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조각 시간 - 제22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성수진 지음 / 나무옆의자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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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부드러워지는 상처라는 시간.


유영은 자신의 실수로 위험에 처한 환자에 대한 죄책감으로 병원을 그만두게 된다.
이전부터 미국에서의 간호사 생활을 준비하던 그녀는 면접만을 앞둔 채 부모님이 있는 집으로 향한다.

그러던 어느 날, 중학생 시절 채팅으로 연락을 주고받던 델인 '경진'에게서 뜻밖의 메일이 도착한다.
힘든 시기를 함께해 주지 않았던 경진에게 서운함과 분노를 느끼면서도,
자신이 쓴 소설을 읽어 달라는 그 메일을 끝내 외면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야기는 유영과 경진, 두 사람의 관계를 따라 과거의 기억 속으로 천천히 흘러간다.


이 작품은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인물들의 감정을 섬세하게 쌓아 올린다.
유영은 자신에게서 먼저 세상을 떠난 언니라는 그림자를 겹쳐 보는 엄마로 인해 상처를 받는다.
엄마와의 어긋난 관계 속에서 외로움을 느끼면서도, 사랑의 빈자리는 할머니를 통해 조금씩 채워 나간다.

작품 속 인물들은 모두 각자의 상처와 상실을 안고 살아간다.
그러나 그 아픔을 쉽게 타인에게 드러내지 못한 채 마음 깊숙이 숨겨 둔다.
끝내 전하지 못한 마음들은, '소통의 부재'라는 또 다른 상처를 남기며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 인물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상처를 외면하고 감정을 숨기는 것만이 살아가는 방법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아지지는 않아. 그대로 같이 가는 거지."

이 문장은 작품을 관통하는 감정처럼 느껴졌다.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듯, 마음속 상처 역시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아픔은 쉽게 없어지지 않지만, 결국 우리는 그 고통까지 품은 채 살아가야 한다.

유영은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도 경진과 깊은 관계를 맺어 가고, 점차 심리적으로 그녀에게 기대게 된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유영은 경진에게서 오래전 떠나버린 언니의 흔적을 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시간이 흘렀음에도 언니를 잊지 못한 엄마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유영 역시 그 상실을 마음속에 품고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친구에게조차 털어놓지 못했던 속마음을, 경진에게는 조금씩 꺼내 보일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유리 조각 시간』이라는 제목 역시 오래 마음에 남는다.
누군가를 잃은 슬픔과 타인에게 받은 상처,
그리고 스스로를 옥죄는 죄책감은 저마다의 유리 조각처럼 삶 속에 박혀 들어온다.

날카로운 유리 조각은 금방이라도 손을 베일 듯 아프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모서리가 닳아 간다.
상처 역시 타인과 부딪히고,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아주 천천히 무뎌지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언젠가 빛을 받는 순간,
그 상처의 조각들조차 조용히 반짝이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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