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남한산성
김훈 지음 / 학고재 / 200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인간에게 있어서 망각이란 축복이다. 기억의 천재 푸네스 처럼 현재의 모든 순간을 기억할 수 있다면(어떤 이미지도 탈락되지 않고, 어떤 작은 감각조차 희미해지지 않는 과거란 현재와 무엇이 다른가), 수없이 중첩되는 현재와 지나간 현재들 속에서 인간은 그 어떤 것도 인식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현재를 지속적으로 '잃기'때문에 또다른 현재를 인식할 수 있다.
하지만 망각은 또한 저주이기도 하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수명은 길어도 100년 정도이고, 한 세대의 기억은 다음 세대가 지나면 거짓말같이 잊혀진다. 시간은 다시 돌아흐르지 않고, 공간의 기억은 새로운 기억으로 덧칠되기 때문에, 한 인간의 삶은 셀 수 없이 수많은 시간과 공간의 궤적을 스쳐지나가며 중첩되다가 죽음과 함께 사실상 소멸한다. 망각은 한 인간의 개인의 삶을 내부에서부터 갉아먹다가 결국 개인의 존재 자체를 흔적도 없이 먹어치워 버린다.
이런 망각의 힘에 대항하여 사람들은 개인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규명하고 스스로를 불멸의 형태로 남기고자 노력한다.
우리가 어떤 한 개인의 정체성을 규명하는 것(한 개인을 온전히 드러내는 것)은 수많은 삶의 순간들이 망각의 힘에 의해 탈락되고, 수없이 중첩되어 드러난 현재의 삶의 모습을 통해서이다. 이렇게 드러나는 삶의 모습은 한 개인의 삶을 전부 드러내지 못한다. 그건 불가능하다. 몇몇의 특징적인 개인의 삶의 순간들에 의해 개인의 정체성이 규명되고 그 편집 과정 속에는 개인의 의도가 작용한다.
개인의 문제를 한 국가의 역사적 차원으로 확대시켜 이야기해 볼 수 있다.
우리 대한민국의 역사는 약 반만 년의 세월을 품고 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약 반만 년의 시간과 한반도와 주변 어느 정도의 공간, 그리고 그 시간과 공간이 교차했던 곳에서 일어났던 셀 수 없이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역사란 망각의 부산물이며, 그 동안 셀 수 없이 수많은 사람들의 수많은 이야기들이 중첩되고 탈락되는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역사적 정체성이 형성되어 왔다.(그 편집 과정에서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가 개입되기도 한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역사적 정체성이란, 우리나라를 구성해왔던 수많은 구성원들 전체의 이야기를 대표하지만, 반대로 우리나라를 구성해왔던 대다수의 구성원들의 이야기는 탈락된 이야기이기도 하다.
'병자호란'은 당시 유교적 명분론에 의해 명나라와의 군신관계를 계속 유지하면서 후금과는 화친할 수 없다는척화파와 기울어져가는 명나라 대신 새로 강성해지는 후금과의 새로운 관계를 도모하여 실리적 외교를 추구하자는 주화파의 대립으로 혼란스러웠던 탓에 변변한 대응조차 한 번 하지 못하고 인조의 삼전도에서의 굴욕으로 막을 내린 전쟁이라고 역사 교과서 속에서 배웠고 그렇게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속에 생략된 인조의 답답함과 슬픔, 죽음을 불사한다며 흐느끼며 임금에게 직언하던 이의 새벽 도주, 겨우내 남한산성을 지키며 느꼈을 군졸들의 추위와 기근의 고통은 몰랐다.
역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추상화시킨다. 반면에 문학은 역사 속에서 추상화된 개인의 삶을 구체화시킨다.
'아. 저들도 나처럼, 이 땅을 밟았고, 한 시대를 살았던, 나와 같은 한 명의 인간이었구나.'
역사 속에서 탈락되어 있던 개인들의 삶이 느껴졌다. 그제야 비로소 내가 역사의 일부분이라는 일체감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