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바퀴 아래서 - 짓눌린 영혼에게 길은 남아있는가
헤르만 헤세 지음, 랭브릿지 옮김 / 리프레시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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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정해진 "행복"과 "성공"의 모습. 그리고 늘어나는 우울증과 분노조절장애..몇십년 국가과제인 사교육과 대입. 최근 핫한 "의대준비반"..대한민국이 새겨읽어야할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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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바퀴 아래서 - 짓눌린 영혼에게 길은 남아있는가
헤르만 헤세 지음, 랭브릿지 옮김 / 리프레시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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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책을 제공받고 완독 후 작성하는 리뷰입니다]



「수레바퀴 아래서」는 우수한 성적을 가진 아이가 신학교에 들어가면서 신경쇠약에 걸려 학교를 떠나고 고향에서 다시 삶을 이어가는 이야기이다. 누구나 그의 미래를 꿈꾸고 마을의 모든 사람의 기대를 받던 '특별한 아이', 소위 '성적우수자'. 쉬는 시간조차 공부를 위한 준비 시간이며 낚시의 즐거움조차 사치인 아이. 그러한 아이가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하고, 꿈을 가지고 원하던 신학교에 들어간다. 하지만 두통에 시달리고 공부에 조금씩 흥미를 잃고 이것이 낙인이 되어 더 공부에 흥미를 잃는 악순환 끝에 결국 학교를 떠나고, 그 이후의 삶 역시 그려내는 마음 아픈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 익숙하지 않은가?


수험생들에게 잠이 중요한 이유는 맑은 정신으로 집중해서 공부하기 위해서이고, 운동이 중요한 이유는 공부할 수 있는 체력을 만들기 위해서이다. 만성두통에 시달리면서 수학과 영어와 역사, 국어에 시달리고 학원이나 과외의 갯수가 늘어난다. 모든 학교를 졸업 한 이후 자신의 멋진 삶을 위한 과정.


바로 대한민국의 이야기이다.

100년도 더 전에 쓰여진 책이지만, 지금 대한민국에게 필요한 이야기가 아닐까.



영어유치원이 핫했다면 지금은 "의대준비-유치부반"이 핫하다. 영어유치원을 입학하기 위한 영어시험을 위한 영어과외 이야기야 이미 오래된 이야기이고, 유치원 때부터 수많은 사교육이 존재한다. 내가 알던 한 아이는 7살에 논술, 연산, 사고력 수학, 영어, 한국사, 미술, 피아노, 줄넘기 이렇게 8개의 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맞벌이여서 아이를 맡겨야해서도 아닌 외벌이 집이었다. 이 아이뿐이랴. 초등학생이 되면서 다들 국영수 학원이 인생의 필수코스가 된다. 그리고 아이들은 초등학생부터 집에 7시 8시에 오는 풍경은 많은 집에서 볼 수 있다. 편의점에서 밥겸 간식을 떼우고 집에 와서 다시 밥을 먹고 학원 숙제를 하는 풍경. 저 쪽 동네는 초등학교 5학년이면 중학교 수학은 이미 3~5바퀴 돌렸고 한 번 더 중학 수학을 할지 이제는 고등학교 수학을 갈지 고민한다는 이야기, 듣기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다. 이런 대한민국의 어린이와 수험생들이 모두 '수레바퀴 아래서'의 한스가 아닐까.


오래된 책을 읽으면 얼마나 많은 일들이 백년도 더 전에 지금과 같은지 놀랍다. 그리고 그 문제점들을 백년도 더 전에 알고 있는데 해결되지 않는다는 일은 더욱 놀랐다.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으며 한스의 빛나던 인생이 아까워서 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책을 읽는내내 질문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좋은 대학교를 가는 일과 행복의 상관 관계는? 대한민국의 수많은 아이들이 가장 빛나고 열정 넘치고 에너지 넘치는 시기를 책상 앞에서 보내며 시들어 가고 있는건가? 늘어나는 우울증과 분노조절장인 사람들, 그리고 점점 낮아지는 그들의 연령, 「수레바퀴 아래서」가 우리의 자화상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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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버멘쉬 - 누구의 시선도 아닌, 내 의지대로 살겠다는 선언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어나니머스 옮김 / RISE(떠오름)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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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책을 제공받고, 완독후 작성하는 글입니다]



니체와 관련된 책을 제법 읽었다고 생각하는데, 이렇게 다시 접하는 그의 생각들은 좋다. 


