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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우 없는 세계
백온유 지음 / 창비 / 2023년 3월
평점 :
🏷️ 인수는 가출청소년 이호를 만나며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게 된다. 가출청소년이었던 시절의 트라우마로 인해 견딜 수 없는 추위를 느끼고, 이호에게서 과거의 자신을 본다. 결국 인수는 이호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함께 생활하게 된다.
인수는 폭력적인 가정에서 도망쳐 떠돌던 중 성연과 경우를 만나게 된다. 폭력적이고 거친 성연, 그리고 바르고 올곧은 모습의 경우와 함께하며 ‘우리집’이라 불리는 가출팸들의 공동거주지에서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 A의 갑작스런 죽음과 시신 처리, 그리고 경우의 자수로 인해 ‘우리집’의 아이들은 냉혹한 현실 속에서 속절없이 휘말리게 된다.
☕️ 도둑질이나 성매매 같은 방법으로 돈을 버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경우는 식당 아르바이트를 하며 성실히 돈을 모았고 인수의 잘못된 행동을 말렸다. 그런 경우의 모습을 보며 인수는 말로 설명하기 힘든 불편한 감정을 느낀다. 그 감정의 이유를 경우와 함께 식당 일을 하게 되면서, 인수는 깨닫게 된다.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경우만의 특징이랄까 매력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으나 나는 경우 곁에서 나쁜 짓을 하지 않고도 살아갈 방법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97p)
경우에게는 소위 ‘가출팸’ 아이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뒤틀림‘이 없었다. 그는 엄마와 함께하는 미래를 꿈꾸며 착실하게 돈을 모았고, 그 모습은 유난히 밝은빛을 띄고 있었다. 어쩌면 인수는 그 빛을 동경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경우가 사라진 세계에서야 비로소 ’경우‘라는 존재를 되돌아보게 된 인수. 자꾸만 외면해왔던 경우의 따뜻한 관심과 손길을, 이제는 이호를 통해 자신의 묵은 마음을 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 소설 속 아이들은 가정 폭력, 불우한 환경, 부모의 부재 등 저마다의 아픔을 안고 있다.
”아빠에게 조금 더 이해 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거든요. 내 방에서 자고 싶고, 고양이를 쓰다듬고 싶어요.“(246p)
아이들이 바랐던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조금의 이해, 조금의 손길, 조금의 관심. 그러나 그 작은 결핍은 아이들을 거리로 내몰았고, 그들이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행동들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이를 너무도 현실적으로 그려내기에 더 마음이 시리다.
”부디 한번 더 기회가 주어지기를. 햇볕을 쬐면 정화되기를. 경우 없는 세상에서도.“(262p)
경우는 아이들에게 ’바른 길로 이끄는 손길’이었다. 그 손길이 끝내 아이들에게 온전히 닿지 못해 모두 흩어지고 말았지만, 어른이 된 인수만큼은 ‘경우‘와 같은 삶을 살아가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