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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모노프
엠마뉘엘 카레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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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독서가 나를 이루고 있는 성분을 증명할 때가 있다. 아는 얘기, 모르는 이야기, 알지만 사실은 모르는 이야기, 그런 것들이 섞여 들어간 책을 읽을 때 나는 내가 어느 시대에 태어나 언제를 살아왔는지를 절감한다. 말이 묘하게 거창하다. 다시 말하자. 나는 90년대 초반 생이고, 막 페레스트로이카가 일어난 후 세상에 태어났고, 살면서 공산주의(-사회주의)에 대한 열망이나 호기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 책에 대해 이야기 하기 위해 이런 설명을 거쳐야 하는 이유는, 이 책이 다름아닌 <리모노프>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작가 엠마뉘엘 카레르가 쓴 이 소설은 현재 활동하고 있는 러시아의 야권 인사 <리모노프>의 인생을 다룬 전기소설이다. '전기소설'이 되면서 이 소설은 허구와 현실 사이의 경계를 가늠할 수 없게 하는 줄다리기를 선보이는데, 덕분에 독서하면서 여러 번 나를 텍스트 바깥으로 꺼내와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게 모두 '사실'이라고 믿게 될 것 같아서.

 

카레르는 <리모노프>를 상당히 독특한 방식으로 전개 한다. 그는 소설 안에서 '나'로 등장하며, 나는 리모노프에 대한 소설을 쓴다. 즉, 소설 속에서 소설을 쓰는(그렇다고 이걸 메타 소설로 보기는 어려울 듯한데) 구도가 등장한다. 그러면서 화자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삽입한다. 이 때 자신은 뭘 하고 있었고, 어떤 느낌을 받고 있었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가 리모노프의 인생과 맞물려 나가면서 전개되는 것이다. 독자에 따라 호오가 있겠지만, 나는 이 방식이 '리모노프'라는 문제적 인물을 조명하는 데 꽤 효과적일 수 있는 방식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리모노프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곁에 있는, 고생을 좀 거쳤지만 마음만은 선하고 착하고 성실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고, 카레르가 계속해서 그런 사람도 '있다', 우리와 다르게 생각하던 그 러시아의 민중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하기 때문이다.

 

 <리모노프>

 

말하자면, '전기'를 썼음에도 카레르는 리모노프를 영웅으로 추앙하거나 추켜세우지 않는다. 리모노프는 일종의 파시스트이며, 극우세력이기도 하고, 스탈린과 나치를 옹호하는 사람이다. 그는 백혈병 걸린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다면 속으로 욕을 퍼부을 정도로 우리의 시각에서는 '비인간적'이고, 폭력, 난교, 살인 등에도 크게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도리어 그것들과 함께 삶을 살아온 사람이기도 하다. 소설은 그런 리모노프가 거쳐온 일생을 찬찬히 정리하면서 현재 리모노프의 위치까지를 서술하는 데에서 끝이 난다. 안타깝게도, 소설 내내 풍운아처럼 온갖 고생을 거치며 살아온 리모노프의 현재는, 굳이 서술하자면 '별 볼일 없다.' 독자도 작가도 이걸 잘 받아들이기가 어려운데, 우리가 마치 우리의 고생을 성공에게 바치는 대가처럼 생각해서 일 것이기도 하고(마치 그게 등가교환이 되는 것이라는 것처럼), 리모노프가 보여주었던 강렬한 모습이 결말에는 견지되지 않아서 일 것이기도 하다.

나는 무엇보다 내가 그 헷갈리는 러시아식 이름과 지명을 계속 감내하고, 모르는 단어를 찾아가며 장장 530페이지에 달하는 소설을 전부 읽었는데 이 사람이 이렇게 시시한 재야인사가 되어버렸단 말이야? 하는 생각이 들어 괜히 억울했다. 하지만 따져보면 이건 소설이 아니라 '전기 소설'이고, 현실은 소설 같지 않으니 이 소설은 어떤 면에서 가장 현실을 훌륭하게 모방한 소설이다. (그리고 그게 소설의 본령이라는 점을 나 같은 낭만주의자들은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아마도 프랑스판 '리모노프'>

사실 이 소설을 며칠 간 들고다니면서 읽었고, 그 때마다 '러시아'라는 나라에 대해 생각했다.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러시아가 만들어간 역사에 무지한 나로서는 전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들이 책에 숨어 있었다. 세르비아-크로아티아 전쟁, 옐친이 이끌던 이른바 '민주적'인 정부의 말로, 잠깐 동안의 쿠데타와 푸틴까지. 리모노프라는 사람이 그 굴곡을 겪으면서 살아왔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그가 이미 신기하다. 그런 리모노프의 정신세계는 더더욱 신기하고 말이다.

