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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 한국사 : 15세기, 조선의 때 이른 절정 - 조선 1 민음 한국사 1
문중양 외 지음, 문사철 엮음 / 민음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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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능력시험의 필수과목편성,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등 한국사에 대한 관심이 날로 높아져만 가는 가운데, 독도 도발은 늘 있던 일이니 제쳐두고서라도 안중근 의사 기념관과 관련한 일본과의 관계가 역사에 대한 관심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된 요즘 <민음한국사 15세기>가 나왔다. 역사는 외워야 할 것이 많고 어렵다는 편견이 있었지만 깔끔한 그림과 풍부한 사진자료가 먼저 눈길을 끌어 흥미를 자아내기 충분하였다.

1392년 7월 17일 고려의 문하시중 이성계가 정부 대신들의 추대를 받아 새로운 국왕으로 즉위한다.(30 페이지) 즉 조선의 건국은 정확하게는 14세기 말이지만 ‘15세기’라는 제목은 조선의 처음으로 받아들어도 무난해 보였다. 사극의 단골 소재이기도 하기에 잘 알려진 것과 같이 위화도 회군으로 인하여 조선의 건국이 시작되고 왕자의 난으로 인해 이방원이 왕위에 올라 태종이 되고,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 등 절정기를 맞고 문종, 단종을 거쳐 수양대군의 계유정난 등 조선왕조를 중심으로 한 우리 역사는 잘 알고 있지만, 역사란 한 나라만 보아서는 제대로 알 수 없는 것이기에 ‘15세기의 세계’란 장으로 시작되는 <민음한국사 15세기>는 15세기의 중국과 일본 및 세계는 어떻게 움직이고 있을까란 궁금증을 잘 해소해주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인 것 같다.

기존의 역사책이 시대를 나열해 큰 사건묘사에 주안을 두었다고한다면, 이 책은 사진에서 보듯이 소설책처럼 재미있는 제목과 내용으로 역사여행을 할 수 있도록 짜여져있다. 또 흔히 고대, 중세, 근세, 근현대 등으로 구분하는 역사책으로 인해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대한제국 및 현대로 크게 구분지어 배우고 알고 있었던 한국사에 대하여 15세기라는 조선시대 초기의 시대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점이 기존의 역사책과는 다른 ‘민음한국사’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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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사이드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수영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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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노 가즈아키라는 작가를 알게된 것은 『13계단』을 통해서이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사형제도라는 무거운 주제를 추리 장르로 흥미롭게 풀어나갔다. 그의 작품은 사회 부조리나 비리 등 무거운 주제를 다루며 단순한 흥미 위주가 아닌 재미와 깨달음을 동시에 준다. 『제노사이드』역시 엄청난 스케일의 대작이다. 읽는 내내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한편을 보는 느낌이었다. 큰 스케일 속에 내재하고 있는 여러 주제 또한 결코 가볍지 않다.

 

