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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메시스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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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신간평가단의 마지막 책은 필립 로스의 네메시스! 미국에서는 유명한 작가이고, 그의 유작이라고 하지만 나로서는 처음 읽는 필립 로스 작가의 책이었는데, 전개 방식이 상당히 독특했다.

'상당히 독특하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를 조금 풀어보도록 하자.

책의 결말부분 직전까지 독자는 이 소설을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바라보게 된다.

상황, 장소, 인물에 대해 제 3자의 입장에서 서술하는 전개 과정을 보면 영락없이 전지적 작가 시점처럼 느껴지며, 중간중간 ‘–‘를 통해 나오는 독백 같은 서술 또한 필립로스의 독특한 서술 방식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결말을 보고 난 후에는,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전지적 작가 시점이 아닌, 챈슬러 애비뉴 놀이터의 한 소년의 시점에 의해 전개되었음을 알게 되는데, 이 순간이 바로 <네메시스>가 독자로 하여금 다시 한번의 독서를 유도하는 부분이다. 결말을 보고 책을 다시 완독하는 순간, 모든게 다르게 느껴지는 소설은 흔치 않았는데….

소설 살육에 이르는 병처럼, 같은 내용이지만 서술자의 정체에 따라 또 다르게 느껴지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이런 소설을 오랜만에 접하는데전개 장치가 상당히 정교하다고 할 수 있겠다.

간략하게 소설의 내용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면 이렇다.

 폴리오라는 전염병이 핵심 화두라 할 수 있는데, 소설은 애비뉴 놀이터의 감독인 버키라는 인물이 전염병이라는 상황과 만나게 되면서 겪는 일을 그린다. 열정과 올바른 가치관, 도덕관념을 지닌 모범적인 인물이 폴리오라는 전염병으로 인한 비극 속에서 어떻게 갈등하는지, 어떻게 무너져내리는지를 제 3자의시선을 통해 잔인할 정도로 무덤덤하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최근 메르스 이슈가 있어서 그런지 개인적으로는 네메시스가 매우 현실감있게 다가온 부분이었다.

초반부, 네메시스를 통해 전염병이라는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두려움, 목적없는 분노, 슬픔과 그런 상황 속에서도 굳건한 바위처럼 흔들리지 않는 가치관을 보여주는 주인공의 모습이 마치 한 편의 모범적인 감동소설을 보는 느낌을 자아내기도 한다.

하지만 극 중반부터 상황은 달라진다.

끊임없이 퍼져나가는 폴리오. 감염경로도, 치료법도 없다는 극한의 두려움에 노출된 사람들을 대하며 버키는 조금씩 무너저내려가기 시작합니다.

책 뒷면에 적혀있는 두려움은 우리를 나약하게 만들어. 두려움은 우리를 타락시켜. 두려움을 줄이는 것. 그것이 자네의 일이고 내 일이야라는 대사처럼.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두려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바위처럼 버티면서 휩쓸리지 않고 두려움을 줄여나가던 버키는 두려움으로 인한, 갈 곳 없는 분노에 마주치며 점차 스스로가 소진되었음을 느낀다.

그리고 그런 때에 약혼자인 마샤의 인디언 힐의 물놀이 감독으로 와달라는 제안을 수락하게 되면서 버키의 내면은 겉잡을 수 없는 죄책감으로 가득차기 시작하는데...

폴리오라는 재해에 있어서, 개인이 느끼는 책임이 어느 정도일지는 모르겠지만주인공이 느끼는 책임은 거의, 소위 말하는 '끝판왕' 수준이다. 도덕 종결자 수준이라고나 할까.

본래 이렇듯 선량하기만한 주인공의 모습에는 선뜻 이입하기 힘든데,  필립 로스는 과장없이 얘기를 전개해나가면서도 책을 놓지 못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미국 대표 작가의 위엄이 느껴지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버키는 본인이 이상적이라 생각하는 인디언힐에서도 행복을 붙잡지 못한채 끊임없이 신의 존재 이유, 본인의 의무에 대한 책임감, 도피로 인한 죄책감을 물으며 괴로워한다.

그리고 그 자신이 이 폴리오 감염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며 비극은 절정에 달하게 되는데...

