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주노 디아스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월
평점 :
그녀는 끌어안기 위해 팔을 뻗었다. 자신의 집을, 어쩌면 온 세상을.
어쩌면 도미니카 공화국과 독재자 트루히요가 없었다면 탄생하지 않았을 이 길고 긴 이야기는, '푸쿠'에 인질로 잡힌 삶을 온몸으로 끌어안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렇게 된 거였다, 벨리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린 '결정'은, 그렇게 된 것였다. 그건 그저 이런 거였다. 난 그냥 춤을 추고 싶었을 뿐이야. 춤 대신 내가 얻은 거? 에스토! 그녀는 두 팔을 펼치며 병원과 두 아이, 암과 미국을 가리켰다.
지나고 보면, 삶을 결정짓는 건 언제나 그런 것들이다. 문득 올려다본 밤하늘의 붉은 달이나, 오랜만에 집어든 책 속의 한 구절, 우연히 들어간 작은 카페에서 보낸 커피 한 잔의 시간. 그리고 바로 그 순간들은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닌 '내 것'이다.
포레스트 검프의 초콜릿 상자도 좋고 하루키의 비스킷 통이어도 상관없다. 문제는 쓰디쓴 초콜릿도 맛없는 비스킷도, 일단 집어든 이상, 입안에 넣은 이상, 결국은 삼켜넘겨야 한다는 것, 뱉어낼 수 없다는 것.
더 나쁜 건, 어쩌면 그 상자 속이 온통 럼으로 가득 채워진 초콜릿뿐일 수도 있다는 것. 비스킷 통인 줄 알고 열었더니 온통 낡은 구슬들만 가득한 재활용상자였을 수도 있다는 것.
더더더 나쁜 건, 일단 받아든 이상 상자는 바꿀 수 없다는 것. 맛없는 비스킷을 억지로 다 씹어넘긴 뒤에도, 두번째 상자는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
막연히 내 상자 안에는 달콤하고 향긋한 초콜릿들로 가득하리란 환상과 근거 없는 희망에 가득한 시간은 의외로 짧다. 일찌감치 크고작은 좌절과 불운들을 겪으면서, 우리는 이제 '하필이면', 그 상자를 건네준 그 사람을 원망하고, 내 발부리에 차이는 그 불운의 돌멩이를 탓하기 시작한다.
안타까운 사실은, 오스카와 룰라, 벨리 가족에게 주어진 과자상자는 처음부터 반죽이 잘못되었거나--이들이 도미니카 공화국에 태어난 것부터가--, 누군가 그 상자를 열고 설탕가루 대신 모랫가루--푸쿠푸쿠푸쿠--를 뿌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스카는 그 푸쿠로 가득한 초콜릿들을 주저없이 입안에 털어넣는다. 끝없이 발에 채는 불운의 돌멩이들을--다른 누구의 것이 아닌 제 것을--오히려 제 초콜릿상자에 주워담는다.
이 비극적인 이야기가 (한없이 슬프지만) 오히려 희망적인 건 바로 그래서이다. 이 비극적인 시간이, 이 쓰디쓴 초콜릿들이, 초콜릿 대신 알 수 없는 잡동사니로 가득한 과자상자가,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닌 나의 것이라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그 상자는 단 하나뿐이라는 것. 그러니, 온몸으로 끌어안아야 한다는 것. 그것을 오스카는 스물일곱 해, 그 짧고 놀라운 생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도미니카 공화국의 오스카를 만나기 전에, 뉴욕 한복판의 오스카가 이미 말해주었던 것처럼.
우리가 살아야 한다는 건 치욕이지만, 우리 삶이 한 번뿐이라는 건 비극이란다.(『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이 가까운』, 185p)
결국 이 책이 모종의 '사파'인 것은 바로 그래서가 아닐까.
삶의 무게란 누구에게나 제 것이 가장 크고 무겁다. 내 손톱 밑에 박힌 가시 하나가 타인의 잘린 팔목보다 더 아프고 견디기 어렵다. 내 손가락의 고통과 네 팔목의 고통을 저울질할 수는 없다. 그러니 언제나 내가 견뎌야 할 것은 네 잘린 팔목이 아니라 내 손가락이다.
그리고 오스카에 따르면, 그 고통은 견뎌야 할 것이 아니라, 끌어안아야 할 것이다.
푸쿠로 가득한 삶을 살아내야 하는 건 치욕이지만, 그 삶마저도 한 번뿐이라는 것은 비극이므로. 온몸으로, 주문을 외우며. 사파!
저주 따윈 믿지 마. 삶, 그것으로 충분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