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즈드라비
조수필 지음 / 도서출판이곳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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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 골목 한편에 위치한 한식당 '마민카'의 중심으로, 각자의 사연을 품은 이들이 만나 '인연'이라는 실타래를 조금씩 풀어나가는 이야기.

어머니의 죽음 이후 방황하던 해국은 프라하행을 선택하고, 그곳에서 작은 식당 '마민카'를 운영하며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기 시작한다. 이혼의 아픔을 뒤로하고 여행길에 오른 수빈, 미래를 위한 투자로 프라하로 유학 온 단비, 어린 시절 프라하로 해외 입양된 나준, 그리고 행방불명된 누나에 대한 깊은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지호까지. 마민카 를 매개로 우연히 얽힌 이들은 각자의 속도로 서로의 상처를 들여다보고, 조심스럽게 보듬으며 회복해 나간다.

낯선 도시 프라하와 파리를 배경으로 흘러가는 이들의 이야기는 잔잔하면서도 따뜻하다. 담담한 어조로 이야기를 건네는 작가의 문장들은 하나하나 프라하의 밤하늘을 떠올리게 하고, 마치 한 편의 로맨틱한 영화를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을 안겨준다. 특히 수빈과 해국이 손을 잡고 걷던 골목 장면에서는, 독자인 나 역시 그 공간 어딘가에 함께 서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우리에게는 낯설게만 한 프라하라는 공간을 통해 인물들은 스스로를 돌아보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며 상처를 치유해 나간다. 그래서인지 이국적인 배경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이야기는 낯설면서도 가깝게 다가온다.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주어진 하루를 충실히 겪어내는 것. 무리하지 않는 일상 속에서 밀알 같은 기쁨들을 발견하는 것. 그렇게 또 살아가고 사랑하는 것. 그러다 또다시 길을 떠나더라도 그것 또한 기꺼이 삶으로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야말로 인간인 우리가 부여받은 소명이자, 생의 유일한 나침반은 아닐까."(258p)

작가의 이 마지막 문장은 작품의 모든 것을 담아낸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다. 우리의 삶은 각자에게 주어진 하루를 성실히 살아내고, 그 안에서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발견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 삶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수많은 인연을 만나고, 영원할 것 같던 사람도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곁을 떠나 저 멀리 흘러가 버리곤 한다. 곁에 남아 있는 인연도, 손아귀를 빠져나가 버린 인연도 모두 소중한 존재들임을 이 소설은 조용히 일깨워 준다.

'나 즈드라비'는 체코어로 '건강을 위하여'라는 뜻을 지닌 말이다. 제목처럼 소설 속 인물들은 과거의 상처로부터 조금씩 건강해지며 한 발 앞으로 나아간다. 이 작품을 읽는 모든 독자들 또한 아낌없이 사랑하고, 아낌없이 행복해하며, 각자의 삶에서 자신만의 '나 즈드라비'를 건배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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