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산 평전 역사 인물 찾기 20
이원규 지음 / 실천문학사 / 2006년 10월
평점 :
품절


읽은날 :2006년 12월 30일

대학다닐때 읽었던 “아리랑”의 감동이 있어서 다시 읽게 되었다. 이전에 “약산 김원봉”을 쓴 이원규씨가 쓴 책이라 더 손이 갔다. 그때 워낙 재미도 있었고,조국광복을 위해 한 목숨 바친 많은 분들을 알게 되어서다.
이책을 읽고 나서의 느낌도 비슷하다. 조국독립의 길을 공산주의 사상을 통해 성취하려 했지만 결국은 빼앗긴 나라를 다시 찾으려는 순수함에서 출발한 것이다. 시대가 바뀌어 지금은 국가에서 훈장도 받았지만 안타까운 일이다.아직도 이들의 숭고한 노력을 폄훼하는 자들이 득세하고 있으니 말이다.
함께 등장했던 분들의 나중 상황을 보니 또다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중국에서 민족주의 진영에 서서 독립운동을 했던 분들은 해방후 대부분 남한으로 돌아와 미국과 이승만정권과 친일파들의 득세로 변변한 대접도 받지 못한채 이름없이 사라졌다. 김구선생,이책에 등장하는 김성숙 같은 분들. 북으로 간 사람들도 1958년 연안파 숙청때 거의 제거 되었다.
결국,남에서도 북에서도 이들은 버림받은 것이다.
김산,장지락이 살아있었어도 아마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조국독립을 위해 죽어 갔을때가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바라던 조국의 해방은 왔지만 외세에 의해 나라는 두개로 동강나고,한쪽은 친일파들이 득세하고,한쪽은 소련의 세력을 등에 업은 소련파들이 정권을 잡고 있었으니 말이다.
박정희,그 똘마니들,최규하 이런 인간들보다는 훨씬 나은 삶은 살아온 사람들인데 말이다.
여하튼,한시대를 최선을 다해,정의를 위해,자기 한몸보다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말없이 스러져간 고인들에게 감사와 명복을 빈다.
그런분들이 있었기에 그나마 우리가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현충일 이런때 육이오,베트남 이런거 말고 이런분들을 위해 감사와 존경을 보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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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CEO 누르하치 - 중국을 M&A한 오랑캐式 경영전략 SERI 연구에세이 23
전경일 지음 / 삼성경제연구소 / 2005년 7월
평점 :
품절



일자 : 2006년 11월 1일  


최근 칭기스칸과 관련된 책을 두권 읽고 그 연장선상에서 이책을 읽게 되었다.
만주지역은 원래 고구려와 발해가 지배하던 지역이었으나 신라의 삼국통일이후 방치되어 여진족의 터전이 되었다. 만주 여진족은 중국의 역사에서 두번이나 주인으로서 역사를 차지하는데 금나라와 청나라이다. 중국의 역사를 보면 정착민족인 한족과 주변 유목민족이 번갈아 나라를 이어 갔음을 알수 있다. 그 만큼 유목민(흔히 우리가 오랑캐라 부르는)과 중국의 역사는 떼어 놓을 수 없다. 유목민들은 타고날 때부터 가혹한 환경에서 생존하는 법을 배웠고,사냥등을 통해서 전사로 키워졌다. 말을 이용한 탁월한 기동성과 기마궁수로서의 전력은 훈련되지 않은 농민병사로 이루어진 정착민족과의 전쟁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최근 총포가 본격적으로 전쟁에 도입되기 전까지 모든 전쟁에서의 우위는 기마민족에게 있었다. 누르하치 또한 뛰어났던 유목민족중 하나인 여진족의 부족장으로서 내부분열을 통일로 뭉치게 하고 팔기군이라는 강력한 조직체제를 만들어 선택과 집중의 전술을 제대로 활용해 부패할대로 부패한 명나라를 멸망시킨다. “존명사대”를 외치다 병자호란을 당한 우리의 역사도 여기에 해당한다. 시대의 도도한 흐름을 제대로 간파하고 전략과 전술을 제대로 활용하는 자, 그는 마침내 영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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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김옥균을 쏘았다 - 조선의 운명을 바꾼 김옥균 암살사건
조재곤 지음 / 푸른역사 / 2005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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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07년 1월 1일