마치 순교자처럼, 모든 책임을 뒤집어쓴 주인공은 본인의 모든 것을 포기하기에 이른다.자연스럽게 포기한게 아니라, 의식적으로 포기하는 그 모습이 사실 선뜻 이해하기 쉬운 것만은 아니다. 마지막, 약혼자의 절규는 이런 버키에 대한 타자들의 견해 중 하나를 잘 대변해준다.

너는 우둔하게 굴고 있지만, 사실 너는 우둔하지 않아. 너는 무지한 소리를 하고 있지만, 사실 너는 무지하지 않아. 너는 미친 사람처럼 굴고 있지만, 사실 너는 미치지 않았어'

 

개인적으로는 전염병이라는 극적이지 않은 주제와, 비현실적인 주인공으로 개인의 윤리적 가치관에 대한 고뇌를 이렇게까지 파헤치는 중에도 이야기에 대한 몰입도가 끊기지 않았다는 점에서 굉장한 수작이었다고 생각한다.

<네메시스>는 독서 내내 특정 상황에 대한 개인의 책임은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는가를 묻게 한다. 놀이터 감독으로서 주인공이 지고자 하는 책임은 도의적일지 모르나, 과해보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사실 전파 경로도, 예방 방법도 모르는 그 상황에서 두려움을 줄이던 주인공의 모습은 그 자체로도 초인적인 것이었으니까.

뉴어크에서 인디언 힐로 이직한 것 또한, 남들이 비난할 수 없는 선택이라 여겨진다.

아무것도 확실히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은 넓지 않으니까. 폴리오가 창궐하는 상황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직했다고 비난을 받는다면, 글쎄... 과한 도덕과 이상론은 사람을 설명하지도, 지켜주지도 못한다.

그렇게 생각한 탓인지 솔직히 인디언 힐에서 주인공이 하는 고뇌를 읽으며, 버키라는 인물이 너무 착해서 이런 자책감에 빠져있구나, 하는 생각이 지속적으로 들었다. 뭔가 납득이 가기는 하지만 주인공의 심리 자체에는 나를 이입시킬 수 없는 느낌?

하지만 주인공이 폴리오 보균자라는 상황이 오면, 이 이입이 조금 더 쉬워진다. 근래 한국의 상황이 겹쳐졌던 탓일까. 이 지점에서 버키가 직면한 죄책감의 무게가 묵직히 와닿기 시작했다. 본인이 괴로워하던 상황, 본인이 지키려고 했던 사람이 죽어버린 비극의 원흉인 폴리오. 바로 본인이 그 폴리오 보균자였다니.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었으리라.

그리고 그 이후 주인공이 자신의 삶을 포기해버리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음에도 납득이 되던 이유는, 그런 포기가 개인의 윤리적 가치관에 기반해있었기 때문이다. 현실과 아두 유리되어있다고는 할 수 없는 그런 윤리적, 보편적 가치관 말이다.

"내가 결혼을 한지 얼마 안 되었는데 치료비가 어마어마하게 나가는 불치병에 걸렸다면 배우자를 놓아주는 것이 그 사람을 위한 길이 아닐까?"

한번쯤은 던져보게 되는 질문이고, 그 상황에 직면하면 더 절절하게 되는 물음이 아닐까 싶다. 아마 모두 한번쯤 상상해봤을 테고.

 

다만 좀 답답한 건, 주인공이 그 어떤 다른 길도 포기한채 스스로의 세계에 본인을 가뒀다는 점에 있다. 주인공 스스로는 순교자처럼 본인을 생각하겠지만…. 글쎄. 독자의 입장에서는 쉽게 공감이 가지 않았다. 비난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렇게 모든 것을 짊어질 필요가 없는데도 모든 것을 짊어지며 이게 최선이었다라고 자위하는 모습에 속이 답답해졌다고나 할까. 이런 답답함은 마지막으로 가면서 묘한 연민처럼 변화하는데, 이런 감정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솜씨가 아주 수려하다.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상황에 대한 본인의 책임의 범주에 대해서도 스스로에게 묻게 만드는 책. 읽어봄직 하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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