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마늄의 밤
하나무라 만게츠 지음, 양억관 옮김 / 씨엔씨미디어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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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설을 통해 나의 독자를 건강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 오히려 우울하게 만들려는 게 나의 소설창작전략이다. 그리고 이제 일본문학은 실제로 권위를 상실하고 있다. 웃음거리밖에 안 된다. 그런데 아쿠타가와 상은 권위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권위에서조차 벗어나고 싶다. (...) 내 입장에서는 독자를 선택하고 싶다. 즉, 독자가 원하든 말든 내가 쓰고 싶은 대로 쓰겠다는 얘기다.

왜 독자를 신뢰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 고작 소설인데, 그걸 모방하다니.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란 말인가. (...) 만약 내 소설을 읽고 사람을 죽이는 등 그걸 모방한다면 나는 오히려 그 소설의 작가로서 자부심을 갖겠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적당한 존경심을 담아, 그러나 한껏 비아냥거리는 어조로)

성공하셨습니다. 읽는 내내 불편하고 우울했습니다. 병이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잘생긴 중년의 신부님을 유혹하지도, 제 동성애적 성향을 발견하게 해줄 수도 있었을 전혀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는 아름다운 소녀를 침대로 끌어들이지도, 자살을 시도하지도, 또 누군가를 죽이지도 않았지요.

맞습니다. 왜 독자를 신뢰하지 않는 걸까요. 자부심을 가지십시오.

마광수 교수와의 대담 중

_ 이번 한국 여행은 내가 아는 재일교포 술집 마담과의 여행이다.

_ 아 참, 결혼은 했나?

_ 작년 가을에 아내가 도망갔다.

_ 나도 지금 혼자 살고 있다.

이 아저씨들, 좀 귀엽다.


                                                                                                                199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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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르코프스키의 순교일기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지음, 김창우 옮김 / 두레 / 199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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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면적인 파괴에 저항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은 사랑과 아름다움이다. 나는 사랑만이 세계를 구원할 수 있다고 믿는다. 사랑 없이는 모든 것이 끝장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파멸은 진행되고 있다.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들을 본 것은, 벌써 몇 년 전이다.
아무것도 없는 벌판 위에 혼자서 불타오르고 있는 집 한 채, 햇빛 좋은 어느 날 얇고 하얀 커튼은 바람에 날리고, 그 사이로 잠깐잠깐 보이는 사람들의 웃는 얼굴(웃음소리는, 내 기억에만 없는 걸까?), 시냇물과 강물, 죽은 나무에 물을 주는 노인과 소년, 폐허가 된 세상을 구원하는 두 개의 촛불...

영화를 보는 내내 제대로 견뎌낼 수 없을 만큼 아름답고 슬펐던 기억. 그저 영화의 풍경들을 가만히 따라가는 것밖에 할 수 없었음에도 영화가 끝나고도 한참 후에야 흘러내리던 (이해할 수 없는) 눈물방울. 이어지지 않는 조각난 장면들, 그리고 기억들의 연속.

십여 년간의 그의 일기를 읽고 나니, 그 영상의 기록들이 새롭다. 매일 같은 시간에 꾸준히 물을 주면 죽은 나무에도 꽃은 핀다, 촛불 하나로도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 고 믿고 싶어졌다. 아니 믿게 되었다.

_내 작품은 나의 인생관과 반드시 일치해야 한다.
_오직 대단히 깨끗한 사람, 큰 인간만이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다.
_나와 안드류슈카는 정신의 힘으로 하나가 되어 있으며, 나는 안드류슈카가 내 작업을 이어갈 나의 유일한 정신적 후계자가 될 것임을 알고 있고 또 느끼고 있다. 이러한 믿음이 나로 하여금 나의 운명이 어떻게 끝나든 그 운명과 마주 설 힘을 갖게 해준다. (...) 전혀 일어날 수가 없다. 나는 죽어가는가? 무엇을 위해서도 남아 있는 힘이 없다. 안드류슈카와의 이별이 나로서는 견디기 어렵다. 나의 사랑하는 아들...

그리고 그가 인용한 소로우의 말,
_나는 사람의 꽃과 열매를 원한다. 나는 사람에게서 어떤 향기같은 것이 나에게도 풍겨나오기를 바라며, 우리의 교제가 잘 익은 과일의 풍미를 갖게 되기를 바란다.

아름다운 사람, 이 되어야 한다.

200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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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의 여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5
아베 코보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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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년 만에 새끼줄 사다리가 내려졌다. (...) 딱히 서둘러 도망칠 필요는 없다. 지금, 그의 손에 쥐어져 있는 왕복표는 목적지도 돌아갈 곳도, 본인이 마음대로 써놓을 수 있는 공백이다. 그리고 그의 마음은 유수장치에 대해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은 욕망으로 터질 듯하다. 털어놓는다면, 이 부락 사람들만큼 좋은 청중은 없다. 오늘이 아니면, 아마 내일, 남자는 누군가를 붙들고 털어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
도주 수단은, 그 다음날 생각해도 무방하다.

사막에는, 또는 사막적인 것에는 늘 뭐라 말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 (...) 하늘이 암갈색으로 물들고 흙먼지가 풀풀 일어 숨이 막힐 것 같은 날, 바짝 마른 눈두덩 속으로 닦아도 닦아도 없어지지 않는 모래가 파고든다. 그 짜증스러운 기분의 이면에는 불쾌함이 아니라 일종의 들뜬 기대감이 담겨 있었다.