개인적으로 이 글에서 리모노프와 카레르의 세계가 양 쪽에서 나타나는 구성이 매우 효과적이라 생각하는데, 각각 러시아-프랑스라는 출신의 특성상 그들이 보여주는 반응이 그 당시 그 사회가 품고 있던 가치와 문화의 틀을 거친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리모노프는 프랑스인 카레르가 옳다고 배운 모든 것들을 무시하는 사람이지만, 공산주의 이후 경쟁적 자본주의를 성공적으로 이식하지 못한 러시아인들의 어떤 정서가 그런 리모노프를 지지했고, 그를 정치권의 인사로 만들었다. 카레르와 서방은 그런 리모노프에게 호의적일 수 없었겠지만, 그런 한편, 러시아의 '민주주의'가 자행하는 일에도 호의적일 수 없었다. 러시아의 이데올로기는 어떤 방식의 껍데기를 뒤집어쓰던 간에 독재적이었고, 서방은 러시아의 '민주주의'가 어떤 행태를 보이는 지에 대해 경악을 금치 못했다. 과연 우리가 옳다고 믿는 모든 가치는 강제되는 순간 위험해진다. 그 내용이 얼마나 선하고 '인간'적이며 좋은 지에 전혀 무관하게.

 

카레르는 이런 부분을 꼬집으면서, 리모노프가 보여주는 인간의 본성을 건드린다. '점잖은 사람'이자, 일종의 득도한 사람처럼 보이는 리모노프의 이중성을 건드리면서 그를 특별한 사람처럼 만들어보이지만, 사실 이런 카레르의 시선은 러시아 나츠볼들을 보는 내내 지속된다. 폭력적인 언사를 아끼지 않지만 순박하고 의리있는 사람들. 순박하고 정이 있지만 폭력을 자행하기 꺼리지 않는 사람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카레르가 마치 그것이 이 사람들의 독특함인 것 처럼 느껴지도록 글을 썼다는 것이다. 그의 글에서 이미 계속해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성적인 폭력성에 대한 의문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음에도 말이다. 말하자면, 현재 서구의 '교양인'처럼 문명화되고 교육받은 우리는 리모노프와 무엇이 그리 다른가? (삶의 어떤 양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내부에서 떠오르는 생각의 문제에서.)

물론 그럼에도 우리는 다르다.

다른 삶을 거쳐왔고, 다른 체제에 살았으며, 다른 시간을 보냈다. 문제는 그 다름을 당신이 인정할 수 있는가다. 정말로 당신은 공산주의를 이해하고 있나? 그 시절을 이해하고 있을까? 제국의 영토를 가지고 있던 나라가 한 순간에 해빙으로 나아가면서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자국민들이 가지는 느낌을 우리의 측면에서 상상하고 생각해 소거하는 건 아닌가? 타자를 이해하고 싶다면, 우리가 옳다고 믿는, 우리의 삶을 지배해온 가치관에서 공산주의를 볼 때 흔히 벌어지는 흑백논리와 이분법을 경계하자.

 

나는 90년대 초반에 태어났고, 공산주의는 전혀 알지 못하고, 그래서 끊임없이 상상해야 한다. 그 시절 그 이념은 대체 어떤 것이었을까? 나는 이미 그 이념이 현실에서 구현되었고, 그 결과 실패했다고 배웠다. 그 지식이 내게 준 선입견을 경계하며 세상을 읽지 않으면, 결국에는 내 세상 속에 갇혀버리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삶이 내 인생의 결과가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리모노프>가 내게 준(카레르가 의도했건 하지 않았건) 하나의 교훈은 이것: 너 자신을 알라.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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