 제목이 암시하듯 인류의 역사는 ‘제노사이드’, 즉 의도적이고 조직적인 대학살의 연속이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했던가... 그 말이 맞다. 인류의 역사에서 전쟁이 그쳤던 적이 과연 얼마였나? 대의도 이데올로기도 애국심도 없이 단지 일체의 허식이 사라진 섬멸전뿐인 제노사이드...주로 지하자원 쟁탈과 민족 간의 증오에 의해 날붙이와 소총에 의한 살육이 수없이 이루어졌다. 콩코 학살, 르완다 학살, 독일 나치, 일본 관동대지진 후에 일어난 조선인 대학살 등, 이 모두 끔찍한 역사가 아닐 수 없다. 실제 시리아에서는 고문소가 설치되어 반정부 시위에 참가한 자들에게 고문이 자행되었는데 4개월 된 아이조차도 고문의 대상이 되었다. 또 과거 콩고인들은 피그미족을 ‘인간 이하의 존재’라고 생각해서 강탈과 강간 살육을 일삼았다. 이들의 살이 주술적 힘을 준다고 믿어 인육을 먹는 등, 콩고 국가적 차원에서의 제노사이드가 이루어졌다. 이와 같은 인종청소는 지구 곳곳에서 일어났고 여전히 완전히 사라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소설의 시작은 이러하다. ‘하이즈먼 보고서’라는 신인류탄생에 의한 인류멸망보고서를 접한 미국대통령은 불안을 느끼고 용병을 뽑아 극비리에 새로운 생명체와 그 집단을 섬멸시키고자 한다. 이에 불치병아들을 둔 용병 조너선 예거는 아들의 치료비 마련을 위해 비밀 업무를 맡게 되고 이를 수행하기 위해 내전중인 콩코로 들어가게 된다. 용병들은 피그미족과 신종생명체, 그리고 그 속에서 그들과 함께 생활하는 나이젤 피어스라는 인류학자까지 죽이도록 명령받는다. 하지만 보안을 유지하고자 이들을 제거한 후 자신들까지 없애려 한다는 것을 특출나게 뛰어난 지능을 보유한 신종생명체에 의해 알게 되고, 살기 위해 그들을 탈출 시키는걸 돕는다. 이때부터 그들 모두는 신종 생명체에 의해 지휘 받게 된다. 한편 일본인 약학 대학원생 고가 겐토는 급사한 바이러스 학자인 아버지가 남긴 편지한통을 받게 되고 이를 계기로 아버지가 죽기직전까지 연구하던 제약 개발에 참여하게 된다. 이는 극비리에 진행되고 있었고, 불치병인 폐포 상피 세포 경화증의 치료제를 개발하는 것이었다. 의문투성이인 이 버거운 일을 한국인 유학생 이정훈의 도움아래 함께 연구해 나아간다. 예거일행과 겐토는 위성을 통해 연결되어 있고 이들은 결국 어려움을 헤쳐 만나게 된다.

 

 소설의 첫머리에는 미국대통령이 등장한다. 그는 새로운 생명체, 즉 현생인류를 뛰어넘는 뛰어난 지능과 탁월한 도덕성을 지닌 신인류의 존재를 알게 되고 위협을 느껴 신인류를 제거하고자한다. 자신의 이익과 안녕을 위해 적을 섬멸시켜 버리려고 하는 이기적이고 잔인한 인물로 등장한다. 여기에서 그를 무조건적으로 비인간적이라 비판할 수 있을까? 제3자의 입장에서 보면 비판적인 인물이긴 하나, 만약 자신이 그의 입장이라면 다르게 행동할 수 있을까? 부정할 수만은 없다. 권력이란게 주어지면 보통사람도 그렇게 될 수 있다라는 사실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째서 우리는 인간끼리 서로 죽이고 두려워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인간의 잔악함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인간은 늘 보다 많은 권력과 이익을 위해, 나의 안녕을 위해 상대를 죽이고 없애려한다.

 

 어딘가에서 들은 기억이 있다.(확실하다고 장담은 못한다.^^)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는 과거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네안데르탈인을 모두 제노사이드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과연 현생인류를 초월한 신인류는 현생인류를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물음이 남는다. 소설 속에서 묘사하는 현생인류에서 진화한 다음 세대 인간은 대뇌 신피질이 보다 크고 우리를 훨씬 능가하는 압도적인 지성을 가지고 있다. 제4차원을 이해할 수 있고, 전체의 복잡한 상황을 단번에 파악할 수 있으며 제6감을 획득하였다. 또 무한히 발달한 도덕의식을 보유하여 우리 지능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정신적 특질의 소유자로 등장한다. 이러한 신인류는 현생인류를 어떻게 할까? 멸망시키려 할 것인가? 아니면 공존하려 할 것인가? 같은 삶의 공간에서 두 종은 동등한 지위로 함께 살 수 있을까? 분명 힘들 것이다. 그들이 보는 현생인류는 같은 종끼리 살육하고 지구환경을 파괴하기만하는 과학기술을 갖고 있는 등 헤아릴 수 없이 위험한 하등동물이다. 지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열등한 생물종은 보다 고도의 지성에 의해 말살되기 마련이다. 북경원인이나 네안데르탈인과 같이 우리 또한 같은 운명을 걷게 될 것이라고 작가는 보고 있다. 피그미족에 대한 콩고의 만행이나, 호주 원주민에 대한 백인 이민자들의 인종청소를 보더라도 잘 알 수 있다.

