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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 군인 박정희
정운현 지음 / 개마고원 / 2004년 10월
평점 :
절판
일자 :2006년 10월 17일
군인,박정희. 어쩌면 박정희가 군인이 되지 않았다면 우리 현대사에서 이렇게 큰 위치를 차지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어린시절부터 군인이 되고 싶어했고,가난함 속에서도 우수한 성적으로 구미보통학교 개교이래 처음으로 사범학교를 진학한다. 물론 그가 바라서 간 것이 아니고 학비도 적게 들고 졸업하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선생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리라. 아버지의 권유에 따른 결혼은 만족스럽지 못했고, 보통학교 선생을 하는 동안 군인의 길을 가기위해 만주를 선택한다. 그당시 젊은이들에게 만주는 새로운 기회의 땅이었다. 물론 이대목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독립군으로 가지않고 일본군관학교에 입학하였는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지만, 내 생각에 박정희는 군인이 되고 싶은 강렬한 욕망과 그 당시 일제에 의해 진행된 황국신민화 정책에 의해 보통학교 6년,사범학교5년을 다니면서 몸에 밴 일본에 대한 충성심,당시 일제치하30년이 지난 시점에서 우리힘으로 자주독립을 한다는 것을 거의 포기하다시피하여 친일로 돌아선 수 많은 인사(춘원 이광수,최남선 등등)을 우리가 알고 있다면 일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오로지 군인이 되는 것이 최고의 길로 알았던 박정희에게 독립군으로 입대를 이야기 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당시 독립군이라고 해봐야 일본군대에 비하면 세가 약했고, 국내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도 않은 사실을 안다면 말이다.
그래서,더 더욱 일제치하 만주에서,중국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선열들에 대한 존경이 새삼스럽다. 누구나 가고 있는길을 거꾸로 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그것도 일제의 힘이 최고조로 달한 그 시점에 조국해방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없던 그 시기에..
더 더욱 존경할 일이다.
만주 군관학교와 일본 육사로의 편입,우수한 졸업성적등으로 볼 때 박정희는 천상 군인의 길이 적성에 맞았던 것 같다. 아마도 해방이 되지 않았다면 일본군인으로서 출세의 길을 달려 갔을 것이다. 물론,식민지 조선군인으로서의 한계와 가끔은 항일운동하는 형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민족의식 사이에서 고민했을지라도…
해방후, 모든 꿈이 산산히 조각난 그 시점에서, 미군정에 의해 세워진 이승만정권하에서 만주군맥과 일본육사출신들은 또 다시 등용되고,한국전쟁을 통해 빠르게 출세의 길을 걷게된다.
이 대목에서의 아쉬움,이승만정권보다 몽양 여운형이나,백범 김구가 정권을 잡았다면 군,경찰에서 이토록 친일파들이 득세하지는 못했을 것인데,당시 남한의 정세는 미군이 좌지우지 하고 있었으니 어쩔 수 없는 안타까움. 그리고,박정희의 남로당 조직누설에 의한 수많은 군부인맥의 숙청을 돌이켜 볼 때, 당시 남로당의 정책실패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여순 반란사건이나, 여러 차례의 군부폭동을 야기 함으로써 조직이 드러나고,숙청당하는 상황이 발생하여,향후 6,25전쟁이 발발했을 때 쉽게 남한군대를 장악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린 것이다. 남로당 정책의 실패다.
박정희는 5,16이전에도 쿠테타 모의를 한적이 있다. 당시 부정부패와 무능력으로 일관한 이승만 자유당 정권이나 장면정권을 볼 때 동의하지 않는 바도 아니나,결국 평화적 민주적으로 정권이양이 되야 되지 않았을까? 아니면 초기 10년이내로 만족하고 물러났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총으로 흥한자 총으로 망한다”라는 말.
박정희에 대한 공과 과를 다 인정해야 할 것같다. 그동안 젊은 혈기로 독재정치의 화신으로만 치부하던 박정희를 다시한번 곰곰히 살펴보니, 일부 인간 박정희의 모습이 보이고, 그 사람이 살았던 시대상황에서의 그 사람의 한계를 이해할 수 있었다. 모든 사람은 공과 과 가 있는 것 같다. 어느 하나로 그 사람을 모두 평가해서는 안될 것 같다.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군인의 길을 꿈꾸었고, 그 한길로 갔던 박정희.
조국 근대화의 성과로 이루어냈지만, 장기 독재로 인한 민주주의 발전을 가로 막았던 사람.
그 역시 한사람의 영웅이 아니었을까? 북한의 김일성이나, 쿠바의 카스트로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