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노사이드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수영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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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노 가즈아키라는 작가를 알게된 것은 『13계단』을 통해서이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사형제도라는 무거운 주제를 추리 장르로 흥미롭게 풀어나갔다. 그의 작품은 사회 부조리나 비리 등 무거운 주제를 다루며 단순한 흥미 위주가 아닌 재미와 깨달음을 동시에 준다. 『제노사이드』역시 엄청난 스케일의 대작이다. 읽는 내내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한편을 보는 느낌이었다. 큰 스케일 속에 내재하고 있는 여러 주제 또한 결코 가볍지 않다.

 

 제목이 암시하듯 인류의 역사는 ‘제노사이드’, 즉 의도적이고 조직적인 대학살의 연속이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했던가... 그 말이 맞다. 인류의 역사에서 전쟁이 그쳤던 적이 과연 얼마였나? 대의도 이데올로기도 애국심도 없이 단지 일체의 허식이 사라진 섬멸전뿐인 제노사이드...주로 지하자원 쟁탈과 민족 간의 증오에 의해 날붙이와 소총에 의한 살육이 수없이 이루어졌다. 콩코 학살, 르완다 학살, 독일 나치, 일본 관동대지진 후에 일어난 조선인 대학살 등, 이 모두 끔찍한 역사가 아닐 수 없다. 실제 시리아에서는 고문소가 설치되어 반정부 시위에 참가한 자들에게 고문이 자행되었는데 4개월 된 아이조차도 고문의 대상이 되었다. 또 과거 콩고인들은 피그미족을 ‘인간 이하의 존재’라고 생각해서 강탈과 강간 살육을 일삼았다. 이들의 살이 주술적 힘을 준다고 믿어 인육을 먹는 등, 콩고 국가적 차원에서의 제노사이드가 이루어졌다. 이와 같은 인종청소는 지구 곳곳에서 일어났고 여전히 완전히 사라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소설의 시작은 이러하다. ‘하이즈먼 보고서’라는 신인류탄생에 의한 인류멸망보고서를 접한 미국대통령은 불안을 느끼고 용병을 뽑아 극비리에 새로운 생명체와 그 집단을 섬멸시키고자 한다. 이에 불치병아들을 둔 용병 조너선 예거는 아들의 치료비 마련을 위해 비밀 업무를 맡게 되고 이를 수행하기 위해 내전중인 콩코로 들어가게 된다. 용병들은 피그미족과 신종생명체, 그리고 그 속에서 그들과 함께 생활하는 나이젤 피어스라는 인류학자까지 죽이도록 명령받는다. 하지만 보안을 유지하고자 이들을 제거한 후 자신들까지 없애려 한다는 것을 특출나게 뛰어난 지능을 보유한 신종생명체에 의해 알게 되고, 살기 위해 그들을 탈출 시키는걸 돕는다. 이때부터 그들 모두는 신종 생명체에 의해 지휘 받게 된다. 한편 일본인 약학 대학원생 고가 겐토는 급사한 바이러스 학자인 아버지가 남긴 편지한통을 받게 되고 이를 계기로 아버지가 죽기직전까지 연구하던 제약 개발에 참여하게 된다. 이는 극비리에 진행되고 있었고, 불치병인 폐포 상피 세포 경화증의 치료제를 개발하는 것이었다. 의문투성이인 이 버거운 일을 한국인 유학생 이정훈의 도움아래 함께 연구해 나아간다. 예거일행과 겐토는 위성을 통해 연결되어 있고 이들은 결국 어려움을 헤쳐 만나게 된다.

 

 소설의 첫머리에는 미국대통령이 등장한다. 그는 새로운 생명체, 즉 현생인류를 뛰어넘는 뛰어난 지능과 탁월한 도덕성을 지닌 신인류의 존재를 알게 되고 위협을 느껴 신인류를 제거하고자한다. 자신의 이익과 안녕을 위해 적을 섬멸시켜 버리려고 하는 이기적이고 잔인한 인물로 등장한다. 여기에서 그를 무조건적으로 비인간적이라 비판할 수 있을까? 제3자의 입장에서 보면 비판적인 인물이긴 하나, 만약 자신이 그의 입장이라면 다르게 행동할 수 있을까? 부정할 수만은 없다. 권력이란게 주어지면 보통사람도 그렇게 될 수 있다라는 사실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째서 우리는 인간끼리 서로 죽이고 두려워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인간의 잔악함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인간은 늘 보다 많은 권력과 이익을 위해, 나의 안녕을 위해 상대를 죽이고 없애려한다.