 

 소설 속에서는 신인류를 ‘누스(NOUS)’라고 명명한다. 누스는 초월적인 지성을 의미하는 그리스어이다. 소설 속에는 아키리와 에마라는 단 두 명의 새로운 개체가 등장하는데 그들은 남매이다. 폐포 상피세포 경화증은 근친상간에서 발생하는 병중 하나이다. 따라서 이들은 자신들의 종족번성을 위해 신약을 개발하게 한 것이다. 즉 이 소설의 결말로만 보면 그들은 살아남았고 신약으로 인해 종족번성이 가능해질 것이다. 여기에서 등장하는 ‘폐포 상피 세포 경화증’이나 ‘하이즈먼 보고서’는 모두 작가가 만들어낸 허구이다. 그러나 약학 지식 및 정치 군사등과 관련된 정밀한 설명이 마치 현실에서 실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알려주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와 같은 작가의 치밀한 스토리 구성과 전개는 장편임에도 불구하고 작품 속에 푹 빠져들게 하는 흡입력을 가진다. 뛰어난 재능을 바탕으로 한 엄청난 노력이 돋보이는 수작임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한다.

 

 소설을 읽는 내내 작가의 중립적인 관점이 무척 인상 깊었다. 일본인 작가라고 하여 결코 자신의 역사를 모른척하지 않고 또 편파적으로 서술하지 않는다. 여러 등장인물 및 사건 서술을 통하여 절대적 선·악이 아닌 ‘인간’의 관점에서 최대한 공정하고 정확한 서술을 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였다. 한일 과거사에 대한 일본 우익들의 그릇된 사고를 작품 곳곳에서 비판적인 시각으로 잘 그려내고 있고, 또 작품 속에 총명하고 의리 있는 한국 유학생 이정훈을 등장시켜, 그를 통해 한국 고유의 ‘정()’을 표현하고자 하였다.(후에 작가의 인터뷰를 통해 알게 됐는데 작품 속 이정훈은 이수현씨를 모티브로 했다고 한다.) 이런 점은 한국인독자로서 무척 호감이 가는 부분이다. 개인적으로 최근 문제시되는 한일 과거사를 대하며 작품 속 ‘국가의 인격이란 의사결정자의 인격, 바로 그 자체였다.’(p258) 라는 이 구절이 더욱 다가왔다.

 

 농 섞인 말로 흔히 ‘여자의 적은 여자다’라고 한다. ‘인간의 적은 인간이다.’란 작가의 말이 무섭고도 맞는 말 이란 생각이 든다. 작가가 던지고 있는 메시지가 참 묵직하게 다가왔다. 다 읽고 난 지금에도 여운이 남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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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gli 2014-02-07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인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는 글이네요...^^
저도 한번 읽어보고 싶습니다~~
 
열세 걸음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0
모옌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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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윌리암 포크너, 프란츠 카프카라 불리며 명실상부한 중국 현대문학의 거장 모옌의 열세걸음... 읽기 전부터 그에게 쏟아진 찬미와 노벨문학상 수상작가란 영예로운 타이틀이 묵직한 표지에 더해져 뭔지 모를 무게를 느끼며 책장을 펼쳤다. 모옌(莫言)‘글로만 뜻을 표현할 뿐 입으로 말하지 않는다’ 는 뜻의 필명이다. 작가가 진정 말하고 싶은 건 무엇일까? 왜 말로는 않고 글로만 나타낼까? 모두 알고 있듯이 그는 중국의 잃어버린 10년, 중국을 퇴보시킨 흑암기 문화대혁명을 몸소 체험했다. 그러한 암울하고 억압적인 현실 속에서 입을 굳게 닫아야만 했던 지식인들의 억눌린 사상과 사고가 ‘莫言’이란 두 글자에 묵직하게 실린듯하다.

