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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세희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8
조해진 지음 / 현대문학 / 2026년 5월
평점 :
먹먹함에, 소리 없이 울부짖게 만드는 조해진 작가의 이야기.
그녀의 담백하면서도 섬세한 문장은 독자의 마음을 조용히 흔든다.
그 울음은 가슴 깊이 스며들지만, 끝내 밖으로 꺼내지 못한 채 입안에서 맴돌다 가라앉는 감정에 가깝다.
문장의 흐느낌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나는—내 마음은 이미 울고 있었다.
이 이야기는 자이니치(재일교포)의 삶,
일본과 한국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존재의 아픔을 드러낸다.
주인공 연주는 재일교포인 엄마와, 그녀의 후배인 '선생님', 그리고 그의 부인 '센세'의
과거를 하나씩 더듬어 간다.
도쿄의 한 사립대학에 다니던 시절, 나는 드물게도 역사를 전공했다.
그리고 4년의 시간 중 3년을 '재일교포의 삶'을 졸업논문 주제로 삼아 도서관을 드나들었다.
그러나 3학년 말, 본격적으로 논문에 매달려야 할 시기에
난 끝내 그 주제를 이어가지 못했다.
결국 다른 주제로 졸업논문을 완성하고 무사히 졸업했지만,
그때 놓아버린 이야기의 미련은 여전히 마음 깊은 곳에 남아 있다.
그런 나에게 <우리 세희>는 10년간의 일본 생활 속에서 만났던 수많은 재일교포 친구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돌이켜 보면 나는 '자이니치'라는 존재에 깊이 다가서지 못했다.
어쩌면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끝내 모른 채 지나쳐왔는지도 모른다.
정체성의 혼란, 텅 비어버린 마음의 고향, 그리고 끝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존재.
수십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도 또 다른 '세희'들은 삶의 방향을 잡지 못한 채 흔들리고 있었다.
작품 속 인물들은 모두, 텅 빈 가슴을 애써 움켜쥔 채 살아가는 듯하다.
그 공허는 그들의 삶 곳곳에 스며 있다.
역사라는 거대한 파도는 인물들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고,
그들을 평생 지워지지 않는 먹먹함 속에 남겨 둔다.
"부탁 하나 해도 될까?
우리 오마니와 아바이, 그리고 오빠들... 잊지 말아줄래?"
죽음을 앞둔 세희는 연주에게 마지막 부탁을 남긴다.
역사와 조국으로부터 자리를 빼앗긴 이들은 끝내 완전한 어른이 되지 못한 채 살아간다.
그리고 자신들이 잊혀질 것임을 알기에,
단 한 사람만이라도 '세희'라는 존재를 기억해 주기를 바란다.
과거라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은
문득 넓은 들판에 피어난 들꽃을 떠올리게 했다.
이름도, 존재도 쉽게 기억되지 못하는 들꽃 같은 삶.
문득 작가의 삶이 궁금해졌다.
그녀는 어떻게 매번 이렇게, 스러져가는 존재들과 잊힌 사람들을 우리 앞에 다시 불러낼 수 있을까.
세희의 부탁처럼, 우리가 잊지 않기를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마음에 스며든 먹먹함이 끝내 소리 없는 울부짖음이 되었고,
나는 이제, 그들을 잊지 않기 위해 이 이야기를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