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걸음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0
모옌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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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윌리암 포크너, 프란츠 카프카라 불리며 명실상부한 중국 현대문학의 거장 모옌의 열세걸음... 읽기 전부터 그에게 쏟아진 찬미와 노벨문학상 수상작가란 영예로운 타이틀이 묵직한 표지에 더해져 뭔지 모를 무게를 느끼며 책장을 펼쳤다. 모옌(莫言)‘글로만 뜻을 표현할 뿐 입으로 말하지 않는다’ 는 뜻의 필명이다. 작가가 진정 말하고 싶은 건 무엇일까? 왜 말로는 않고 글로만 나타낼까? 모두 알고 있듯이 그는 중국의 잃어버린 10년, 중국을 퇴보시킨 흑암기 문화대혁명을 몸소 체험했다. 그러한 암울하고 억압적인 현실 속에서 입을 굳게 닫아야만 했던 지식인들의 억눌린 사상과 사고가 ‘莫言’이란 두 글자에 묵직하게 실린듯하다.

 

 “열세걸음......? 이게 무슨 의미지?” 하며 의문을 품고 책을 읽어 내려갔다. 각 장이 한걸음부터 열세걸음 까지 나뉘어 있었으나 중반부를 읽기 전까진 책의 시대 구성이며 화자가 누구인지 알쏭달쏭한 채 무겁고 답답한 마음뿐이었다.

 

 동물원 쇠 우리 안에 갇힌 화자는 노란 횃대위에 앉아 분필토막을 씹으며 새빨간 눈동자로 ‘나’와 ‘우리’에게 이야기를 한다. 다만 화자의 일방적인 이야기가 아닌 청자가 화자가 되기도 하고 각자의 견해를 이야기 하며, 현실과 환상을 오가며 이야기를 서술해 간다. 이야기는 현실이냐 환상이냐를 떠나 각자의 입장과 생각에 따른 이야기를 종합해 내 하나의 사건으로 만들고 풀어나간다.

 

 이는 모두 당시 암울했던 중국역사의 현실을 배경으로 한다. 극좌노선을 지향하던 사회주의 이념하의 인민들의 삶과 이후 개혁개방을 맞아 돈, 명예, 성적욕망 등 타락한 물질주의에 예속되어 변화하는 현실에 쓸려 살아나가는 모습들이 반영된다. 핵심 인물인 팡푸구이와 장츠추는 당시의 억압적 전체주의 사회에서의 비극적 운명을 지닌 채 파국을 향해 나아간다. 그들은 모두 중학 물리교사이다. 현재의 중국에서는 그나마 교사의 권위나 처우가 과거보단 나아졌으나, 아직까지 경제적으로는 어려운 실정이다. 대학 교수가 돈을 벌기위해 택시가사가 된다든지, 과외를 한다는 것은 우리에겐 꽤 낯선 현실이다. 허나 지금보다 과거, 모옌 소설속의 시대에서는 더욱 심각하다. 매우 열악한 경제여건, 근무조건으로 교사들은 무척 어려운 삶을 살고, 그러던 중 팡푸구이가 교실에서 과로로 쓰러진다. 이 죽음을 계기로 동료교사들은 열악한 교사의 봉급 및 처우개선을 주장하고 팡푸구이는 ‘영웅’이 된다.

 

