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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과 도덕
버트런드 러셀 지음, 이순희 옮김 / 사회평론 / 2016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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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페미니즘 관련 책을 읽으며 정신없이 보내고 있다. 그런 와중 온 러셀의 책은 반가웠는데, 내 기억으로 이 사람이 낭만적 사랑에 대해서 논한 대표적 학자이기 떄문이다. 동시에, 좀 두려웠다. 어려운 책이라고 공공연히 들어왔기 때문에....(이 책말고 다른 책이 그렇다.)

 

하지만 걱정 반 기대 반으로 펴본 <결혼과 도덕>은 어려운 책은 아니었다. 도리어 굉장히 쉽고 평이하게 서술되어 있어서 간혹 꼭 에세이집을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다만 표지에 대해서는 정말 불만.... 겉표지를 빼내고 보면 훨씬 멋있다. 아무튼.

 

<결혼과 도덕> 같은 류의 책은, 이쪽에 대해 전혀 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이 보기에는 충격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결혼, 사랑, 모성 등등 여러가지를 그저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살지만 실상 이것들은 자연스럽고 당연하지 않다. 사회와 경제, 종교가 합동하여 구축한 결과물이라 보는 편이 도리어 정확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결혼이 너무 당연하게 여겨진 나머지 결혼 역시 제도라는 사실을 간혹 잊고, 남자-여자-아이로 구성된 가족이 정상적인 가족이라 쉬이 생각한다. 연애는 필수적인 것이 되고, 그 연애에서 주로 남자는 리드하고, 적극적이고, 강하며 여자는 소극적이고, 수동적이고, 부드럽다. 그러나 이런 묘사가 실상과 얼마나 닮아있을까? 특히나 모성과 관련해서 이런 류의 주장은 보다 충격적일 듯한데 러셀의 말을 옮겨본다.

 

"여성의 정서라고 여겨지는 것들은 사실 남성들의 관심과 심정을 반영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남성 작가가 쓴 소설들을 읽다보면, 여성이 어린 자식에게 젖을 물리면서 육체적 쾌락을 느낀다는 내용을 만나게 된다. 그것이 사실과 다른 이야기라는 것은 가깝게 지내는 아이 어머니들에게 물어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일인데, 여성이 선거권을 획득하기 전까지는 어떤 남성도 그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요컨대, 남성들은 무의식적으로 모성의 감정에서 남성이 지배권을 잡을 수 있는 수단을 발견하고, 너무나도 오랜 세월 동안 모성의 감정을 극구 칭찬해왔다."

 

여성이 사회, 정치 등 공적 영역으로 진출하려 할 때, 이들을 사적인 영역으로 돌려보내려는 반향 역시 일어난다. 그러나 여성에게 육아와 가정을 맡기는 일이 '불평등'이라는 말과 부딪히면 어떻게 할 것인가? 여기에서 등장하는 것이 내가 보기에는 모성애인 것 같고, 이렇게 볼 때 모성애는 약간 열정페이 같은 면이 있다. 아니 심지어 열정페이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적어도 열정페이는 '네가 좋아하는 일'이라는 전제가 되어있으니까 말이다. 러셀은 이런 점을 꼼꼼하게 꼬집어주는데, 그 과정에서 꽤 신랄하고 솔직한 언사가 눈에 띤다.

 

간혹 동의가 되지 않는 부분도 있으나 전반적으로 매우 쉽게 기술된 결혼에 관한 책이 아닐까, 생각하는데, 사랑, 결혼, 여성, 이혼까지 여러 문제가 짤막하게 다루어져 있다. 나는 낭만적 사랑에 관한 챕터를 읽고 싶었기 때문에 유독 주의깊게 봤는데, 러셀이 의외로 '사랑' 정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심지어는 낭만적 사랑도 부정하지는 않는 입장이라는 것에 놀랐다. (내 머릿속에는 학자들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다.)

 

"낭만적 사랑이야말로 인생이 제공하는 가장 강렬한 기쁨의 원천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열정과 상상력, 그리고 배려심을 바치면서 서로를 사랑하는 남녀 관계는 대단히 소중한 것이고 이를 알지 못하는 것은 큰 불행이다. 물론 이런 기쁨은 인생의 주요한 목적이 아니라 인생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도 사회 제도는 마땅히 이런 기쁨을 허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낭만적 사랑의 문제 역시 지적한다. 여기에는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지속시키고 결혼의 사회적 목적을 실현하는 것은 낭만적인 사랑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친밀하고 다정하며 현실적인 사랑이다. 낭만적인 사랑을 할 때는 사랑의 대상이 정확하게 보이지 않고 신비한 안개에 묻혀서 볼 뿐이다. (중략) 가능성은 환상이 섞여 있지 않은, 애정이 넘치는 친밀한 관계를 토대로 할 때에만 현실화 된다."

 

러셀은 여기에서 자식의 문제를 들고 오고 있다. 옳은 말이다. 진화심리학이나 여러 과학에서 묘사하는 남성에게, 그리고 여성에게 자식이란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가? 자기 자신의 영생이며 복제라고 해도 믿을 정도다. 이런 관념 역시 성차화 되어있음을 지적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적어도 현재 자식과 결혼, 여남 혹은 남녀를 떼어놓을 수 없다면 이를 명확히 고려해줄 필요가 있다. 물론, 러셀이 언뜻 암시하듯, 과학이 우리의 또다른 신이 되는 일을 지양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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