 

 어딘가에서 들은 기억이 있다.(확실하다고 장담은 못한다.^^)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는 과거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네안데르탈인을 모두 제노사이드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과연 현생인류를 초월한 신인류는 현생인류를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물음이 남는다. 소설 속에서 묘사하는 현생인류에서 진화한 다음 세대 인간은 대뇌 신피질이 보다 크고 우리를 훨씬 능가하는 압도적인 지성을 가지고 있다. 제4차원을 이해할 수 있고, 전체의 복잡한 상황을 단번에 파악할 수 있으며 제6감을 획득하였다. 또 무한히 발달한 도덕의식을 보유하여 우리 지능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정신적 특질의 소유자로 등장한다. 이러한 신인류는 현생인류를 어떻게 할까? 멸망시키려 할 것인가? 아니면 공존하려 할 것인가? 같은 삶의 공간에서 두 종은 동등한 지위로 함께 살 수 있을까? 분명 힘들 것이다. 그들이 보는 현생인류는 같은 종끼리 살육하고 지구환경을 파괴하기만하는 과학기술을 갖고 있는 등 헤아릴 수 없이 위험한 하등동물이다. 지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열등한 생물종은 보다 고도의 지성에 의해 말살되기 마련이다. 북경원인이나 네안데르탈인과 같이 우리 또한 같은 운명을 걷게 될 것이라고 작가는 보고 있다. 피그미족에 대한 콩고의 만행이나, 호주 원주민에 대한 백인 이민자들의 인종청소를 보더라도 잘 알 수 있다.

 

 소설 속에서는 신인류를 ‘누스(NOUS)’라고 명명한다. 누스는 초월적인 지성을 의미하는 그리스어이다. 소설 속에는 아키리와 에마라는 단 두 명의 새로운 개체가 등장하는데 그들은 남매이다. 폐포 상피세포 경화증은 근친상간에서 발생하는 병중 하나이다. 따라서 이들은 자신들의 종족번성을 위해 신약을 개발하게 한 것이다. 즉 이 소설의 결말로만 보면 그들은 살아남았고 신약으로 인해 종족번성이 가능해질 것이다. 여기에서 등장하는 ‘폐포 상피 세포 경화증’이나 ‘하이즈먼 보고서’는 모두 작가가 만들어낸 허구이다. 그러나 약학 지식 및 정치 군사등과 관련된 정밀한 설명이 마치 현실에서 실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알려주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와 같은 작가의 치밀한 스토리 구성과 전개는 장편임에도 불구하고 작품 속에 푹 빠져들게 하는 흡입력을 가진다. 뛰어난 재능을 바탕으로 한 엄청난 노력이 돋보이는 수작임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한다.

 

 소설을 읽는 내내 작가의 중립적인 관점이 무척 인상 깊었다. 일본인 작가라고 하여 결코 자신의 역사를 모른척하지 않고 또 편파적으로 서술하지 않는다. 여러 등장인물 및 사건 서술을 통하여 절대적 선·악이 아닌 ‘인간’의 관점에서 최대한 공정하고 정확한 서술을 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였다. 한일 과거사에 대한 일본 우익들의 그릇된 사고를 작품 곳곳에서 비판적인 시각으로 잘 그려내고 있고, 또 작품 속에 총명하고 의리 있는 한국 유학생 이정훈을 등장시켜, 그를 통해 한국 고유의 ‘정()’을 표현하고자 하였다.(후에 작가의 인터뷰를 통해 알게 됐는데 작품 속 이정훈은 이수현씨를 모티브로 했다고 한다.) 이런 점은 한국인독자로서 무척 호감이 가는 부분이다. 개인적으로 최근 문제시되는 한일 과거사를 대하며 작품 속 ‘국가의 인격이란 의사결정자의 인격, 바로 그 자체였다.’(p258) 라는 이 구절이 더욱 다가왔다.

 

 농 섞인 말로 흔히 ‘여자의 적은 여자다’라고 한다. ‘인간의 적은 인간이다.’란 작가의 말이 무섭고도 맞는 말 이란 생각이 든다. 작가가 던지고 있는 메시지가 참 묵직하게 다가왔다. 다 읽고 난 지금에도 여운이 남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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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gli 2014-02-07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인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는 글이네요...^^
저도 한번 읽어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