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텍스트 문학과지성 시인선 349
성기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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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럴 수 있을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단어인데도 이해할 수 있는 단어, 그 문장의 혹은 그 문장구조에서 그 말이 아니고는 절대 안 될 것 같은 말이지만, 도저히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말, 그러면서도 그 의미를 또 딱히 알지 못하는 것은 아닌 그런 말이 가능할까? 정말 그런 말이 가능할까? 아래의 글에서 '도란스'(トランス(transformer, 변압기))가 그러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시인의 말

 

 

당신을 사용합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사랑을 사용합니다.

노래가 되었습니다.

마음의 현장 검증

있겠습니다.

1절 후렴

2절 후렴

3절 후렴

도돌이표를 메고

언덕을 올라요.

아 이 도란스

쌀 거 같아.

같거나 다르죠.

필요하실 때 다음의 후렴구를 떠올리거나

중얼거려주시기 바랍니다.

아릐 리마레 어무릴니 fa

  사랑해서 섹스할 수 있지만, 섹스해서 사랑할 수 있다. 당신을 사랑해서 섹스하면 나중엔 사랑은 사라지고 섹스만 남을 테지만, 섹스해서 사랑하면 나중엔 사랑이 남지 않을까? 정말 그렇다면 이 글의 첫 세 줄을 이렇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당신과(을) 섹스(사용)하니까 당신을 사랑하게 되고, 사랑과 다시 섹스하다보니까 노래가 되었다고 이해해도 되지 않을까, 라고 말이다. 그들의 사랑을 검증하는 동안에도 그들은 지치지 않고 다시 섹스한다. 사랑과 섹스하고 섹스와 섹스한다. 이 지독하고 질척한 섹스의 절정을 '오르가즘'이라고 말하는 것은 얼마나 맥빠지는 일인가. 오르가즘도 아니고 사정의 순간도 아닌 이 순간을 성기완은 '도란스'라고 부른다. 성적 희열의 최대치를 지정하는 새로운 언어 '도란스'. 이름은 의미 없는 곳에서 태어나 의미를 포괄할 뿐 의미를 (정확히) 지시하지 않는다. 그래서 의미는 이름 속에서 자신이 의미인지를 잊고 헤맬 수 없다. 그러므로 이름 속에서는 멈춘 채로도 흐를 수 있다. '정지의 변증법' 혹은 '정지의 역동성'이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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