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히려 최첨단 가족 - 성취의 시대, 우리가 택한 관계의 모양
박혜윤 지음 / 책소유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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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독후 활동을 가끔씩 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표지를 천천히 보게 되는 습관이 생겼어요. 일러스트 안에 아빠일 것으로 예상되는 캐릭터가 뜨개질을 하고 있고 자녀 두 명과 엄마, 집, 자동차 등 일반적인 가족의 형태입니다. 하지만 최첨단 가족이라는 제목엔 분명 가족의 다른 해석을 함축시켜 놓았을 텐데 그 의미는 무엇일까? 기대감을 가지고 새해 첫 책을 읽었습니다.

작가님의 이력을 보고 조금 의아했습니다. 신문 기자로 일하다 시애틀에서 한 시간 떨어진 숲과 실개천이 있는 이동식 주택에서 두 딸, 남편과 살고 있으며 원하는 만큼 쓰기 위해 그만큼만 일한다. 저처럼 의심병이 있는 독자들은 한번 의심해 봅니다. 쓸 만큼만 일한다는 게 가능할까? 더 많이 벌고 싶어 하는 현대인들 사이에서? 확실히 대도시를 떠나 살기 때문에 이런 여유로운 최첨단 가족의 모습이 탄생한 걸까? 저는 이른 의구심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지만 책의 중반쯤을 넘기며 그 의미가 어떤 면에서 가능할 수 있는지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책에 나온대로 실천해 보기는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일종의 실험적인 가족의 형태는 거주환경에서부터 쉽게 접근하기 어렵게 느껴지지요.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하지만 80년생이 40대를 넘긴 지금 어쩌면 예전 부모들과는 다르게 아이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지내고 싶은 분들은 한번쯤 읽어보면 좋겠습니다. 가족이라는 이름안에서 나로 바르게 서는 법, 그 팁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은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장 : 개인들이 함께 산다는 것

2장 : 비로소 나의 세계가 완성되었다.

3장 : 세상의 시스템, 우리 식대로 살기

4장 : 우리가 선택한 가족 실험


아무리 오래 함께 있어도

전혀 불편하지 않은 것,

딱 그 정도로 만족한다.

더 좋은 내가 될 필요가 없으니까.

가족이란 단어는 작가님의 표현처럼 구태의연할 수 있습니다. 작가님은 일반적인 가족, 자식, 양육이라는 말은 변함없이 쓰이고 있지만, 그 말의 의미와 형태는 매우 달라졌고 사적인 관계들로 이루어진 인간관계를 제대로 지칭하는 언어가 없는 이유로 최첨단 가족이라고 부르기로 한 것입니다. 분명 4인 가족이지만 기존의 것과 다르기 때문에 '최첨단'이라는 약간의 유머를 섞은 명칭을 사용한 점도 전 인상적이었습니다. 아이들을 소유물이 아닌 개인으로 대하면서 가정에서 부모, 아이의 권리나 의무를 정해놓지 않으면서 건강하게 유지되도록 하는 노력들이 정말 배우고 싶고 할 수 있다면 한두 가지 정도는 우리 가족에게도 적용하고 싶어졌습니다. 물론 동의하에.

p45

서로 똑같은 주장을 하면서 가족들에게 화를 냈다.

"내가 이렇게 뼈 빠지게 일하고 너희를 위해 희생하는데, 알아주지를 않아. 배가 부른 거야"

"나도 죽을힘을 다해서 의무 이상을 하고 있어. 내가 대체 뭘 잘못했어?"

4인 가족은 서로가 헌신이라 부르며 열심히 살았고 그만큼의 공부를 했지만 그에 대한 보상을 바라다가 서로 미워했다.

p48

나는 아이를 낳아 또다시 핵가족을 만들기 위해 결혼했는데, 행복해지겠다는 생각은 애당초 없었다. 서로에게 더 나아지거나, 더 채우거나, 더 좋은 무엇이 되어야 한다는 기대 없이 관계가 저절로 오래 지속될 것이라는 이해만으로 가족을 지탱할 수 있는지 실험해 보고 싶었다.


