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4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0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존재를 구분짓는 속성으로써 무게라는 잣대를 들이대었을 때, 각 존재의 무게가 차이나는 이유는 존재가 지니는 자체의 질량 때문일까, 혹은 다른 존재의 중력 때문일까

영원회귀하는 삶의 순간순간들은 이후 혹은 이전의 반복되었고 반복될 수많은 순간들과의 숙명적 연결 때문에 쉽사리 선택하고 움직일 수 없을만큼 무겁다. 반면에 영원회귀하지 않고 한 순간 존재했다가 사라지는 삶의 순간들은 마치 언제 터질지도 모르는 불안을 품고 공중을 표류하다가 끝내 터져 공중 속으로 무화되어버리는 비누방울처럼 가볍다. 삶이, 즉 존재의 무게가 무겁다는 것은 존재가 많은 연결을 짊어지고 있다는 말이고, 그것은 존재의 뿌리가 넓게 퍼져 세계 속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다는 뜻이다. 반대로 가벼운 존재는 세계로부터의 자유, 극단적으로는 무의미를 뜻하지는 않을까. 생의 의미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희미해짐을 느껴버렸을 때야 알 수 있는 허무함이 아닐까.

'사랑은 정사를 나누고 싶다는 욕망(이 욕망은 수많은 여자에게 적용된다)이 아니라 동반수면의 욕망(이 욕망은 오로지 한 여자에게만 관련된다)으로 발현되는 것이다.'
오로지 한 여자에게만 관련되는 욕망의 발현이 사랑이라면 사랑으로 인해 내 존재는 필연적으로 무거워질 것이다. 한 여자와의 존재로서 뿌리내리는 연결이 삶의 무게를 더할 것이다.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나 최초의 연결에 의해 무게를 갖게 된다. 그렇게 존재는 세계 속에 발을 딛게 된다. 무게를 갖게 된 한 존재는 세계를 처음으로 딛게 되는 순간, 황홀한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우리 인간은 본질적으로 중력을 느낄 때, 즉 땅 위에 발이 닿아있을 때 만족감과 행복감을 느낀다). 세계 속에 뿌리내리는 존재는 더욱 넓고 깊게 세계와의 연결을 강화하면서 더욱 안정적으로 세계 위에 설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존재와 세계가 만나는 연결은 은유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은유란 한 대상을 이미 자신이 알고 있는 다른 대상에 빗대어 표현하는 방식이다. 내 삶과 전혀 관련이 없던 한 대상을 내가 알고있는(이미 내 존재를 구성하는 일부로 작동하고 있는) 어떤 대상에 빗대어진다는 것 자체가 연결을 의미하는 것 아닐까.

존재의 무게는 존재가 맺고 있는 연결의 무게라 했다. 반복되어 무거워지는 연결들은 행복감을 느끼게 하지만, 존재는 반면에 가벼움의 자유를 잃는다. 모든 순간순간들이 다른 순간들에(대상들에) 종속되어 존재의 행위와 선택은 다른 순간들과 대상들을 책임질 의무를 띄게 된다. 존재는 이제 무게를 버티게 된다.
하지만 존재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모든 연결을 끊어버린다면 존재는 세계로부터 둥둥 떠올라 표류할 것이다. 언제든 사라져 무의미의 세계로 편입될 수 있는 불안을 가득 품은 채.

이별이 괴로운 것은 '한 연인이 떠나가서'이기보다는 그로 인해 내 존재가 무의미해짐을 참을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와같다면 2017-06-15 0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별이 괴로운 것은 ‘한 연인이 떠나가서‘이기보다는 그로 인한 내 존재가 무의미해짐을 참을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예 맞아요.. 저도 내 존재가 무의미해짐을 견뎌낼 수가 없었어요..

길샘 2017-06-15 1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힘드셨겠어요ㅠ
우리는 사랑에 빠지는 순간에도 무력하고, 이별할 때도 무력하고, 사랑하는 중에도 무력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럼에도 우리가 계속 사랑을 하려고 하는 건 그런 무력함에 대한 필사적인 저항이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사랑의 슬픔을 알면서도 사랑하는 인간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이가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