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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북다 / 2026년 5월
평점 :
이토록 메마른 이야기가, 이렇게 오래 마음을 적실 줄은 몰랐다.
이 작품은 극심한 가뭄으로 모두 떠나버린 중국의 한 농촌 마을에서
눈먼 개 '장님'과 셴 할아버지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셴은 겨우 싹을 틔운 옥수수를 끝내 포기하지 않은 채 마을에 남는다.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없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그는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는다.
옥수수를 살려내기 위해 먼 길을 오가며 물을 나르고,
늑대에게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버티며, 자신의 마지막 힘까지도 식물 한 포기에 쏟아붓는다.
무너진 세계 속에서 옥수수를 향한 그의 집념은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집착처럼 보이기도 했다.
왜 그는 끝내 마을을 떠나지 못하는 걸까.
하지만 현실적으로 셴은 이미 너무 늙었고, 쇠약해져 있었다.
마을 밖으로 떠난다고 해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보장 역시 없었다.
그는 사실상 '끝'에 가까운 상황 속에서도, 옥수수라는 마지막 희망은 포기하지 않는다.
"나는 죽으면 축생인 너로 변해서 환생할 것이고,
너는 죽으면 사람인 나로 변해 내 어렸을 때 모습으로 환생할 거야.
그러면 우리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서로 의지하며 함께 살아갈 수 있을 게다."
그가 마지막 남은 물을 자신이 아닌 개와 옥수수에게 건네는 장면은 오래도록 마음을 남았다.
살기 위해서라면 개를 잡아먹을 수도 있었고, 옥수수를 포기하고 연못 근처로 거처를 옮길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절망만 남겨진 세계 속에서도 자신의 몫을 기꺼이 내어주며,
끝까지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다.
사실 읽기 전까지는 재난 속에 남겨진 노인과 개와 우정을 그린 이야기 정도로 생각했다.
그러나 짧은 분량과 담백한 문장, 그리고 고요하게 흘러가는 이야기는
오히려 더 깊은 먹먹함으로 다가왔다.
어쩌면 인간은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끝내 시간을 견디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셴 할아버지와 장님을 통해, 나는 '포기하지 않는 삶'이 끝내 무엇을 남기는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연(年) 월(月) 일(日).
결국 이 작품은 시간을 버텨내는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다.
쉽게 포기하고, 쉽게 지쳐버리는 오늘의 우리에게 어쩌면 꼭 필요한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이 작품은 훗날 '고전'이라는 이름 아래 오래 남아,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긴 여운을 이어가게 될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