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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8월
평점 :
🏷️ 도마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이후 체포와 수사
그리고 처형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을 따라가는 이야기다.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기 위해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하고, 그곳에서 우연히 재회한 우덕순과 함께 거사를 준비한
다. 공모라고는 하지만 둘 사이에는 어떤 말도 오가지 않는다.
눈빛만으로 서로 감당해야 할 자신들의 사명을 확인하며 묵묵히
준비한다. 하얼빈역에서 이토 저격에 성공한 안중근은 저항 없이
체포되고, 수사와 재판을 거쳐 여순감옥에서 생을 마감한다.
🏷️ “이토는 철도를 좋아한다는데, 하얼빈역 철길은 총 맞기 좋은
자리다. 나도 철도를 좋아한다. 쏘기도 좋은 자리다.”(117p)
안중근은 이토를 저격해야 한다는 사실을 자신의 ‘사명’으로
받아들인다. 그 모습은 침착함과 차분함을 넘어 감정이 제거된
기계와도 같다. 그 침착함 덕에 그는 목표를 이루고, 법정에서도
끝까지 당당한 태도를 유지한다. 일본인들이 자신들 의도대로
재판을 이끌려 할 때, 안중근과 우덕순은 솔직함으로 질문에
대응한다. 그러나 둘의 뜻은 결국 ”극악한 인간말종이 저지른
범행“으로 왜곡된다.
심지어 순종은 메이지에게 ”오늘 이토 공작이 하얼빈에서 흉악
한 역도에게 화를 당하였다는 보고를 받고 통분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171p)라고 위로의 전문을 보내며, 그들을 역적
으로 규정한다. 그들의 행동은 일본의 눈에는 오직 그런 모습으
로 남는다.
☕️ 안중근이 자신의 뜻을 이루기까지, 그 뒤에는 묵묵히 그를
지켜주는 가족들이 있었다. 특히 아내 김아려의 삶은 처절할
만큼 고단했다.
”……이토가 죽었으니까…… 저이도 곧 죽겠구나……“(199p)
라고 담담히 말하는 그녀는 남편의 거사 이후 가족들과 함께
러시아 극동 지역, 만주, 상해를 옮겨다니며 살아간다. 조국을
위해 가족을 뒤로한 남편을 원망하지 않았고, 안중근 역시 그녀
가 그럴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어떻게 그런 태연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나라를 위해 가족을 버린 남편을
단 한 번도 원망하지 않았을까?
지금까지 나는 안중근을 ‘조국을 빛낸 인물’로만 바라봤지만,
그의 삶 뒤에 있는 그녀의 고통과 삶을 떠올리자 너무 안타까웠
다.
☕️ ”이토를 살려놓고 이토를 죽이는 이유를 이토에게 말해주었으
면 좋았겠는데 이토가 죽었다면 이토를 죽인 이유를 이토에게
말해줄 수가 없겠구나.“(193p)
안중근은 목표를 달성했다는 기쁨보다도, 남겨질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보다도 이토에게 “왜 죽여야 했는가“를 직접 설명하
지 못했다는 사실에 비통함을 느낀다. 그는 명확한 이유가 있으
며, 그 이유는 반드시 이토 본인이 알아야 하다고 믿었기 때문이
다.
이토는 죽어 그 이유를 알지 못하지만, 살아남은 사람들과
후세는 그 뜻을 알고 있다. 안중근의 희생과 업적이 지금 우리가
누리는 현실을 가능하게 했다는 사실을, 지금의 대한민국을
보라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