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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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반까지는, 아니 책을 다 읽고 나서도 그런 느낌이다.

'상실의 시대' 한 스푼 + '냉정과 열정 사이' 한 스푼 + 주제 사라마구 반 스푼.

박민규는 내게 한국 현대 소설가 중 가장 특이하고 속된 말로 좀 도라이같은 매력을 가진 문체와 내용을 가진 작가이다.

그래서 사실 중반까지는 조금 실망도 헀다.

내가 기대했던 그 도라이미(??)가 많이 없고 내가 이전에 알지 못했던 작가와 마주한 느낌이라서.

그러나 결말 부분에서 나는 예상치 못한 어퍼컷을 맞은 느낌이었고,

아, 내가 이래서 박민규를 좋아했지.

라고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약간의 반전이 있는 결말이 아무래도 그나마 가장 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내 개인적 성질 상 해피엔딩으로 끝나기를 가장 바랬던 것 같다.

그들이 다시 만났기 때문에 해피엔딩이 아닌, 그녀가 그녀의 모습을 되찾아 그녀의 온전한 모습으로 있을 수 있는 곳을 찾았기 때문이다.

그녀의 모습에서 나의 온전한 모습으로 있을 수 있는 그 곳을 찾아 헤매고 있는 현재의 나를 발견했고, 이렇게 방황하며 헤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는 그것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모든 사랑은 오해다. 그를 사랑한다는 오해, 그는 이렇게 다르다는 오해, 그녀는 이런 여자란 오해, 그에겐 내가 전부란 오해, 그의 모든 걸 이해한다는 오해, 그녀가 더없이 아름답다는 오해, 그는 결코 변하지 않을 거란 오해, 그에게 내가 필요할 거란 오해, 그가 지금 외로울 거란 오해, 그런 그녀를 영원히 사랑할 거라는 오해..."

"그 사실을 알아야 해. 이 세상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인간들로 끓어넘치는 곳인지를 말이야. 종교가 다르다고 서로를 죽이는 게 인간이야. 인종이 다르다고, 이념이 다르다고 수천수만 명을 죽일 수 있는 게 인간이야. 만 원짜리 한 장을 뺏기 위해 서로를 죽이는 게 인간이고, 아들을 낳지 못했다고 여자를 죽이는 게 인간이야. 쥐꼬리만한 권력에도 끝없이 굽신거리는 게 인간이고, 말도 안 되는 관념 하나로 평생을 사는 게 인간이야. 헬렌 켈러나 버지니아 울프를 보고 뭐 이따위로 생겼어 하는 인간들로 끓어넘치고,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아인슈타인을 보고도 뭐야 개똥 같이 생겼잖아, 팔짱을 낄 인간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어.

세상은 그런 곳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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