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넛지 - 똑똑한 선택을 이끄는 힘
리처드 H. 탈러 & 카스 R. 선스타인 지음, 안진환 옮김, 최정규 감수 / 리더스북 / 200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자유주의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개입주의는 특정인이 다른 사람의 자유에 개입하여 특정인이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려는 행위다. 즉 자유주의와 개입주의는 상반되는 말이다. 따라서 자유주의적 개입주의라는 모순되는 말이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넛지를 자유주의적 개입주의라고 정의한다.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하면서도 개입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는 셈이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
저자들은 이것을 ‘온건한 개입’이라고 부른다. 온건한 개입은 개입하는 사람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닦으라고 말하는 것은 개입이다. 하지만 이런 개입을 우리는 문제 삼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개입의 의도가 선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스크림의 바를 칫솔 모양으로 만들어 둔다면, 아이스크림을 먹고 난 뒤 이를 닦도록 개입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나? 오히려 이를 닦으라고 강요하는 것보다 훨씬 온건하지 않는가? 이를 닦든 그렇지 않든 그것은 개인의 자유다. 하지만 그 선택이 있어서 보다 더 좋은 쪽으로 선택하라고 옆구리를 툭치는 행위 이것이 ‘넛지’다.
문제는 ‘더 좋다’, 라는 것은 과연 옳은가? 분명히 눈에 보이는 것들이 있다. 이가 썩는 것보다 이가 온전한 것이 훨씬 좋고, 죽는 것보다 사는 것이 훨씬 좋다! 이것이 진리인가? 어떤 상황에서는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자유주의적 개입주의’는 인간을 조정하는 기만적 기술일 수 있다. 이 아주 작은 개입에 인간은 흔들린다. 이를 테면 한 실험에 따르면 따뜻한 음료를 마신 면접관들은 신입사원에게 합격점을 주지만 찬 음료수를 마신 면접관은 불합격점을 준다.
인간은 결코 합리적이지도 않으며 객관적이지도 않다. 아주 미미한 변화가 우리의 선택을 바꿔놓는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합리성을 띤 존재도 아니며, 신념이나 확신을 지닌 존재도 아니다. 우리는 자꾸만 변화하고 외부에 영향을 받는 나약한 존재다. 우리의 선택에 아주 미세하게 영향을 미치는 ‘자유주의적 개입주의’의 기술이 발전할 때 인간은 자기도 모르는 틈에 조정당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넛지’의 가장 큰 문제는 옆구리를 툭 치는 행위와 같은 아주 미미한 자극을 통해 생각할 시간을 뺏는다. 생각은 선택설계자가 하고 우리는 선택설계자의 선택설계에 따라 행하게 된다. 우리가 사유해서 스스로 행하도록 만드는 훈련을 시키는 것이 더 나은가 아니면 정교하고 교묘하게 설계된 선택설계에 따라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 중요한가? ‘넛지’는 엄밀한 차원에서 자유를 가장한 기만이다. 하지만 좋은 방향을 선택하게 만든다는 이 매력적인 주장을 무시할 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