어지는 감정을 쉽게 이해하기는 어려웠다.몇 번의 만남으로 이렇게까지 마음이 깊어질 수 있을까.그런데 이상하게도 ‘백야’라는 특별한 시간 속에서는그 사랑이 조금은 가능할 것처럼 느껴졌다.무엇보다 이번 작품을 읽으며짧은 사랑 이야기보다 더 마음을 흔들었던 것은도스토옙스키의 문장이었다.다소 급진적으로 느껴지는 감정의 흐름을너무도 아름답게 표현해 내는 문장들에나도 모르게 빠져들고 있었다.청년의 말을 듣고 있으면어느 순간 내가 나스텐카가 된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이번 윌마 출판사에서는 작품의 제목인 『백야』 대신『우리는 가장 밝은 밤에 헤어졌다』라는 제목으로 출간했다.‘가장 밝은 밤’이라는 아이러니한 제목이두 남녀의 사랑이 어떤 결말을 맞이할지 조금은 암시하고 있는 것 같아 인상적이었다.짧은 만남, 그리고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하지만 짧았기에 오히려더 오래 기억되는 순간도 있는 것 같다.두 사람의 사랑 역시 그렇게 끝났지만그 밤의 기억만큼은 서로의 삶에 오래 남지 않았을까.밤인데도 어둡지 않은 아이러니한 밤,꿈과 현실의 경계가 흐려지는 시간.그 묘한 분위기 속에서도스토옙스키의 문장을 한 줄씩 천천히 건너가 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