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실 심리학이나 뇌과학 따위를 신뢰하지 않는다. 그들은 실험을 하고 피실험자를 백분율화해 통계를 내린다. 평균치에 들지 않는 사람은 일거에 삭제된다. 또한 평균치에 들어오는 피실험자는 보편적인 인간이 아니라 평균적인 인간으로 등질화 된다.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최근에 뇌과학과 심리학을 주제로 한 책 두 권을 읽었기 때문이다. 하나는 <나는 누구인가>(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였고, 다른 하나는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대니얼 길버트)다. (그 중 한 권은 추천할만 하다.)

이 두 권의 책은 공통적으로 인간이라는 자아 또는 주체는 그렇게 완결되고 수미일관된 주체가 아니라 환경과 상황 속에서 구성되고 배치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실험도 주로 이와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다 보니 뇌과학과 심리학은 (포스트)구조주의적 관점을 실험으로 확인하고 있다는 느낌, 나아가 이것이 독자적으로 인간을 정의 내리기보다는 철학에 기대어 이미 예상된 결론을 내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가 철학을 뇌과학과 심리학으로 대체하려 한다면 대니얼 길버트는 뇌과학과 심리학이 가진 가능성과 한계를 말하려 한다. 이를테면 전자는 뇌과학과 심리학이라는 무기로 우주의 비밀을 풀려고 한다면 후자는 그 무기들을 사용하여 우주의 비밀을 풀 때 주의해야 할 점이 무엇인지를 말해준다. 리하르트는 철학사와 뇌과학사를 붙여 놓았기 때문에 뭔가 대단한 것을 알게 된 듯한 효과를 받게 될 뿐 아니라 이 책을 한 권 읽고 어디 가서 젠체하기 딱 좋다. 후자는 우리의 기억, 상상력이 얼마나 미흡한지를 알게 해주는 사례들, 실험들, 그리고 간단한 테스트까지 마련되어 있다. 또 예컨대 “어느 심심한 화요일 오후, 만약 당신이 당신의 눈동자를 꺼내본다면”과 같은 재기발랄한 문장들이 차고 넘친다.
월드컵 16강 진출 좌절로 무기력한 당신에게 이 책들을 추천한다. 이 책들을 읽는다면 당신의 무기력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알 수도 있을 것이다. 철학사와 심리학 및 뇌과학사, 그 두 마리 토끼 모두를 잡고 싶다면 전자를 추천한다. 하지만 그 앎의 두께는 매우 얇을 것이다. 뇌과학과 심리학이 얼마나 재미있는 학문인지 알고 싶다면, 그리고 글 읽기의 재미까지 덤으로 맛보고 싶다면 후자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