갑신정변의 주역 김옥균은 알았지만,(사실 그 내용도 국사시간에 배운내용정도지만) 그 암살범이 조선정부에서 보낸 단순한 자객정도로만 알고 있었던 나에게 이책은 새로운 내용을 알게 해주었다. 홍종우-우리나라 최초의 프랑스 유학생,서구 열강으로부터 자주적으로 근대국가를 만들고자 했던 또 한사람의 애국자였던 것이다. 김옥균이 일본의 힘을 빌려서 근대화를 이루고자 했다면,홍종우는 기존의 체제를 변화시키면서 근대화를 이루고자 했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가 수구 보수세력은 아니었던 것이다.
만약 김옥균의 갑신정변이 성공해서 우리나라도 제대로근 스스로의 근대화를 이루었더라면,아니면 다른 노력들로 인해 일제병탄이 아닌 스스로의 근대화를 이루었더라면.. 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불과 100년전의 일이다. 100년동안 우리는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았는가,또 아직도 받고 있는가. 36년간의 일제에 의한 나라잃은 서러움과 그원인으로 인한 남,북 분단체제의 지속까지 모든 것이 급변하던 당시 상황에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탓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에서 어느 한편만 좋은 일이고,다른편은 다 수구가 아니라는 것도 이책을 통해 깨달았다. 독립협회나 만민공동회 에서도 당시 상황을 오판하고 친일적인 부분이 얼마든지 있었고, 홍종우와 같은 3의 노선도 충분히 있었음을 알게 된것도 이책을 읽은것에 대한 도움이다.
안타까운 한 인물에 대해 알게된 것도 큰 수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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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 군인 박정희
정운현 지음 / 개마고원 / 2004년 10월
평점 :
절판


일자 :2006년 10월 17일

군인,박정희. 어쩌면 박정희가 군인이 되지 않았다면 우리 현대사에서 이렇게 큰 위치를 차지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어린시절부터 군인이 되고 싶어했고,가난함 속에서도 우수한 성적으로 구미보통학교 개교이래 처음으로 사범학교를 진학한다. 물론 그가 바라서 간 것이 아니고 학비도 적게 들고 졸업하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선생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리라. 아버지의 권유에 따른 결혼은 만족스럽지 못했고, 보통학교 선생을 하는 동안 군인의 길을 가기위해 만주를 선택한다. 그당시 젊은이들에게 만주는 새로운 기회의 땅이었다. 물론 이대목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독립군으로 가지않고 일본군관학교에 입학하였는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지만, 내 생각에 박정희는 군인이 되고 싶은 강렬한 욕망과 그 당시 일제에 의해 진행된 황국신민화 정책에 의해 보통학교 6년,사범학교5년을 다니면서 몸에 밴 일본에 대한 충성심,당시 일제치하30년이 지난 시점에서 우리힘으로 자주독립을 한다는 것을 거의 포기하다시피하여 친일로 돌아선 수 많은 인사(춘원 이광수,최남선 등등)을 우리가 알고 있다면 일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오로지 군인이 되는 것이 최고의 길로 알았던 박정희에게 독립군으로 입대를 이야기 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당시 독립군이라고 해봐야 일본군대에 비하면 세가 약했고, 국내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도 않은 사실을 안다면 말이다.
그래서,더 더욱 일제치하 만주에서,중국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선열들에 대한 존경이 새삼스럽다. 누구나 가고 있는길을 거꾸로 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그것도 일제의 힘이 최고조로 달한 그 시점에 조국해방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없던 그 시기에..
더 더욱 존경할 일이다.
만주 군관학교와 일본 육사로의 편입,우수한 졸업성적등으로 볼 때 박정희는 천상 군인의 길이 적성에 맞았던 것 같다. 아마도 해방이 되지 않았다면 일본군인으로서 출세의 길을 달려 갔을 것이다. 물론,식민지 조선군인으로서의 한계와 가끔은 항일운동하는 형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민족의식 사이에서 고민했을지라도…
해방후, 모든 꿈이 산산히 조각난 그 시점에서, 미군정에 의해 세워진 이승만정권하에서 만주군맥과 일본육사출신들은 또 다시 등용되고,한국전쟁을 통해 빠르게 출세의 길을 걷게된다.
이 대목에서의 아쉬움,이승만정권보다 몽양 여운형이나,백범 김구가 정권을 잡았다면 군,경찰에서 이토록 친일파들이 득세하지는 못했을 것인데,당시 남한의 정세는 미군이 좌지우지 하고 있었으니 어쩔 수 없는 안타까움. 그리고,박정희의 남로당 조직누설에 의한 수많은 군부인맥의 숙청을 돌이켜 볼 때, 당시 남로당의 정책실패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여순 반란사건이나, 여러 차례의 군부폭동을 야기 함으로써 조직이 드러나고,숙청당하는 상황이 발생하여,향후 6,25전쟁이 발발했을 때 쉽게 남한군대를 장악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린 것이다. 남로당 정책의 실패다.
박정희는 5,16이전에도 쿠테타 모의를 한적이 있다. 당시 부정부패와 무능력으로 일관한 이승만 자유당 정권이나 장면정권을 볼 때 동의하지 않는 바도 아니나,결국 평화적 민주적으로 정권이양이 되야 되지 않았을까? 아니면 초기 10년이내로 만족하고 물러났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총으로 흥한자 총으로 망한다”라는 말.

