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창 (10만 부 기념 블랙 에디션)
구병모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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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적 보육원에서 자란 ’아가씨‘는 타인의 상처를 통해 그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겉으로는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오언은 사실 어둠의 유통과 관련된 일을 하며 부를 축적해온 인물이다. 어느 날 그는 ‘아가씨‘의 능력을 알게 된고, 보육원을 나와 오갈 곳 없이 살아가던 그녀는 한 통의 연락을 계기로 오언과 함께 하는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감금에 가까운 생활이 이어지는 요새 같은 공간에서, 아가씨는 여러 인물들과 얽히며 살아간다. 위태로운 인물들의 모습과 뒤엉킨 관계들 속에 숨겨진 진실은 과연 어떤 얼굴로 그들 앞에 드러나게 될까.


☕️ 2025년을 뒤흔든 작품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절창』을, 나는 아끼고 아껴 두었다가 뒤늦게 꺼내들었다. 내용에 대한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린다는 이야기를 이미 알고 있었기에, 꽤 복잡한 마음으로 책을 들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작품의 95%를 읽는 동안에도 ’이 작품의 매력을 나만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닐까‘라는 의문이 계속해서 들었다. 그런데도 인물들의 감정을 곱씹다 보니, 이유를 알 수 없는 슬픔이 서서히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 아가씨의 능력은 완전하지 않다. 어떤 때는 빗나가고, 어떤 때는 반쯤만 맞아떨어진다. 결국 ‘타인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라는 히어로물에서나 나올 법한 설정조차도 이 작품 안에서는 불완전하게 작동한다. 능력이 있다 해도 타인의 마음과 감정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소설은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아가씨 역시 자신이 그 능력을 선한 의도로만 사용하지 않았음을 알고 있고, 그래서 하느님이 그 능력을 거두어 가려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담담하게 말하지 않는가.



❝상처는 필연이고 용서는 선택이지만, 어쩌면 상처를 가만히 들여다봄으로 인해, 상처를 만짐으로 인해, 상처를 통해서만 다가갈 수 있는 대상이, 세상에는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 (344p)

☕️ 아가씨에게 있어 오언은 어떤 존재였을까. ‘상처를 통해서만 다가갈 수 있는 대상‘이라는 말은 희극일까, 비극일까. 아가씨가 끝내 보려 하지 않았던 오언의 생각과 감정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지만, 어쩌면 그 사실을 오언 자신은 끝까지 몰랐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오언이 바랐던 것은, 삐뚤어졌지만 그 나름대로 올곧았던 자신의 마음을 알아봐 주길 바라는 단 한 사람, 아가씨였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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