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천둥의 밤을 지나온 자들이어서 - 4·3 레퀴엠
허영선 지음 / 마음의숲 / 202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눈이 아닌, 마음으로 읽는 시.
남겨진 사람들의 기억을 담아낸 기록.

1947년 3월 1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수많은 제주 주민들이 희생된 '제주 4.3 사건'. 이 시집은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기억과 아픔을 시로 풀어낸 기록이다. 슬픔과 억울함, 그리고 떠나간 이들을 향한 그리움이 조용히 스며 있다.

말로는 다 담아낼 수 없는 고통의 기억을 시로 남겼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단순히 감상이 아니라 '기억의 보존'에 가깝다. 꾸며내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덤덤하게 적어 내려간 문장들은 오히려 더 깊은 슬픔을 전한다. 그래서인지 시 속 감정은 과장되지 않지만, 더욱 또렷하게 다가온다.

이 시집의 시들은 울분을 터트리며 우리에게 알아달라고 외치지 않는다. 대신 조용히 눈을 감은 채, 곁에서 속삭이듯 말을 건넨다. 억울하게 떠나간 이들과, 남겨져 살아가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저 들어달라고. 그 낮은 목소리는 어느 순간 흐느낌이 되어 마음을 적신다.

어둠이 붉게 물들던 그 밤을 우리는 온전히 알 수 없다. 다만 그들이 남긴 시와 목소리를 통해,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다.

늦은 밤 펼쳐든 시집은, 처음 앉았던 자세 그대로 나를 붙잡아 두었다. 시 한 편, 한 편이 잊혀져 가는 기억을 붙들고 놓지 않으려는 듯 다가왔다. 그렇게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먹먹함을 넘어 심장이 잠시 멎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남겨진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왔을까. 텅 빈 가슴을 안고, 어떤 밤들을 견뎌냈을까.

"아이들은 곡을 모르니 곡곡
아이고 아이고 모르니 곡곡
곡소리 하라니 곡곡
70년 전, 그랬다
10살 미만 상주들"(북촌이야기,104p)

이 구절은 마음을 짓누르는 듯했다. 어린아이들은 곡조차 알지 못한 채 상주가 되어야 했고, 부모와 형제를 잃은 채 타인의 자식으로 살아가야 했다. 산이 지켜줄 것이라 믿었던 사람들 역시, 결국 아무것도 지켜내지 못한 채 소중한 이를 떠나보내야 했다.

남겨진 아이들과 여자들.
그들이 견뎌야 했던 시간은, 우리가 쉽게 헤아릴 수 없는 무게로 남아 있다.

그들은 어떤 마음으로 봄을 기다려왔을까.
나는 늘 설레는 마음으로 봄을 기다려왔지만,
올해는 조금 다른 마음으로 그 계절을 맞이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