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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인간
KBS 공부하는 인간 제작팀 지음 / 예담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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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KBS 다큐멘터리 필름 공부하는 인간, 호모아카데미쿠스를 엮어낸 책이다.

왜 인간은 공부를 하며 그 의미는 어디서 찾을 수 있고 동서양의 서로 다른 국가에서 공부는 무엇이며 어떻게 공부를 하고 왜 공부를 하는지 그리고 차이점이 있다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등등 공부에 대한 질문 및 그 기원을 찾는 프로그램이었나 보다.

난 그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없다. 

2011년 또는 2012년에 나온 모양인데 그 때 한국에 있지도 않았고 있었다 해도 TV를 잘 보지 않으니 몰랐을 것 같다.

어쨌든 굉장히 흥미롭다.

나 또한 사람은 죽을 때까지 공부를 해야 하는 존재구나, 라고 막연히 생각한 적이 많았는데 그런 생각에 대한 답변을 여러 모로 제시해주었다.


책을 읽다 보니 가장 흥미로웠던 점 중 하나가 동서양의 공부 방식의 차이였다.

다른 사람과의 '조화'를 중시하고 배움은 다른 이(또는 책 또는 기타)로부터 오는 것이라 생각하는 동양 문화권에서는 아무래도 질문보다 선생님 및 부모님 등 다른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전해 듣고 가르침을 받는 것, 책상머리에 꼭 앉아야 공부를 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반면, 서양은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기 때문에 공부 또한 개인의 정체성 확립 및 생각의 발전을 위해 자신의 의견 및 다른 사람들과의 의견을 교류하고 질문하는 토론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이다.

책을 읽다 보니 나 또한 계속 한국에서 공부를 하다가 영국에서 석사 과정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세미나 시간이 생각났다.

영국에서는 강의식 수업이 끝나면 바로 그 시간만큼 세미나에 참여해야 한다.

세미나를 위한 리딩을 읽지 않으면 내용을 모르기 때문에 세미나에 참여하기가 그만큼 힘들고 자국어로도 쉽지 않을 내용을 영어로 읽고 생각해야 한다는 게 너무 어려웠다.

가장 힘들었던 건 리딩 자체보다 세미나에서 할 질문을 생각해야 한다는 점이었는데 질문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 한국의 교육을 받고 자란 나로서는 도대체 무슨 질문을 해야하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덕분에 1년 내내 세미나 시간마다 나는 꿔다놓은 보리자루였고(물론 세미나가 끝난 뒤 친한 친구들과 토론을 많이 했지만...그 때마다 친구들은 나보고 세미나 시간에 얘기를 해야한다고 했었다...ㅠㅠ) 이는 출석을 100% 했다 하더라도 참여를 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되어 내 참여 점수는 언제나 바닥이었다.

1년 간의 세미나를 마치고 나서야 그 의미와 공부 방식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친구들과의 토론을 통해 솔직히 교수들의 강의보다 더 많은 것을 배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떠오른 동양인으로서 서양에서 공부하며 어려웠던 점 하나는 서양에선 무조건 하나의 관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사실 세상은 흑백논리로 설명할 수 없고 그 사이 수많은 채도와 농도의 회색이 있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지 않고 에세이든 세미나든 하나의 스탠스를 가지고 내 논점을 전개해나가야 한다.

이건 사실 지금까지도 완전히 이해되지는 않는 부분이지만 아마도 지식이라는 것은, 진리를 탐구하는 것은 완전무결함을 추구하기 때문일 거란 생각이 든다.


한 가지 이 책과 달리 내가 가진 견해는, 영국에서 공부할 때도 생각한 것이지만, 서양의 공부 방식은 자기 의견을 잘 피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이뤄놓은 업적 및 지식을 망라해 내 것으로 만들고 그 위에 내 사소한 의견 하나를 더 얹기 위한 노력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다른 이들의 의견과 지식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내가 아무리 큰 사상과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인정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조화'를 중요시하는 동양과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인간이란 동물은 사회적인 존재로 다른 사람들에게서 '나'의 정체성을 인정받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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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의 배신 - 긍정적 사고는 어떻게 우리의 발등을 찍는가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배신 시리즈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전미영 옮김 / 부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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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강렬하다. 

긍정의 배신이라니.

개인적으로 상당히 밝은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이런 저런 일들에 부딪히다 보니 무턱대고 대책없이 긍정적이기만 할 수 없다고,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고민하던 차에 집어든 책이다.

정말 언제부터인지 기억할 순 없지만 우리 사회에 '긍정'이라는 단어가 만연하기 시작했다.

상당히 많은 자기계발서 및 서적들이 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던지, '시크릿'이라던지, '긍정의 힘'이라던지.

개인적으로 비슷비슷한 소리를 고만고만하게 얘기하는 자기계발서나 위로서 등등은 읽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떠올릴 수 있는 '긍정 파워'에 관한 서적이 적어도 두세 가지나 될 정도면 상당히 많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시크릿'은 읽어본 적이 있다.

상당히 황당무계한 어른을 위한 동화 내지는 사기극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는데 나만 그렇게 생각했던 것은 아닌가보다.

이 책의 저자는 황당하리만큼 만연해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감지하지 못하거나 되려 듣고 싶어하지 않아하는 긍정의 모순을 의학, 경제, 사회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설명하였다.

