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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캐리어 안에 든 것
듀나 지음 / 퍼플레인(갈매나무) / 2025년 7월
평점 :
달라진 세계 속에서도,
문제는 그대로 남아 있다.
인간이 사라진 미래의 모습을 다양한 방식으로 그려낸 작품.
나에게 듀나 작가의 첫 작품이 된 이 소설집은, SF 장르가 지닌 또 다른 매력을 새롭게 느끼게 했다.
우리는 흔히 미래에는 지구를 떠나 다른 행성에서 살아가는 일이 가능해질 것이라 상상한다.
과학의 발전은 우주까지 확장될 것이고, 인간에게 불가능은 없을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와는 다른 방향을 택한다.
인간이 완전히 사라졌거나, 혹은 극소수만 살아남은 채 신인류가 이끄는 세계를 그려낸다.
흥미로운 점은, 그렇게 달라진 세계 속에서도 그들의 삶이 지금의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다.
사회적 불안, 타자에 대한 차별, 그리고 끝내 사라지지 않는 욕망까지-
그 모습은 결국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닮아 있다.
여러 작품 중에서도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항상성」이다.
AI 정치인들이 활동하는 세계를 배경으로,
청소년의 권리를 대변하는 AI 의원 '채잎새'는 청소년으로서의 사고를 유지하기 위해 또래로 구성된 팀과 함께 활동한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성욕이 부여된 AI 의원이 성범죄를 저지르는 사건이 발생하고,
사람들은 그 책임을 어디까지 AI에게도 물어야 하는지를 두고 갈라진다.
채잎새 팀의 면접을 보게 된 시나는,
그 책임은 AI 자체가 아니라 그를 구성한 팀과 소속된 정당이 져야 한다고 말한다.
이 장면은 자연스럽게 질문으로 이어지는 듯하다.
AI가 인간의 역할을 대신하는 시대에, 우리는 어디까지 책임을 나누어야 하는가.
그동안 나는 AI의 발전과 그로 인해 달라질 미래에만 주목해왔지만,
이 작품은 그 이면에 존재할 문제들을 정면으로 드러낸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새로운 형태의 책임과 윤리는 더욱 복잡해질 것이라는 사실을 서늘하게 체감하게 만든다.
물론, 이 소설집이 마냥 쉽게 읽히는 작품은 아니었다.
각각의 세계관은 매우 치밀하고 깊이 있게 구축되어 있지만, 오히려 그 점이 몰입을 방해하기도 했다.
짧은 분량 안에 많은 설정이 압축되어 있다 보니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는 데 다소 버겁게 느껴지는 순간도 있었다.
조금 더 친절한 설명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보여주는 상상력과 문제의식은 분명 인상적이다.
SF 장르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라면,
조금은 천천히, 혹은 다른 작품을 먼저 접한 뒤 읽어보는 것도 좋은 선택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