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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르코프스키의 순교일기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지음, 김창우 옮김 / 두레 / 1997년 1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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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면적인 파괴에 저항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은 사랑과 아름다움이다. 나는 사랑만이 세계를 구원할 수 있다고 믿는다. 사랑 없이는 모든 것이 끝장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파멸은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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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르코프스키의 영화들을 본 것은, 벌써 몇 년 전이다.
아무것도 없는 벌판 위에 혼자서 불타오르고 있는 집 한 채, 햇빛 좋은 어느 날 얇고 하얀 커튼은 바람에 날리고, 그 사이로 잠깐잠깐 보이는 사람들의 웃는 얼굴(웃음소리는, 내 기억에만 없는 걸까?), 시냇물과 강물, 죽은 나무에 물을 주는 노인과 소년, 폐허가 된 세상을 구원하는 두 개의 촛불...
영화를 보는 내내 제대로 견뎌낼 수 없을 만큼 아름답고 슬펐던 기억. 그저 영화의 풍경들을 가만히 따라가는 것밖에 할 수 없었음에도 영화가 끝나고도 한참 후에야 흘러내리던 (이해할 수 없는) 눈물방울. 이어지지 않는 조각난 장면들, 그리고 기억들의 연속.
십여 년간의 그의 일기를 읽고 나니, 그 영상의 기록들이 새롭다. 매일 같은 시간에 꾸준히 물을 주면 죽은 나무에도 꽃은 핀다, 촛불 하나로도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 고 믿고 싶어졌다. 아니 믿게 되었다.
_내 작품은 나의 인생관과 반드시 일치해야 한다.
_오직 대단히 깨끗한 사람, 큰 인간만이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다.
_나와 안드류슈카는 정신의 힘으로 하나가 되어 있으며, 나는 안드류슈카가 내 작업을 이어갈 나의 유일한 정신적 후계자가 될 것임을 알고 있고 또 느끼고 있다. 이러한 믿음이 나로 하여금 나의 운명이 어떻게 끝나든 그 운명과 마주 설 힘을 갖게 해준다. (...) 전혀 일어날 수가 없다. 나는 죽어가는가? 무엇을 위해서도 남아 있는 힘이 없다. 안드류슈카와의 이별이 나로서는 견디기 어렵다. 나의 사랑하는 아들...
그리고 그가 인용한 소로우의 말,
_나는 사람의 꽃과 열매를 원한다. 나는 사람에게서 어떤 향기같은 것이 나에게도 풍겨나오기를 바라며, 우리의 교제가 잘 익은 과일의 풍미를 갖게 되기를 바란다.
아름다운 사람, 이 되어야 한다.
2000.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