 

 “열세걸음......? 이게 무슨 의미지?” 하며 의문을 품고 책을 읽어 내려갔다. 각 장이 한걸음부터 열세걸음 까지 나뉘어 있었으나 중반부를 읽기 전까진 책의 시대 구성이며 화자가 누구인지 알쏭달쏭한 채 무겁고 답답한 마음뿐이었다.

 

 동물원 쇠 우리 안에 갇힌 화자는 노란 횃대위에 앉아 분필토막을 씹으며 새빨간 눈동자로 ‘나’와 ‘우리’에게 이야기를 한다. 다만 화자의 일방적인 이야기가 아닌 청자가 화자가 되기도 하고 각자의 견해를 이야기 하며, 현실과 환상을 오가며 이야기를 서술해 간다. 이야기는 현실이냐 환상이냐를 떠나 각자의 입장과 생각에 따른 이야기를 종합해 내 하나의 사건으로 만들고 풀어나간다.

 

 이는 모두 당시 암울했던 중국역사의 현실을 배경으로 한다. 극좌노선을 지향하던 사회주의 이념하의 인민들의 삶과 이후 개혁개방을 맞아 돈, 명예, 성적욕망 등 타락한 물질주의에 예속되어 변화하는 현실에 쓸려 살아나가는 모습들이 반영된다. 핵심 인물인 팡푸구이와 장츠추는 당시의 억압적 전체주의 사회에서의 비극적 운명을 지닌 채 파국을 향해 나아간다. 그들은 모두 중학 물리교사이다. 현재의 중국에서는 그나마 교사의 권위나 처우가 과거보단 나아졌으나, 아직까지 경제적으로는 어려운 실정이다. 대학 교수가 돈을 벌기위해 택시가사가 된다든지, 과외를 한다는 것은 우리에겐 꽤 낯선 현실이다. 허나 지금보다 과거, 모옌 소설속의 시대에서는 더욱 심각하다. 매우 열악한 경제여건, 근무조건으로 교사들은 무척 어려운 삶을 살고, 그러던 중 팡푸구이가 교실에서 과로로 쓰러진다. 이 죽음을 계기로 동료교사들은 열악한 교사의 봉급 및 처우개선을 주장하고 팡푸구이는 ‘영웅’이 된다.

 