겁을 내기에는 아직, 이르다.

겁을 내기에는, 그래, 아직, 이르다.

200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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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
존 버거 지음, 김우룡 옮김 / 열화당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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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COPY, 제목 그대로 글은 마치 사진을 그대로 읽어내리는 듯하다.

   
 

부엌 찬장에는 역시 그녀가 손수 만들어 보내준 꿀케이크가 놓여 있다. 아무도 모를 그녀만의 조리법으로 만들어진, 당밀파이와 비슷하지만 당밀 대신 꿀과 호두가루를 섞어 만든 것이다. (...) 이런 그녀가 4월 어느 오후, 엑스레뱅에서 멀지 않은 부르제 호숫가로 난 좁은 시골길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 대학도시에서 노교수들이 타고 다니는 것 같은, 허리를 펴고 타는 보통 자전거였다. (...) 헤드라이트 아래의 짐바구니에는 지도와 로션, 말린 무화과가 든 봉투와 양초, 망치, 그리고 린드그렌의 새 책 한 권이 들어 있었다. 회색 곱슬머리의 여인은 부르제 호숫가로 난 좁은 시골길에서 천천히 페달을 밟고 있었다. 천천히 그러나 끝없이. (...) 자전거와 사람 모두 길 옆 도랑으로 처박혔다. (...) 붕대를 푼 무릎에서 작은 상처를 보았다. 사흘이면 나을 거예요. 모과젤리, 당신 거예요. 이젠 가봐야겠어요. 먼길인데 조금 늦은 게 아닐까요? 가끔은 밤에도 타요. 무섭지 않아요? 자전거가 있잖아요! 길을 따라 내려가면서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손을 흔든다. 천천히 그러나 끝없이 페달을 밟고 있었다. 받지 않고 주고만 싶어하는 방랑자.

 
   

이 글에서 존 버거는 성실한 관찰자일 뿐이다. 일체의 감상이 개입하지 않고, 일차적인 묘사와 설명만을 통해서 작가는 글 속의 장면이 손에 잡힐 듯 그려 보인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오히려 어떤 구체적인 (말하는 이의 평가가 개입된) 설명을 통해 알게 되는 것보다 더욱 정확하게, 객관적으로 인물들의 성격과 성품을(심지어 겉모습까지!) 그대로 읽어낼 수 있다.
저 '자전거를 탄 여인'은, 고불거리는 잿빛 머리칼을 언제나 단정하게 머리를 틀어올리고 있을 테고, 지난 세월의 무게를 담고 있는 굵은 주름들에도 불구하고 맑은 피부를 간직하고 있을 것이며, 아직까지도 그 빛을 잃지 않은 푸른 눈동자를 가지고 있을 것이며, 차와 부딪쳐 도랑으로 굴러떨어지고 나서도 자신의 몸보다 자전거를 먼저 살폈을 것이다.

어느 날 문득, 빛바랜 사진 한 장 속에서 많은 이야기를 발견하게 될 때가 있다. 그것은 때론 말이나 글로는 달리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을 담고 있기도 하다. 존 버거의 이 글은, 바로 그런 순간들, 그런 이야기들, 풍경들,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의 뷰파인더는 광장에서 비둘기를 돌보는 노숙자 여인을 향할 때도, 아일랜드의 시골 버스에서 만난 수다스런 소녀에게 향해 있을 때도, 그리고 앙리 브레송이나 시몬 베이유를 향하고 있을 때도, 늘 한결같다. 피사체에 따라 빛의 양이나 셔터의 속도, 거리를 조절하지 않고 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기. 일체의 개인적인 감상을 배제하기. 
검은 테이프로 빈틈을 메우고 작은 바늘구멍 하나를 뚫어 만든 종이 카메라의 이야기. 빛이 피사체를 비추고, 그 빛이 다시 작은 바늘구멍을 통해 작고 어두운 상자 속으로 들어가길 한참을 기다려, 손안에 받아든, 희미하게 남아 있어 오히려 그 정지된 시간의 이야기.

2007.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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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소리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신인섭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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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없다. 달은 보름달에 가깝게 밝지만, 작은 산 위를 수놓은 나무들의 윤곽은 습한 밤기운으로 희미해져 있었다. 그러나 바람에 움직이지는 않았다. (......) 먼 바람소리와도 닮았지만 땅울림과도 같은 깊은 저력이 있었다. (......) 소리는 멎었다.

"작품 속에서 죽음을 미화하고 인간과 자연과 허무 사이의 조화를 추구하고자 했으며, 평생 아름다움을 얻기 위해 애썼다"고 야스나리는 말했다 한다.                       

야스나리의 소설이 좋은 것은 무엇보다 그 '아름다움' 때문이다. 그의 소설을 읽다 보면 더운 달빛을 받아 차게 빛나는 흰 눈밭과, 밤나무들 사이로 투명하게 빛나는 몇 개의 별들과, 천천히 깊어지고 퍼져가는 달밤과, 나뭇잎에서 나뭇잎으로 떨어지는 밤이슬의 소리와, 먼 바람소리, 깊은 땅울림소리, 어깨를 흔들지 않고 아름답게 움직이는 어느 여인의 뒷모습과, 샌들 사이로 드러나 보이는 푸른 힘줄이 도드라진 여위고 깨끗한 맨발이 보이고, 들리고, 만져진다.

2003.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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