가장 나와 닮았다고 생각한 부분은 가족이 느슨한 관계이길 바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가족들은 서로의 기념일, 축하 행사는 처음부터 하지 않았고, 공부하고 돈 버는 것은 가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이유가 있으면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저는 언젠가부터 생일 치르기가 좀 거추장스러웠습니다. 아니 기념일을 챙기는 것이 귀찮아졌는데 무조건 나이 탓으로 만 여겼던 제가 어쩌면 가족이 해야 하는 의무에 지쳤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을 읽고 바로 돌아오는 생일자부터 생일을 없애보자고 할까? 했는데 제가 1번이네요? ㅎㅎ실험은 다음생일자인 둘째부터 해보면 좋겠지만... 음 그것도 어려워보입니다.


2장의 비로소 나의 세계가 완성되었다 부분에서도 육아는 아이를 '잘' 키우는 것에 목적을 두지 않고, 부모가 '권력자'가 아니라 '협력자'로 인식시키며 갈등을 해결해 가는 과정들이 나옵니다. 이 또한 가능할까?라는 의문으로 이어졌는데 제가 불과 며칠 전에 했던 행동과 비슷한 상황이 나와 조금 놀란 장면이 있습니다. 인터넷 사용을 금지하는 말에 기분 나쁜 표정을 짓는 사춘기 아이를 나무라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존재가 무조건 금지하는 이유나 제약을 가하는 경우,그 모든 것이 관심에서 비롯되며 관심을 끊기를 바라는지 아이에게 묻는 작가님의 행동이었는데요. 전 그걸 초등학교 5학년과 2학년 아이들을 앉혀놓고 했던 점에서 조금 미안해지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건 너를 사랑해서야가 아니라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야라고 말을 했는데 조금 더 커서 해도 좋았을 뻔했죠?





그 외에도 최첨단 가족으로 불릴만한 다양한 상황이 나옵니다. 정해진 교육 환경, 똑같은 집, 비슷한 가족 구성, 적당한 돈벌이 남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가족의 모양을 해야 비로소 우리는 안심을 하게 되는 어쩔 수 없는 사회인들이 보기에 어색하고 엉뚱한 면도 분명 있습니다.



항상 기준에 맞춘 사람을 원하는 사회에 반대 표를 던지며, 난 다르게 살 거야!라고 외칠 뿐 아니라 실제 소유의 기준도 스스로가 정한 기준에 따라 쓸 만큼만 버는 가족의 모습. 부모에게 무조건 대들며 반대하는 아이들이 아니라 건강하게 화를 내고 반대 의견도 서슴없이 말할 수 있는 건강한 인간으로 자라도록 만든 환경이 내심 부러웠습니다.



가족의 효용

가족의 효용 부분은 어딘지 모르게 먹먹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불후한 작가의 성공 이야기 이면에는 가출한 딸을 찾지 않은 부모님의 유전적 영향이 있었고, 잘 넘어지고 부주의한 작가님은 엄마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적 영향이며 고스란히 둘째 딸이 그런 성향을 물려받았다고 합니다. 또한 어릴때 겪은 가족 간의 불화가 심리적인 요인으로 작용해권리와 의무라는 가족의 틀을 벗어나려는 실험을 시도해 보신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작가님을 비롯한 가족들 모두 한 인간으로 자립하기 위해 부던히 노력합니다. 부모님께 의존하기도 하고 관심을 가져달라고 이야기하는 모습은 또 영락없는 청소년기 아이들입니다. 그렇게 유기적으로 변하고 4인 4색이 잘 드러나는 건강한 가족. 서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일때 비로소 과거의 가족에서 벗어난 첨단 가족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2021에 이어 2022년 새해가 밝았지만 여전히 하루의 대부분을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습니다. 오히려 최첨단 가족을 읽어보며 앞으로 가족의 존재 이유, 가족 안에서 나의 역할 등은 무엇인지 한 번쯤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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