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다는 것의 의미 동문선 현대신서 16
존 버거 지음, 박범수 옮김 / 동문선 / 200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브레히트가 자신의 시편들 가운데 한 편을 통해 연기에 관해서 피력한 것은 그러한 것을 실행에 옮기는 데 적용해볼 수 있는 것이다. 순간에 대해서 우리는 사진을 읽어낼 수 있고, 연기에 대해서는 맥락을 재창조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당신은 그저 그 순간을 두드러져 보이도록 만들어야만 하리라.
(이하 브레히트 인용)

그것들 스스로의 힘으로 이러한 것을 실제로 성취해내는 위대한 몇몇 사진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 어떤 사진이라도, 만약 그것을 위하여 적절한 맥락이 창조된다면, 그러한 '현재'가 될 수도 있다. (......)
그러한 맥락은 시간 속에서 그 사진을 대신하게 되는데--그것은 불가능한 것인 그것 자체의 원래 시간이 아닌--서술되는 시간 속에서이다. 서술된 시간은 그것이 사회적 기억과 사회적 행위의 성격을 띠게 되면 역사적 시간이 된다. 짜맞추어진 서술되는 시간은 그것이 자극하고자 하는 기억의 과정을 존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기억되는 어떤 것에 대하여 유일무이한 단 한 가지의 접근방식만이 존재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기억되는 것은 노선의 한쪽 끝에 있는 종점과 같은 것이 아니다. 수없이 많은 접근방식들과 자극들이 그것을 향하여 모여들거나 그것에 이르게 된다. 이야기들 비교들 기호들이 거의 동등한 방식으로 인화된 사진들을 위한 맥락을 창조해내는 데 필요한데, 다시 말하자면, 그것들은 다양한 접근방식들을 구분하고 그럴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사진이 동시에 개인적 정치적 경제적 극적 일상적 그리고 역사적인 측면에서 보여질 수 있도록 사진을 둘러싼 방사체계가 구성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 부분은 존 버거가 수전 손택을 옹호하며 쓴 글이다. 이외에도 존 버거는,
동물원 우리 속의 동물들을 바라보는 인간들의 시선에서, 동물과 인간 사이에 오가던 시선이 단절되어버렸음을, 그리하여 더이상 마주 보지 못하고 동행이 없이 각각의 동물들을 바라보게 되는 결국은 혼자인 관람객에 대해, 그러니까 여럿이서 함께 구경하고 있지만 마침내 고립되어버린 인간이라는 종에 대해,
조용히 서서 가만히 응시해야 가 닿을 수 있는,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 자코메티의 작품(/고독)에 대해,
어떠한 사건이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하나의 '배경'이었던 벌판(/공간)이 그 자체 하나의 '사건'으로 변하는 순간/시간/경험/자각... 그리고 그 모든 것,
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 세계는, 과연, 눈에 보이는 그대로 실재하는가.
다시 또 이 어리석은 질문을 던져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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