더욱이 이번에 라이즈 출판사에 나온 「위버멘쉬」는 조금 다르다. 이전의 니체의 책들은 니체의 이야기를 본인의 입장에서 해설을 해놓은 '해설서'이거나, 니체의 글들을 직접적으로 번역해서 쭉 소개해주는 방식이었다. 「위버멘쉬」 이러한 니체의 글을 나열하고 소개하는 책과, 그의 글을 해설해놓은 책을 모두 합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성장, 인간관계와 감정, 그리고 세상을 보는 시각 - 이렇게 3개의 주제로 니체의 이야기를 나누어서 소개해주고 있다. 각 주제에 맞게 니체의 생각을 제목으로 잡고 니체의 생각과 옮긴이가 현대사회에 맞게 각색한 이야기를 소개해주고 있다. 마치 니체의 잠언집인 듯, 큰 제목 아래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니체의 생각들을 소개해준다.




「위버멘쉬」는, 니체의 여러 저서 중에서 특히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을 기반으로 니체의 사상을 소개한 책이다. 책의 첫 부분에 옮긴이가 소개를 했듯이 번역보다는, 현대인의 삶에 맞게, 지금을 사는 우리가 더 공감할 수 있게 새로운 글로 구성을 하였다. 옮긴이는 독자가 니체에 집중할 수 있도록 자신의 이름을 '익명(anonymous)'으로 하여 니체의 이름 뒤에 숨기고 있지만 사실 이 책은 옮긴이의 숨이 많이 들어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이러한 부분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 '진짜 니체책은 아니다'라는 작은 벽을 가지면서 읽었는데, 첫 부분부터 필사를 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였다. 오히려 이러한 옮긴이의 글들로 우리는 니체의 생각을 지금 우리의 삶, 우리의 생각, 우리의 마음, 그리고 우리의 하루하루에 어떻게 적용시키고 받아들여야하는지 명확히 알 수 있게 된다.



막연한 기대나 추상적인 생각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해라.

삶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삶은 선택이고,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기억하라.

삶의 의미는 이미 정해진 무엇이 아니라, 당신이 행동하는 순간에 일어난다.


p.45




그렇다면, 책 제목의 「위버멘쉬」란 무엇일까? 위버멘쉬라는 생소한 단어와 우리를 정면에서 뚫어지게 보고 있는 눈. 이 커버야 말로, 사실은 니체가 하고 싶은 모든 이야기가 잘 함축되어 있지 않을까 싶다.



"위버멘쉬"란, 니체가 늘 말하던 우리가 되어야 할 "초인"이다. 니체의 책을 보면 늘 우리가 목표로 삶아야 할 인간상으로 "초인"의 이야기가 나온다. 니체의 말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신은 죽었다" 역시 결국, 그러하기에 인간 자신이 "초인"이 되어야한다는 이야기로 연결되기에 이 제목은 니체의 핵심 단어가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니체가 말하는 초인이란 무엇일까?



"위버멘쉬"란, 즉 초인이란, 책에서 이야기하듯이 "세상이 정해놓은 기준을 스스로 뛰어넘고, 주어진 모든 고통과 상황을 의지로 극복하면서 '지금의 나'를 넘어서는 최고의 자신을 꿈꾸는 존재"다. 책에는 이 설명 외에 위버멘쉬에 대한 설명을 조금 더 풀이하고 있는데 결국 이 책 역시 위버멘쉬, 즉 초인이 되기 위해 우리가 가져야 할 생각을 니체의 글을 빌려 이야기하고 있다. 이렇게 현실에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외부의 압력이나 생각, 그리고 현재의 고통에서도 자신을 성장할 수 있는 길을 찾으라는 니체의 이야기를 이 책 한권에 잘 담아내고 있다.



때로 넘어지고 실수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과정을 통해 배우고 성장하며, 오직 나만이 지니고 있는 소중한 삶의 방식을 지켜나가는게 무엇보다 소중하다.


p,254




니체의 저서들의 직번역본을 읽어본 사람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철학책이 어려운 사람은 잠언집을 보는 마음으로, 나처럼 니체과 관련도니 책들은 몇 권 읽었지만 아직 니체의 저서 번역본을 시도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디딤판으로 읽기에 좋은 책이다. 꽃피는 봄, 나 자신의 소중함을 생각하며 힘을 내게 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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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버멘쉬 - 누구의 시선도 아닌, 내 의지대로 살겠다는 선언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어나니머스 옮김 / RISE(떠오름)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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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이야기를 마치 잠언집처럼 편안하게 만날 수 있는 책입니다. 지금의 3, 40대에게 정말 좋을 듯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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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다르타
헤르만 헤세 지음, 랭브릿지 옮김 / 리프레시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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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한 것입니다>



그는 다시 미소를 지었다.

그의 운명은 참으로 묘했다.

내려가는 길 끝에 다다른 줄 알았는데.

지금 이렇게 빈손으로 세상 속에 멍하니 서 있게 된 것이다.

p.155


싯다르타가 어떤 책이냐고 물으면, 한 마디로 '세상의 진리와 참된 자아를 찾아나서는 여행'이라고 말할 것이다.


싯다르타의 내용은 그야말로 자아를 찾아나서는 이야기이다.