 하지만 이는 비극의 시작이다. 팡푸구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실신했을 뿐이다. 다만 그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가능해진 교사들의 현실개선이 개인의 희생을 강력하게 강요한다. 죽을 수도, 살수도 없는 기로에서 팡푸구이는 절망하고 결국 살고자 하나 자신을 버려야만 살 수 있는 현실 앞에 선다. 자신을 유령으로 보고 부정하는 부인을 뒤로 한 채 이웃집 동료교사 장츠추와 그의 부인 특급 장례미용사 리위찬이 그를 도와 살수 있게 한다. 리위찬은 팡푸구이를 평소 그와 형제처럼 닮은 자신의 남편 장츠추의 얼굴로 성형하여 장츠추의 삶을 살게 한다. 장츠추는 교직을 팡푸구이에게 넘기고 장사를 하게 된다. 두 사람은 개인의 선택이 아닌 현실의 강요 앞에 자아를 잃어버린 채 살게 된다. 교사와 상인의 조합에 어딘지 모를 신선함이 느껴졌다. 왜 하필 장사? 라는 생각이 들며 생각해 보았다. 문혁당시 교사는 당에 의해 반봉건, 반구습의 타도대상인 지식인 계급이 되었고 반동분자로 여겨졌다. 이후 개혁개방이 되며 돈, 명예 등이 중시되었고 상인들 즉 돈이 많은 자가 대우받는 시대가 되었다. 이러한 경향을 반영해 장사를 하게 한 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의도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자신의 의지가 아닌 주변여건에 내몰려 내딛은 발은 결국 모두를 나락으로 빠지게 했고 파멸로 이끌었다. 자신은 이미 죽었고 다른 사람이 되어 살아가는 팡푸구이나 기존 삶과는 전혀 다른 낯선 환경 속에서 미치광이 취급을 받으며 망가져버린 장츠추 모두 원래의 사진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나 현실의 벽에 부딪치고, 결국 팡푸구이는 교실에서 자신의 얼굴을 난도질하고 목을 맨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이들-결국은 팡푸구이가 두 번 죽는 셈-의 죽음은 비참하기 이를 데 없는 현실대문에 내몰려 이른 것 임에도 불구하고 교장 및 사회는 이들을 이용해 자신들의 복리와 학교실적 높이기에 급급하다. 개인의 희생이 사회적 이익 앞에 너무도 당연시 되는 현실이 무척 마음 아팠다. 또한 소설은 기형적으로 변해버린 인물상이 그려지는데 이들은 모두 지저분하리만큼 퇴폐적이고 일그러진 성적욕망을 가진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보는 내내 기분이 언짢은 부분이었다. 무엇이 이들을 이같이 어그러진 사람으로 바꾸어 놓았을까? 당시의 시대현실이 간접적이나마 더욱 무겁고 어둡게 느껴진다. 무거움, 참담한 심정으로 힘겹게 한 장 한 장 읽어 내려가다, 후반부에는 뭔지 모를 끌림에 쑥 읽어 내려져갔다. 이들은 과연 어떻게 되는 거지? 하는 궁금증 때문이기도 했지만, 또 다른 화자의 시각으로 이미 언급된 사건이 한 번 더 정리되며 이해를 더한 덕분인 것 같다. 또한 처음 품었던 의구심이 해결되며 어렴풋하게나마 글이 이해가 되었다. 열세걸음, 이는 러시아 민담을 바탕으로 한다. 참새는 보통 두발로 통통 튀어 다니는데 한발씩 걷는 것을 본다면 행운이 온다는 내용이다. 한걸음부터 열두걸음 가지는 온갖 행운이 온다. 하지만 열세걸음은 절대로 보아서는 안 된다. 앞의 모든 행운이 곱절로 악운이 되어 오기 때문이다. 소설 속 인물들은 모두 열세걸음까지 오고 결국 인생의 파국을 맞이한다.

 

이런 전체적 줄거리도 매우 인상 깊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드문드문 별것 아닌 것처럼 등장하는 중국의 사회적 모순, 병폐를 고발하는 장면도 인상 깊었다. 물을 먹이고 돌을 넣어 근수를 높여 비싼 값에 파는 거위는 현재도 중국정부가 문제시 하는 가짜상품, 열등상품의 병폐가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또 돼지, 소를 도살하는 장면, 토끼가죽과 털을 분리하는 장면 등이 비교적 상세히 묘사되는데, 작년에 읽은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를 보고 난 후 느꼈던 아픔과 죄책감이 다시 느껴졌다. 아무 감정 없이 동물을 해하고 심지어 그 과정에서 희열까지 느끼는 인간... 가죽재킷, 퍼 조끼 등을 멋스럽게 입고, 입속으로 스테이크를 음미하며 행복해하는 인간의 잔인함, 이기심 등이 여실히 드러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하는 대목이다.

 

 장장 일주일간 읽고 또 넘겨보고 했던 책의 마지막장을 덮는 순각 마음이 먹먹했다. 내용의 난해함도 물론 기인했지만 무겁고 어두운, 텁텁하고 피비린내 나는 어두운 현실을 겪은 기분이었다. 평소 내가 좋아하는 모옌 보다 한세대 앞의 중국작가 노신의 글은 ‘一刀見血’ 이라 할 만큼 날카로운 필치아래 피비린내 진동하는 당시의 사회모순을 잘 드러낸다. 열세걸음 역시 그 이후의 어두운 시대, 억압된 현실 속에서 기형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는 인간들의 파멸과 고통을 잘 나타내고 있다. -사족이지만 팡푸구이(方富貴)라는 이름이 그의 삶과 완전히 상반되어 처참한 심정을 배가시켰다. 이와 같이 묵직한 무게를 싣고, 무언가 떨칠 수 없는 여운을 가슴깊이 남기는 작가의 필력에 놀라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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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gli 2014-02-07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중국문학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게 하는 글이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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