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석의 사과꽃은 이미 지고, 병산서원 뜨락의 배롱나무는 여태도 붉은 꽃망울을 미열의 꽃대 속에 잠그고 있다. 때는 오월인데, 몸은 일월의 저잣거리를 헤매다닌다.
안 보이는 꽃들, 바람에 서늘해진 저물녘 꽃대들이 일회용 제기(祭器)처럼 허공 중에 떠다니다, 주린 내장을 자장면 몇 가닥으로 때우고도 그예
일월산을 넘지 못했다. 산의 중턱에서 다급히 차를 되돌렸으나 아아, 기어이 길위에서 부음을 받는다.
무너지며 덮쳐오는 칠통 같은 어둠! 뒤엉킨 자장면 검은 면발이 제 담긴 밥통을 쥐어뜯으며 어머니, 어머니 꺼이꺼이
울부짖는다.
이제, 타고 남은 당신의 분골에는 이연(已然)의 파도 한 자락, 미연(未然)의 물 한 방울 남지 않았다. 한 줌의 어머니, 마침내 서럽도록
깨끗하시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