책을 읽다 보니 나 또한 TV 광고 및 여러 매체에서 본 '긍정 파워' 전파 및 스스로도 지난 몇 년간 불평을 하기 보다는 모든 일에 대해 자책했던 일들이 떠올랐다.

왜 우리는 분노를 표출하면 안되는가?

분노도 불평도 엄연히 인간이 가진 여러 감정들 중 하나에서 비롯된 것인데.

긍정적인 것만 생각하고 긍정적인 것만 보고 긍정적인 것만 들으라는 것 자체가 현실에서 도피하라고 부추기는 것과 다를 게 무엇인가.

잘못 돌아가는 모든 일들은 그대의 노력과 열정이 부족해서라고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짜증스러운 긍정 타령에 엇박자를 놓치만 맹목적 짜증이 아닌 증거와 함께 조목조목 따져 묻는 글쓴이의 논리에 속이 조금은 시원해졌다.



긍정적 사고는 시장경제의 잔인함을 변호한다. 낙천성이 물질적 성공의 열쇠이고 긍정적 사고 훈련을 통해 누구나 갖출 수 있는 덕목이라면, 실패한 사람에게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개인의 책임을 가혹하게 강요하는 것이 긍정의 이면이다. 당신이 경영한 기업이 도산하거나 당신이 일자리를 잃게 된 것은 당신이 최선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성공 필연성을 굳게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긍정적 사고는 분노와 공포라는 실체적 감정을 부정하고 쾌활함의 분칠 아래 묻어 두도록 요구한다.

`당신을 끌어내리는 사람`을 모두 깨끗이 쓸어버린다면 아주 외로운 처지에 놓일 위험이 높으며, 더 심각한 것은 현실에서 분리되어 버린다는 사실이다. 가족생활을 비롯한 모든 사회생활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기분을 살피고 통찰략을 얻는 한편 필요할 때면 상대에게 제공해야 한다.
하지만 긍정적 사고의 세계에서는 그렇지가 않다. 다른 사람은 당신의 보살핌을 받거나 당신에게 달갑잖은 현실을 직시하도록 하기 위해 거기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단지 당신을 보살펴 주고, 칭찬하고, 긍정해 주기 위한 존재다. 실제로 많은 시람이 이를 신조로 받아들여 ` 불평`이라는 단어 위에 큼지막하게 엑스 표를 친 스티커를 자동차를 붙이거나 명판을 벽에 걸어 둔다. 사람들은 자기감정을 차단하고, 그 결과 심각한 감정 결핍 상태에 이르게 된다. 누구에게도 남들의 문제를 생각할 시간과 인내심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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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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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반까지는, 아니 책을 다 읽고 나서도 그런 느낌이다.

'상실의 시대' 한 스푼 + '냉정과 열정 사이' 한 스푼 + 주제 사라마구 반 스푼.

박민규는 내게 한국 현대 소설가 중 가장 특이하고 속된 말로 좀 도라이같은 매력을 가진 문체와 내용을 가진 작가이다.

그래서 사실 중반까지는 조금 실망도 헀다.

내가 기대했던 그 도라이미(??)가 많이 없고 내가 이전에 알지 못했던 작가와 마주한 느낌이라서.

그러나 결말 부분에서 나는 예상치 못한 어퍼컷을 맞은 느낌이었고,

아, 내가 이래서 박민규를 좋아했지.

라고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약간의 반전이 있는 결말이 아무래도 그나마 가장 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내 개인적 성질 상 해피엔딩으로 끝나기를 가장 바랬던 것 같다.

그들이 다시 만났기 때문에 해피엔딩이 아닌, 그녀가 그녀의 모습을 되찾아 그녀의 온전한 모습으로 있을 수 있는 곳을 찾았기 때문이다.

그녀의 모습에서 나의 온전한 모습으로 있을 수 있는 그 곳을 찾아 헤매고 있는 현재의 나를 발견했고, 이렇게 방황하며 헤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는 그것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모든 사랑은 오해다. 그를 사랑한다는 오해, 그는 이렇게 다르다는 오해, 그녀는 이런 여자란 오해, 그에겐 내가 전부란 오해, 그의 모든 걸 이해한다는 오해, 그녀가 더없이 아름답다는 오해, 그는 결코 변하지 않을 거란 오해, 그에게 내가 필요할 거란 오해, 그가 지금 외로울 거란 오해, 그런 그녀를 영원히 사랑할 거라는 오해..."

"그 사실을 알아야 해. 이 세상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인간들로 끓어넘치는 곳인지를 말이야. 종교가 다르다고 서로를 죽이는 게 인간이야. 인종이 다르다고, 이념이 다르다고 수천수만 명을 죽일 수 있는 게 인간이야. 만 원짜리 한 장을 뺏기 위해 서로를 죽이는 게 인간이고, 아들을 낳지 못했다고 여자를 죽이는 게 인간이야. 쥐꼬리만한 권력에도 끝없이 굽신거리는 게 인간이고, 말도 안 되는 관념 하나로 평생을 사는 게 인간이야. 헬렌 켈러나 버지니아 울프를 보고 뭐 이따위로 생겼어 하는 인간들로 끓어넘치고,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아인슈타인을 보고도 뭐야 개똥 같이 생겼잖아, 팔짱을 낄 인간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어.

세상은 그런 곳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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