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래는 몽골 말로 바다 문학동네 시인선 49
박태일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표제어에 등장하는 달래는 이 시집의 어딜 가나 저뿐인 듯떠들고 있다(달래). 그런 점에서 이 시집을 달래의 삶에 관한 이야기로 읽어도 좋을 것이다. 달래는 다른 몽골 아이들처럼 둥근 게르에서 둥근 돌멩이로 둥글게 금을 긋고 노는 철부지 아이다(사막). 그렇다고 해서 그 삶마저 둥글 수는 없을 것이다. 달래는 열 살 때 부모님을 여의고 소금 호수(헙스걸 호수)의 음식점에서 잔심부름을 하며 힘겹게 살아간다. (달래는 열 살이거나 달래의 부모님이 죽었을 때, 그 때의 나이가 열 살 일 수 있다.) 달래의 삶을 시인은 이렇게 노래한다.

달래는 슬픈 이름

한번 달래나 해보지

달래 바위에 피를 찧었던 일은 우리 옛적 이야기

유월부터 구월까지

하양부터 분홍까지

어딜 가나 저뿐인 듯 피어 떠드는 달래

달래는 몽골 말로 바다

두 억 년 앞선 때는 바다였다는 고비알타이

소금 호수 천막 가게에서

달래 장아찔 카스 안주로 주던

달래는 열 살

아버지 어머니

달래 융단 아래 묻은.

―「달래전문

달래는 네 가지 것의 이름이다. 사람의 이름인 달래, 바다를 뜻하는 몽골어 달래, 달래전설의 달래, 우리나라에서 냉이와 함께 대표적인 봄나물인 달래가 그것이다. 한국인인 시인은 달래라는 이름에서 달래전설을 먼저 떠올린다. 이 전설은 다른 이야기들처럼 마냥 슬프기만 한 것은 아니다. 산길을 걷던 남매는 비를 맞게 된다. 비에 젖은 누이의 모습에 성욕을 느낀 동생은 수치심에 자신의 성기를 돌멩이로 짓이겨 버린다. 동생의 행동을 지켜보던 누이는, ‘달래나 보지’(성교를 하자고 말이나 해보지) 혹은 이 시에서처럼 달래나 해보지라며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시인은 어쩌자고 이런 외설스러운 이야기를 떠올렸던 것일까. 부모를 잃고 고아로 살아야 했던 달래의 삶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바다(달래)의 평화로움과는 너무도 다른 삶이었을 것이다. “슬픈 이름을 가진 달래의 삶은 그러한 외설스러움과 섞여 있고, 달래는 그러한 삶을 실제로 살아 내야 했을 것이다. 이런 외설스러움이야말로 달래가 살아온 삶의 진실에 가장 근접한 말일 것이다. 허나 성적으로 난잡하고 무람없다는 뜻을 가진 외설이라는 단어를 온전히 살아낸 달래에게, 그것이 삶의 유일한 방식이었던 달래에게, ‘외설스럽다고 말하는 것은 얼마나 무람한 일인가. 얼마나 지나친 사치인가, 우리의.

이러한 달래의 삶은 달래 한 명의 이야기로 그치지 않는다. 달래가 달래 융단아래에 부모님을 묻었다는 것은, 6월에서 9월까지 지천으로 피어나는 달래 나물만큼이나 그런 슬픈 삶이 몽골의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말일 것이다. ‘조아라라는 한국 이름을 가진 관광 가이드(조아라를 기억해주셔요), “한국 노총각 몽골 처녀 짝짓는 일을 보는 언니를 돕는 사를어넌, 울리아스 나무 가득한 마을 울리아스태에서 태어날 아이들(울리아스태는 울지 않는다), 다리강가에서 살아가는 여인들(다리강가), 한국전쟁 때 몽골로 피난와 시인에게 사이다를 건네는 몽골의 한국인(사이다)까지, 나아가 말없이 죽음을 감내하며 살아가는 까지도 달래의 슬픔과 겹쳐 있다. 이런 달래들이 살아가는 이곳에서, 낙타가 사람을 배워 사람처럼 흐느낄 때 낙타를 배워 / 무릎을 꿇는시인의 모습을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다(낙타 눈물).

시인은 이러한 달래들의 삶을 둥근 슬픔에 찔리는 일이라고 말하였다(타락을 마시는 저녁). “둥근 슬픔이란 슬픔이 일상이 되어 무뎌진 슬픔을 의미할 것이다. 비록 슬픔이 일상이 된다하더라도 슬픔은 익숙해지지 않는 법, 그러니 아무리 슬픔이 무뎌져도 그 슬픔은 아플 수밖에 없다. 하여 둥근 슬픔에 찔리는 일이란 익숙해지지 않는 슬픔의 최대치를 이르는 말일 것이다.

