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이는 모두 날아오른다
요아힘 마이어호프 지음, 박종대 옮김 / 사계절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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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 정상과 비정상, 과거와 미래.
우리는 언제나 두 갈래의 경계 위에서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간다.
그 경계 위에서 우리는 사랑하고, 기뻐하고, 때로는 무너지고 다시 일어선다.
요아힘의 이야기는 바로 그 불안정한 경계에서 시작된다.


어린 요아힘은 어린이·청소년 정신병원의 원장인 아버지와 어머니, 두 형과 함께 병원 한가운데에 있는 집에서 자란다. 밤마다 들려오는 환자들의 비명과 자기만의 세계에 갇힌 사람들 사이에서의 일상은 평범하지 않다. 그러나 아이인 요아힘에게 그것은 두렵기보다는 익숙하다. 그는 삶과 죽음, 정상과 비정상의 틈을 특별히 구분하지 않은 채 그 경계 안에서 성장한다.


소년의 눈으로 바라본 병원의 풍경은 기이하면서도 묘하게 따뜻하다. 비명을 질러 목이 쉰 환자들과 합창 연습으로 목이 쉰 엄마가 나란히 존재하고, 주지사를 맞이하기 위해 비를 맞으며 노래하는 환자들 곁에서 아버지는 넘어진 주지사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온다. 어른의 시선이라면 불편했을 장면들이 아이의 시선에서는 그저 하루의 한 장면처럼 흘러간다.

"내가 기억의 꾸러미를 다시 하나하나 풀어 꺼내놓을 때 ... 비로소 나는 현재의 삶에 대한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479p)

이 문장은 작품의 모든 것을 드러낸다. 작가는 과거를 단단한 사실로 붙잡아 두지 않는다. 오히려 과거는 뒤섞이고 흐려지며 다시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기억을 그대로 붙잡아 두기보다 다른 모습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죽은 사람들은 기억 속에서 새로운 존재로 살아난다. 그리고 그때서야 우리는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지금의 삶을 선택할 수 있게 된다.


'기억'이라는 틀 안에서 사람은 때로는 날아오르고, 때로는 머무르며, 어떤 순간에는 다시 살아나는 존재처럼 보인다. 한 환자는 요아힘을 죽은 작은 형으로 착각하지만 곧 죽은 것이 형임을 알아차린다. 그 장면을 보며 요아힘은 이렇게 생각한다.
"그날 나는 페르디난트에 의해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했다."(393p)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견딜 수 있는 방식으로 기억을 만들어 간다. 중요한 것은 그 기억을 완벽한 진실로 믿는 것이 아니라, 기억이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래야만 현재를 나아갈 수 있는 길을 과거가 만들어줄 수 있다.


죽음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종지기의 종을 발견했던 어린 요아힘은 작은 형과 아버지의 죽음을 겪으며 점점 죽음을 알게 된다. 이해할 수 없던 감정은 떠나간 이들을 기억 속에 붙잡아두는 과정을 거쳐, 결국 그들을 놓아주고 자유로운 존재로 바라보는 단계에 이른다. 그는 죽은 이들은 기억에 묶인 존재가 아니라, 자유롭게 날아오를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게 된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필요한 것은,
결국 죽은 이들을 기억의 틀로부터 자유롭게 풀어주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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