주인공 싯다르타가 고향을 떠나서 수행자(사마나)가 되었다가, 부처(고타마)를 따라나서 가르침을 맞다가, 도시로 들어가서 속세와 욕정(사랑)을 탐하다가, 다시 이를 모두 버리고 뱃사공이 되면서 자연속에서 깨달음을 얻는 이야기이다. 이야기를 읽다보면, 싯다르타의 내면의 변화와 환경의 변화로 싯다르타가 무엇을 깨달으려고 하는지 독자는 잊어버릴 수 있다. 하지만 책 중간중간에 싯다르타가 계속해서 "참된 자아" "자신의 내면"등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싯다르타는 참된 자아를 찾아나서는 수행자로 어떻게보면 신비로와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작가 헤르만 헤세는, 그를 아주 인간적으로 표현하였다. 부처에게 자신이 배울 수 있는 것은 없다고(자신이 찾고자하는 것을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한 싯다르타는 친구와 부처를 떠나면서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도대체 나는 스승과 가르침을 통해 무엇을 배우고자 했던 것일까?"

그리고 바로 깨닫는다.

"내가 배우고자 했던 것은 바로 자아였어.."


이렇게 우리는 가끔 우리의 목표를 잃어버린다. 싯다르타는 분명히 수행자가 되기 이전에 참된 자신을 찾아나서리라, 그러기 위해서 수행자가 되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렇게 가끔, 사실은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무엇을 배우려고 하였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부처에게 직접 아무리 훌륭하고 결점이 없는 가르침이라도, 스스로 해탈을 찾아가야한다고 하면서도 이렇게 무엇을 배우고자 자문하는 모습, 이러한 모습은 신비로워 보이면서도 사실은 너무나도 인간적인 모습인 것이다.



그 후 싯다르타는 소위 '속세의 맛'을 보게 되는데 이 역시 싯다르타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작가는 끊임없이 싯다르타가 세상을 보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마치 그가 우리 범인들과는 다르다는 듯 표현한다. 하지만 하나하나 들여다보면서 싯다르타가 얼마나 인간적인지 보여준다. 싯다르타는 아름다운 여인, 카말라에게 사랑을 배운다고 하지만 사실은 진정한 사랑을 배우지 못한다. 그 둘은 서로의 내면은 닮았다고 하지만 아이처럼 서로를 사랑하지는 못한다. 싯다르타는 도시의 사람들을 사랑하면서 동시에 그들을 경멸한다. 그리고 부를 쌓아가면서 그가 경멸하던 세상 속에 점점 자리잡으면서 자신을 조금씩 잃어간다. 그러면서도 헤르만 헤세는 싯다르타 속에 남아있는 과제, 고뇌를 놓지 않는다. 카말라의 눈을 통해 그가 고향을 떠났을 때 안고 나온 숙제는 그의 속에 있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알려준다. 그리고 마침내 그에게 슬픔과 함께, 그가 애써 묻었던 자신을 잃어가고 있는 슬픔을 그에게 알려준다.




책을 끝까지 읽어보면 싯다르타는 결국 해탈의 경지에 이르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속세에서 싯다르타의 모순된 모습은 현실의 우리를 아주 닮았다. 자신을 찾고, 자아를 이루고자하는 우리-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현실에 발을 떼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그려냈다. 책의 끝, 뱃사공 싯다르타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는 친구에게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지만, 어쩌면 이것은 그렇게 거창한 일이 아닐 수 있다. 싯다르타는 아마,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법'을 알게되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것은 사실 우리 모두도, 조금의 노력만 요한다면 할 수 있지 않을까? 자연 속에 들어가고, 모든 세상 일에 답을 가지고 있고, 두려움없이 내면의 목소리를 듣고 인생을 살수는 없을수도 있다. 하지만 계속해서 내 자신과 소통하고자 하고, 하늘을 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진다면 싯다르타의 경지는 아니어도, 지금보다 더 우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사실, 싯다르타를 처음 읽은 것은 아니다. 10대 때 데미안을 읽고 헤르만 헤세에 반한 후 그의 책들을 찾아 읽었기 때문에 예전에 이미 읽은 책이다. 그 당시 나에게 싯다르타는 종교적이고, 신비롭고, 나와는 세상이 다른 한 사람을 신격화한 책과 같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렇게 거의 30년이 지나서 읽어본 싯다르타는 위에 쓴 것처럼 조금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물론, 나는 수행자가 될 수도 없고 되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내면의 목소리'와 '진정한 나 자신의 힘'을 믿고 있는 사람으로서 싯다르타는 조금 더 친근한 인물로 느껴졌다. 작가 역시, 우리 속에 있는 싯다르타를 찾기를 바라며 이 책을 쓰지 않았을까, 혼자 생각해보며 책을 마무리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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