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의 여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5
아베 코보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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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년 만에 새끼줄 사다리가 내려졌다. (...) 딱히 서둘러 도망칠 필요는 없다. 지금, 그의 손에 쥐어져 있는 왕복표는 목적지도 돌아갈 곳도, 본인이 마음대로 써놓을 수 있는 공백이다. 그리고 그의 마음은 유수장치에 대해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은 욕망으로 터질 듯하다. 털어놓는다면, 이 부락 사람들만큼 좋은 청중은 없다. 오늘이 아니면, 아마 내일, 남자는 누군가를 붙들고 털어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
도주 수단은, 그 다음날 생각해도 무방하다.

사막에는, 또는 사막적인 것에는 늘 뭐라 말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 (...) 하늘이 암갈색으로 물들고 흙먼지가 풀풀 일어 숨이 막힐 것 같은 날, 바짝 마른 눈두덩 속으로 닦아도 닦아도 없어지지 않는 모래가 파고든다. 그 짜증스러운 기분의 이면에는 불쾌함이 아니라 일종의 들뜬 기대감이 담겨 있었다.

겁을 내기에는 아직, 이르다.

겁을 내기에는, 그래, 아직, 이르다.

200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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