 하지만 이는 비극의 시작이다. 팡푸구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실신했을 뿐이다. 다만 그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가능해진 교사들의 현실개선이 개인의 희생을 강력하게 강요한다. 죽을 수도, 살수도 없는 기로에서 팡푸구이는 절망하고 결국 살고자 하나 자신을 버려야만 살 수 있는 현실 앞에 선다. 자신을 유령으로 보고 부정하는 부인을 뒤로 한 채 이웃집 동료교사 장츠추와 그의 부인 특급 장례미용사 리위찬이 그를 도와 살수 있게 한다. 리위찬은 팡푸구이를 평소 그와 형제처럼 닮은 자신의 남편 장츠추의 얼굴로 성형하여 장츠추의 삶을 살게 한다. 장츠추는 교직을 팡푸구이에게 넘기고 장사를 하게 된다. 두 사람은 개인의 선택이 아닌 현실의 강요 앞에 자아를 잃어버린 채 살게 된다. 교사와 상인의 조합에 어딘지 모를 신선함이 느껴졌다. 왜 하필 장사? 라는 생각이 들며 생각해 보았다. 문혁당시 교사는 당에 의해 반봉건, 반구습의 타도대상인 지식인 계급이 되었고 반동분자로 여겨졌다. 이후 개혁개방이 되며 돈, 명예 등이 중시되었고 상인들 즉 돈이 많은 자가 대우받는 시대가 되었다. 이러한 경향을 반영해 장사를 하게 한 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의도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자신의 의지가 아닌 주변여건에 내몰려 내딛은 발은 결국 모두를 나락으로 빠지게 했고 파멸로 이끌었다. 자신은 이미 죽었고 다른 사람이 되어 살아가는 팡푸구이나 기존 삶과는 전혀 다른 낯선 환경 속에서 미치광이 취급을 받으며 망가져버린 장츠추 모두 원래의 사진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나 현실의 벽에 부딪치고, 결국 팡푸구이는 교실에서 자신의 얼굴을 난도질하고 목을 맨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이들-결국은 팡푸구이가 두 번 죽는 셈-의 죽음은 비참하기 이를 데 없는 현실대문에 내몰려 이른 것 임에도 불구하고 교장 및 사회는 이들을 이용해 자신들의 복리와 학교실적 높이기에 급급하다. 개인의 희생이 사회적 이익 앞에 너무도 당연시 되는 현실이 무척 마음 아팠다. 또한 소설은 기형적으로 변해버린 인물상이 그려지는데 이들은 모두 지저분하리만큼 퇴폐적이고 일그러진 성적욕망을 가진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보는 내내 기분이 언짢은 부분이었다. 무엇이 이들을 이같이 어그러진 사람으로 바꾸어 놓았을까? 당시의 시대현실이 간접적이나마 더욱 무겁고 어둡게 느껴진다. 무거움, 참담한 심정으로 힘겹게 한 장 한 장 읽어 내려가다, 후반부에는 뭔지 모를 끌림에 쑥 읽어 내려져갔다. 이들은 과연 어떻게 되는 거지? 하는 궁금증 때문이기도 했지만, 또 다른 화자의 시각으로 이미 언급된 사건이 한 번 더 정리되며 이해를 더한 덕분인 것 같다. 또한 처음 품었던 의구심이 해결되며 어렴풋하게나마 글이 이해가 되었다. 열세걸음, 이는 러시아 민담을 바탕으로 한다. 참새는 보통 두발로 통통 튀어 다니는데 한발씩 걷는 것을 본다면 행운이 온다는 내용이다. 한걸음부터 열두걸음 가지는 온갖 행운이 온다. 하지만 열세걸음은 절대로 보아서는 안 된다. 앞의 모든 행운이 곱절로 악운이 되어 오기 때문이다. 소설 속 인물들은 모두 열세걸음까지 오고 결국 인생의 파국을 맞이한다.

 

이런 전체적 줄거리도 매우 인상 깊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드문드문 별것 아닌 것처럼 등장하는 중국의 사회적 모순, 병폐를 고발하는 장면도 인상 깊었다. 물을 먹이고 돌을 넣어 근수를 높여 비싼 값에 파는 거위는 현재도 중국정부가 문제시 하는 가짜상품, 열등상품의 병폐가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또 돼지, 소를 도살하는 장면, 토끼가죽과 털을 분리하는 장면 등이 비교적 상세히 묘사되는데, 작년에 읽은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를 보고 난 후 느꼈던 아픔과 죄책감이 다시 느껴졌다. 아무 감정 없이 동물을 해하고 심지어 그 과정에서 희열까지 느끼는 인간... 가죽재킷, 퍼 조끼 등을 멋스럽게 입고, 입속으로 스테이크를 음미하며 행복해하는 인간의 잔인함, 이기심 등이 여실히 드러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하는 대목이다.

 

 장장 일주일간 읽고 또 넘겨보고 했던 책의 마지막장을 덮는 순각 마음이 먹먹했다. 내용의 난해함도 물론 기인했지만 무겁고 어두운, 텁텁하고 피비린내 나는 어두운 현실을 겪은 기분이었다. 평소 내가 좋아하는 모옌 보다 한세대 앞의 중국작가 노신의 글은 ‘一刀見血’ 이라 할 만큼 날카로운 필치아래 피비린내 진동하는 당시의 사회모순을 잘 드러낸다. 열세걸음 역시 그 이후의 어두운 시대, 억압된 현실 속에서 기형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는 인간들의 파멸과 고통을 잘 나타내고 있다. -사족이지만 팡푸구이(方富貴)라는 이름이 그의 삶과 완전히 상반되어 처참한 심정을 배가시켰다. 이와 같이 묵직한 무게를 싣고, 무언가 떨칠 수 없는 여운을 가슴깊이 남기는 작가의 필력에 놀라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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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gli 2014-02-07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중국문학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게 하는 글이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