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의 여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5
아베 코보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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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 선생인 한 남자는 곤충 채집을 위해 사구로 향한다. ‘모래‘라는 생명이 살기 힘든 환경에서 살아남은 곤충을 채집하여 최초의 발견자로서 자신의 이름 ‘니키 준페이‘를 남기기 위함이었다.
모래 위에 존재하는 기묘한 마을에 도착한 그는 마을 사람들의 안내로 모래 구덩이 아래, 혼자 사는 여자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게 된다. 그러나 다음 날, 구덩이를 오르내릴 수 있는 사다리가 사라졌다는 것을 발견하고 자신이 감금되었음을 알게 된다. 그는 집과 마을이 흘러내리는 모래에 파묻히지 않도록 매일 모래를 퍼내야 하는 노동을 강요받게 된다.
남자는 탈출을 시도해 잠시 성공하지만 곧 다시 붙잡혀 구덩이로 되돌아오게 된다. 이후 모래를 퍼내는 삶에 점차 적응해 가며, 구멍을 벗어나고 싶어 하면서도 스스로 빠져나갈 수 있는 순간에조차 나가지 않는, 일종이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상황에 잠식되어 간다.


🏷️ “이렇게 하여 아무도 그가 실종된 진정한 이유를 모르는 채 7년이 지나, 민법 제30조에 의해 끝내 사망으로 인정되고 말았다.”

이 작품은 남자가 실종된 끝에 법적으로 사망 처리가 되었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덕분에 독자는 남자가 ‘모래‘라는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환경 속에서 어떻게 무력화되어 가는지, 그 ‘과정’에 더욱 집중하게 된다. 남자는 처음에는 무의미한 노동에 격렬하게 저항하지만,

“막상 일을 시작해 보니, 생각했던 것만큼의 저항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이 변화의 원인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153p)

라고 스스로 의문을 품을 정도로 점차 비정상적인 상황을 받아들이는 자신을 발견하고 놀라게 된다.


☕️ 작품 속 모래의 세계는 우리의 현실을 그대로 비추는 거울처럼 느껴진다. 인간 세계는 계급과 차별과 같이 개인의 노력으로는 바꾸기 어려운 부조리함을 품고 있으며, 그 안에서 우리는 퍼내도 다시 쌓여만 가는 모래처럼 무의미한 노동의 반복 속에 놓인다. 더 나은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몸부림치지만, 어느 순간 현실에 익숙해져 주저앉게 되는 인간의 모습을, 작품은 남자의 모습을 통해 보여준다.

☕️ 남자가 동료 선생의 별명인 ‘뫼비우스의 띠‘를 자주 언급하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안과 밖의 구분이 없는 독특한 구조의 도형처럼 모래 위의 마을과 우리의 현실 역시 경계가 모호하고 서로를 닮아 있다. 결국 남자의 삶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반복되고, 빠져나올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끝내 제자리로 돌아온다.


☕️ 그는 마침내 자신을 모래 위 세상으로 나아가게 해줄 사다리를 보게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망치지 않는다. 이는 결국 자신을 모래 속 세계에 묶어두는 선택을 스스로 했다는 의미가 된다. 처음에는 불합리하게만 보이던 공간이 어느새 그를 감싸 안정감을 주는 장소로 변해 버린 것이다.

결국 작가는, 부조리한 세계와 그 안에서 반복되는 무의미한 노동 속에서 인간이 ‘자유’라는 선택지 앞에 섰을 때 과연 어떤 결단을 내릴 것인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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