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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
존 버거 지음, 김우룡 옮김 / 열화당 / 2005년 3월
평점 :
PHOTOCOPY, 제목 그대로 글은 마치 사진을 그대로 읽어내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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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 찬장에는 역시 그녀가 손수 만들어 보내준 꿀케이크가 놓여 있다. 아무도 모를 그녀만의 조리법으로 만들어진, 당밀파이와 비슷하지만 당밀 대신 꿀과 호두가루를 섞어 만든 것이다. (...) 이런 그녀가 4월 어느 오후, 엑스레뱅에서 멀지 않은 부르제 호숫가로 난 좁은 시골길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 대학도시에서 노교수들이 타고 다니는 것 같은, 허리를 펴고 타는 보통 자전거였다. (...) 헤드라이트 아래의 짐바구니에는 지도와 로션, 말린 무화과가 든 봉투와 양초, 망치, 그리고 린드그렌의 새 책 한 권이 들어 있었다. 회색 곱슬머리의 여인은 부르제 호숫가로 난 좁은 시골길에서 천천히 페달을 밟고 있었다. 천천히 그러나 끝없이. (...) 자전거와 사람 모두 길 옆 도랑으로 처박혔다. (...) 붕대를 푼 무릎에서 작은 상처를 보았다. 사흘이면 나을 거예요. 모과젤리, 당신 거예요. 이젠 가봐야겠어요. 먼길인데 조금 늦은 게 아닐까요? 가끔은 밤에도 타요. 무섭지 않아요? 자전거가 있잖아요! 길을 따라 내려가면서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손을 흔든다. 천천히 그러나 끝없이 페달을 밟고 있었다. 받지 않고 주고만 싶어하는 방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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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 존 버거는 성실한 관찰자일 뿐이다. 일체의 감상이 개입하지 않고, 일차적인 묘사와 설명만을 통해서 작가는 글 속의 장면이 손에 잡힐 듯 그려 보인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오히려 어떤 구체적인 (말하는 이의 평가가 개입된) 설명을 통해 알게 되는 것보다 더욱 정확하게, 객관적으로 인물들의 성격과 성품을(심지어 겉모습까지!) 그대로 읽어낼 수 있다.
저 '자전거를 탄 여인'은, 고불거리는 잿빛 머리칼을 언제나 단정하게 머리를 틀어올리고 있을 테고, 지난 세월의 무게를 담고 있는 굵은 주름들에도 불구하고 맑은 피부를 간직하고 있을 것이며, 아직까지도 그 빛을 잃지 않은 푸른 눈동자를 가지고 있을 것이며, 차와 부딪쳐 도랑으로 굴러떨어지고 나서도 자신의 몸보다 자전거를 먼저 살폈을 것이다.
어느 날 문득, 빛바랜 사진 한 장 속에서 많은 이야기를 발견하게 될 때가 있다. 그것은 때론 말이나 글로는 달리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을 담고 있기도 하다. 존 버거의 이 글은, 바로 그런 순간들, 그런 이야기들, 풍경들,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의 뷰파인더는 광장에서 비둘기를 돌보는 노숙자 여인을 향할 때도, 아일랜드의 시골 버스에서 만난 수다스런 소녀에게 향해 있을 때도, 그리고 앙리 브레송이나 시몬 베이유를 향하고 있을 때도, 늘 한결같다. 피사체에 따라 빛의 양이나 셔터의 속도, 거리를 조절하지 않고 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기. 일체의 개인적인 감상을 배제하기.
검은 테이프로 빈틈을 메우고 작은 바늘구멍 하나를 뚫어 만든 종이 카메라의 이야기. 빛이 피사체를 비추고, 그 빛이 다시 작은 바늘구멍을 통해 작고 어두운 상자 속으로 들어가길 한참을 기다려, 손안에 받아든, 희미하게 남아 있어 오히려 그 정지된 시간의 이야기.
2007.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