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은 생전에 한국이라는 나라를 알았을까? 한국은 알았어도 삼우반이라는 출판사는 몰랐겠지. 그리고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이라는 제목을 보여줘도 이게 자기가 쓴 책의 한국어판 제목이라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겠지.
어쨌든 나는 조지 오웰이 쓴 글을 꽤 오랜 시간이 지나 파리나 런던과는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에서 번역되어 나온 책으로 봤지만, 좀 움찔했다. '써내려갔다'는 표현은 이런 글에 잘 어울릴 것이다. 예쁜 표현 생각해서 고쳐넣고 더 있어 보이는 문장을 끼워넣는 등의 꼼수는 잘 안 보이는 이런 글 보면, 이런 글을 '써내려갔을' 사람이랑은 아직도 참이슬 한 병 같이 따고 싶다. 그리고 이 세상 사람이고 저 세상 사람이고 간에 한 잔 졸졸 따라드리고 싶다. 물론 조지 오웰은 참이슬 역시 알 턱이 없겠지.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이라는 제목으로 문학동네에서도 나와 있던데 이 제목은 내 눈에는 좀 오바로 보인다. <동물농장>이랑 엮여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긴 하지만 아무리 봐도 따라지, 인생 모두 너무 멀리 나갔다.
우리가 꼼꼼이 살펴보면 걸인의 생계비와 남부끄럽지 않은 무수한 사람들의 생계비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걸인은 일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일이란 무엇인가? 잡역부는 곡괭이를 휘두름으로써 일한다. 회계사는 숫자를 더함으로써 일한다. 걸인은 어떤 날씨에도 한데에서 서 있고, 하지 정맥류와 만성 기관지염 등에 걸림으로써 일한다. 이것도 다른 어떤 것과 마찬가지로 직업이다. 물론 아주 무익한 직업이긴 하지만, 그렇게 본다면 평판 좋은 많은 직업들도 아주 무익한 것이다. 그리고 사회적 유형으로서도 걸인은 다른 수십 가지 직업인들과 비교하여 정직하고, 일요 신문 사주와 비교하여 고상하며, 집요한 할부 판매원과 비교하여 상냥하다. 간단히 말해서 걸인은 기생충이지만, 상당히 무해한 기생충이다. 그는 자신의 목숨을 부지할 정도 이상을 사회로부터 뜯어내는 일이 거의 없고, 또 우리의 윤리 개념에 따라서 걸인을 정당화할 수도 있는데, 그것은 걸인들이 고통을 당하면서 되풀이하여 갚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걸인이 남들과는 다른 계층에 속한다거나 대부분의 현대인에게 경멸당할 만한 권리를 줄 만한 점이 전혀 없다고 본다. (227~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