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들 마지막 왕국 시리즈 3
파스칼 키냐르 지음, 류재화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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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욕망은 자기에서 나오게 한다. 공간 이편에서 나오게 한다. 암수 구별된 생체는 상동성idem에서 나온다.  

시간의 두 조각은 돌연 서로 황홀해지며 편극된다.

이 두 경우, 편극성은 축이 형성되는 지점에서 특히 강하다. 이 축과 이 긴장성이 향방의 정도를 결정한다. 욕망은 증가하다 돌연한 상호성으로 시간의 벽에 부딪히는가 싶게 부서진다(시간 자체는 비가역적인데, 갑작스레 내부에 가역성이 생김으로써 제안에서 부서지는 것이다).

양극은 이토록 기이하게 팽창한다.

이것이 성교co-ire.

Ire는 라틴어로 가다라는 뜻이다. 성교는 한순간 함께 헤매는 일이다.

한순간의 동반자.

한순간의 아찔한 동반자. 녹아 퍼지는 순간 나른하게 떨어지는 순간, 그들은 속삭인다. 그들의 사지를 죽도록 밀착시켜 두 몸이 더 이상 분간되지 않게 한다.

언어는 두 대화자가 호환 가능한 장소이다. 거기서 상이성은 포기된다. 성적 편극성은 포기된다. 언어는 편극이 감극되는 곳으로, 거기서 양성성은 망각되고 인간들은 서로 호환된다. 언어에서 교환되는 종신적인 나je라는 주어는 성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

이어 욕망이 다시 태어난다. 시간이 다시 태어난다. 봄이 다시 태어난다. 분리가 다시 태어난다. 차이가 다시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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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교 뒤에 이어지는 '사랑해'라는 말은 둘을 비로소 소통하게 만든다. 그 말 속에서 연인은 남자와 여자가 아니라 한 몸으로 존재하게 된다. 이때 '나'라는 단어가 비로소 '나'라는 의미를 분명하게 갖게 된다. '나'란 본래 이런 것이다. "'나'라는 말에는 성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 '나'는 결코 독립적일 수 없다. '너'가 없다면 '나'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서정윤은 <홀로서기>에서 "둘이 만나 서는 게 아니라 홀로 선 둘이가 만나는 것"이라고 했다. 여기에 첨언하자면, 그렇게 만난 둘의 완전한 결합 속에서 하나가 될 수 있다. 사랑이 아니면 '나'가 '나'로 완전할 수 없다는 사실을 결코 알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순간은 휙 지나쳐 버리고 만다. 왜 욕망은 부서지고 마는 것일까, 왜 양성성이 망각되고 인간이 서로 호환되는 지점은 지속될 수 없는 것일까. 키냐르는 그 이유를 설명하는 대신 '갑작스레' 또는 '이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을 만큼 분명하다. 원자의 핵과 핵은 단 한 번의 충돌만으로도 우주를 만들 수 있다. 남성과 여성의 만남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그리하여 사랑은 더 넓은 우주 속에서 '너'가 있음을 확인하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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