박정희에 대한 공과 과를 다 인정해야 할 것같다. 그동안 젊은 혈기로 독재정치의 화신으로만 치부하던 박정희를 다시한번 곰곰히 살펴보니, 일부 인간 박정희의 모습이 보이고, 그 사람이 살았던 시대상황에서의 그 사람의 한계를 이해할 수 있었다. 모든 사람은 공과 과 가 있는 것 같다. 어느 하나로 그 사람을 모두 평가해서는 안될 것 같다.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군인의 길을 꿈꾸었고, 그 한길로 갔던 박정희.
조국 근대화의 성과로 이루어냈지만, 장기 독재로 인한 민주주의 발전을 가로 막았던 사람.
그 역시 한사람의 영웅이 아니었을까? 북한의 김일성이나, 쿠바의 카스트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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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백년 명문가의 자녀교육
최효찬 지음 / 예담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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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 : 2006년 11월 7일
500년 명문가에서 전해 내려오는 자녀교육의 노하우를 배워서 우리 아이들도 잘 키워보고 싶다는 느낌으로 이 책을 읽었다. SMTC기간동안 한경지점장이 소개해준 책인데 우연히 서점에 들렀다가 초반부 읽어보고 바로 구입결정을 하였다. 추천의 글을 쓴 이어령 선생도 얘기했지만 어려서 어머님이 읽어주시던 책들이 지금 그의 서재에 수 만권의 책을 쌓게 했고,수십권의 책을 쓰게한 원동력이라는 이야기는 나에게도 큰 가르침을 준다. 이책에 소개된 10개의 명문가 대부분의 공통점은 책읽는것에 대해 소중하게 생각하게 실천하였다는 것이다. 나또한 책을 좋아하고 어떻게 하면 집을 책읽는 분위기로 만들까 고심하는 사람으로서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았다. 이책의 저자의 바람대로 이책의 내용들을 잘 실천하여 우리 아이들을 경쟁력 있는 인재로 키워 당대 명문가의 초석을 쌓을 수 있다면 더 바람이 없겠다.
10개의 명문가를 소개해보면 “서애 유성룡 종가,석주 이상룡 종가, 운악 이함 종가, 다산 정약용가, 호은 종가,명재 윤증 종가, 경주 최부잣집,소치 허련 가문,퇴계 이황 종가,고산 윤선도 종가”등이다. 그중에서도 맘에 와 닿는 부분은 서애 유성룡종가의 “책 읽는 아버지가 되라”와 조광조의 후손인 호은 종가의 “죽을 먹을지언정 더 넓은 세상으로 유학을 보내라”라는 부분이다. 우리아들 형래도 기회가 된다면 기회의 땅인 중국으로 유학을 보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던차에 이런 모범사례를 보니 정말 어렵더라도 꼭 실천해야겠다라는 각오를 새롭게 다지게 된다. 공감하는 사례도 많았지만 한편으로는 유교사회에서 특히 유교이념에 너무도 충실했던 조선시대에 몇대를 과거 급제하고,공직에 있고,가문을 빛내기 위해 집단으로 수학하는 모습속에서 혹시 “그들만의 잔치”는 아니었는지.문에 너무 치우친 나머지 상무정신이 약해져 결국 임진왜란과 병자호란,결국의 일제에 의해 나라가 병탄되는 아픔을 겪은 것은 성리학중심의 학문과 가문중심의 발전에 치우치고 당쟁을 일삼는 폐혜는 없었는지 되돌아 볼일이다. 빠르게 변화하던 세계정세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오로지 성리학(특히나 집권세력이던 노론)만 매달리던 상황을 생각해보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특히 요즈음 읽고 있는 “유라시아 유목 제국사”나 “칭기스칸”의 내용과 비교해 봤을 때 지나친 정주문명의 울타리안에서 고구려,발해로 이어지던 우리 조상들의 힘찬기운을 잊어버리고 오로지 성리학에만 몰두하던 조선의 선비들은 많은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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