시인은 어떻게 이런 말을 건져 올렸던 것일까? 더욱이 시인이 사용하는 시어가 언어유희처럼 가볍게 느껴지는데도 말이다. 몽골어 달래가 달래전설, 달래 나물로 인식되었듯 몽골의 요거트인 타락(тараг)은 타락(墮落)으로 전유된다. 전유(Appropriation)란 원래의 것을 수용자 자신의 맥락에 맞추어 인식하는 방식을 말한다. 그런 이유로 이것을 재문맥화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거추장한 말의 외피를 벗겨내고 나면, 전유는 자기 멋대로 이해하기, 또는 왜곡이나 오독하기 정도다. 그런 점에서 시인이 사용하고 있는 시어들을 말장난으로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이런 말장난을 일삼으면서도 어떻게 그들의 슬픔을 절절하게 이해하고 공감의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던 것일까? 그렇다면 이제 물어야 할 것은 말장난의 존재 이유와 그 가능성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

다시 이름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이름에는 아무런 뜻이 없다. 달래라는 말을 이해하기 위해 시인은 달래와 유사한 우리말을 찾았다. 이것은 대상을 이해하려고 할 때 일어나는 필연적이고 필수적인 과정이다. 푸코(Michel Foucault)동일성들의 질서가 가시적[으로 형상화되기] 전에 닮음이 감지될 수 있게 하는 재현의 포착할 수 없는 혼란이 대상(혹은 자연)을 인식하는 과정이라고 말한 바 있다(󰡔말과 사물󰡕(이규현 옮김), 120). 어려워 보이는 이 문장을 간단히 정리하자면, 낯선 대상을 이해하려고 할 때 우리는 그 낯선 대상을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유사한 어떤 것으로 대체하려 하고 그 과정에서 혼란이 생기게 된다. 결국 낯선 대상을 이해하려 할 때 왜곡이 일어나는 것이며, 그러한 왜곡은 필연적이다.

푸코보다 훨씬 앞 세대인 베냐민(Walter Benjamin)은 이와 관련된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준 바 있다. 그것은 베냐민이 학교에서 아이들과 놀다가 Kupferstich(동판화)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들었었던 그 때의 이야기다. 그는 이 단어의 뜻을 알기 위해 온종일 고민했다고 한다. 다음 날 베냐민은 ‘Kupferstich’라는 단어를 말한 아이에게 의자 아래에서 머리를 쓱 내밀어 보이는 Kopf-verstich(머리 찌르기)를 다짜고짜 선보였다(󰡔1900년경 베를린의 유년시절󰡕(윤미애 옮김), 81). 그러니까 베냐민은 처음 들어 본 Kupferstich라는 단어를 자신이 아는 단어들로 조합하여 자기 식으로 이해했던 것이다. 이 시집에 등장하는 바씅 영감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바이스태는 안녕히 가세요 줄이면 바카

박씨는 몽골 말로 선생님

됫박에 고봉 콩이 쏟아지듯 그가 웃는다.

바카 박 박씨야 바카 박 박씨야

몽골 낮달은 흰 달걀 이를 지녔다.

―「생배노 몽골부분

바카 박 박씨이 말은 몽골어로 잘 가요, 박 선생님정도 일 것이나, 바씅 영감은 이것을 [밬 박 박]으로 바꾸며, 훼치는 닭을 흉내 내며 웃었던 것. 시인은 이 유머러스한 광경에 몽골의 낮달과 흰 달걀과 바씅의 흰 이()를 겹쳐 놓고 있다. 이렇게 해서 절묘한 장면이 탄생했다.

여기서 푸코의 말을 조금 더 따라가 보자. 낯선 대상을 이해한다는 것은 낯익은 대상으로 억지로 치환하려는 노력에 불과하다. 푸코는 이것을 -현의 얇은 돌출부에서 일어나는 혼란이라고 이야기했다. 우리는 낯선 대상을 이해할 수 없고, 그러한 당혹감을 숨길 뿐이다. 우리는 끝끝내 낯선 대상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익히 안다고 여겼던 것 역시 처음에는 낯설었을 것이므로 우리는 어떤 것도 자신 있게 안다고 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낯선 것을 이해하기를 그만둔다면 우리는 결국 모든 것을 모르고 말 것이다.

해서 말장난은 필요하다. ‘바카’, ‘’, ‘박씨라는 의미 없는 이름을 닭소리로 뒤바꿔 내는 그런 노력 아니 그런 놀이가 없었다면, 바씅은 박태일이라는 시인을 기억할 수 없을 것이고, 시인 또한 바씅을 잊고 말았을 것이다. 시인은 저 알 수 없는 몽골말과 자신이 아는 한국말을 여섯 해를 비벼대는 동안 그들의 슬픔이 자신의 슬픔으로 옮겨 올 수 있었을 것이다. 한낱 말장난으로 보이는 것들이 아니 말장난이, 언어와 언어를 만나게 하고, 나아가 언어를 물질화시켜 대상을 감각할 수 있게 만들고 나아가 대상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 만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