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구하려면 자본주의에서 벗어나라!
에르베 켐프 지음, 정혜용 옮김 / 서해문집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자본주의가 놀라운 것은 정확한 가격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3만원대, 5만원대, 10만원대 와인은 와인의 문외한이어도 맛을 보기만 한다면 그 가격을 짐작할 수 있다. 정가 9500원, 이 책은 정확히 자본주의의 가격이 요구하는 만큼의 내용을 가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에르베 켐프는 지구를 구하는 것에는 관심이 있는지는 모르나  자본주의에 벗어나는 것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이 책의 가격이 합리적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그 가격만큼 쉽게 쓰여졌고, 쉽게 읽힌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두 세 꼭지 정도 의미 있는 부분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뭐 9500원 치고는 괜찮네', 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니 이 책은 얼마나 역설적인가.

 

  내가 그나마 마음에 들었던 이 책의 부분은 우선 <가족, 내 너를 찢어발기마>(89~91)이다. 여기에서는 가족과 자본주의의 공생적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특이한 것은 자본주의는 가족의 유지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결혼과 이혼을 종용한다는 것이다.

개인주의적 소비문화 속에서 사랑하는 남녀가 상대방을 물건처럼 생각하여 더 이상 만족을 안겨주지 못하면 떨어내 버리는 일이 흔하다."

와 같은 분석도 나쁘지 않지만, 이혼을 통해 소비가 늘어난다는 실증적 자료의 제시는 신선하며 독창적이다.

 

이혼으로 인해 주거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며 물질적 소비도 촉진된다. 자녀가 어미니와 아버지 사이를 오가며 생활하는 바람에 아이들 방, 텔레비전, 롤러 등 모든 것의 수요가 종종 두 배로 늘어난다. 미시간 대학의 연구자 둘이 수행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혼으로 인해 주거의 수가 늘어나면서 도시 확장을 낳았다고 한다. 한편 물 소비는 56%, 전기 소비는 46%가 높았다."

   두 번째 꼭지는 <거래하는 데 말은 더 이상 필요없다>(120~122)이다. 이것은 제목이 모든 것을 설명해 준다. 그래도 굳이 인용하자면,

 

포르노그래피를 보면 아무 말도 없이 다짜고짜 성행위가 시작된다."

 

와 같은 부분이다. 이 책을 사는 데에도 거래는 필요 없다. 이 주제를 더 밀고나간다면 정말 재미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겠다. 비록 아렌트에게서 빌려오긴 했지만 말이다.

 

  마지막으로 흥미로웠던 꼭지는 <풍력, 기만의 바람>(142~146)이다. 2%의 전력 증가를 위해 풍력발전기 2000개가 필요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10만ha의 부지가 필요하다고 한다. 결국 풍력발전은 생태주의라는 명분으로 시골을 잘게 분할하며 그 지역의 생태를 완전히 망쳐버리고 있다고 글쓴이는 주장하고 있다. 나아가 이러한 풍력발전은 에너지 상황에 아무런 변화를 가져오지 않았음에도 이러한 풍력발전기를 만드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풍력발전기가 또 다른 장사속이며, 이 배면에는

 

전력 소비를 늘리는 것이 불가피하는 신성불가침의 도그마"

 

가 작동하고 있다.

 

   에르베 켐프는 자본주의에 벗어나야한다고 주장하지만, 자본주의 시스템에 가장 부합하는 책을 만들어내고야 말았다. 그러니 이 책은 얼마나 문제적인가. 자본주의는 그냥 일상이 되어버렸고, 자본주의는 자신을 비판하는 것까지도 자본화시킬 수 있는 무소불위의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이길려면 제대로 덤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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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24 21: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쓰고나는쓰네 2013-03-27 23:28   좋아요 0 | URL
^^ 혹시 번역하신 분인가요... 어찌되었건 고맙고 실례가 많았습니다..
 
아우슈비츠의 남은 자들 - 문서고와 증인 What's Up 10
조르조 아감벤 지음, 정문영 옮김 / 새물결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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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죽음이라 불릴 수 없고 시체를 시체라고 부를 수 없는˝ 시간과 공간을 분석하고 있는 이 책의 가장 큰 문제점이자 훌륭한 점은, 그래서 더욱 문제적인 점은 왠만한 소설책보다 재미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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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다리맨 2014-10-30 0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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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디 시학 - 문학세계 연구논총 10
정끝별 지음 / 문학세계사 / 199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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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럴 줄 알았지... 한국현대문학의 박사논문 수준이 이 모양이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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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르니에 선집 1
장 그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199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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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까뮈의 서문을 제외하고는 그렇게 좋은지 모르겠다. 원어를 보라고 말하는 것은 벼룩을 잡자고 집을 태우는 격이다. 그래도 좋은 책이라고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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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인문학 - 시인과 함께하는 물리학 산책
김병호 지음 / 글항아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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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이 많았다. 그래도 그는 알았을 것이다. 두 마리 다 놓치리라는 것을, 또 놓쳤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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