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란 놈과 나는 안부를 별로 묻지 않는 사이다. 이러다 언젠가부터는 안 보고 살아도 별 탈 없는 거 아닐까 싶을 정도로 서로의 안위에 대한 소식을 뜸하게 주고받는다. 이 놈이 장가를 가고 난 후로는 더 심하다. 살가운 대화 자체가 거의 없다. 물론 문자나 카톡으로 말을 거는 빈도는 꽤 된다. 그러나 그 대화에 안부를 묻는 내용은 거의 없다. 교환하는 문장은 거개가 말로 표현되어봤자 별 의미 없고 글로 적히지 않는다 해도 아무 탈 없을 유의 것들이다. 예컨대 이런 말들. 야 요새 개콘 본 적 있냐 웃긴 코너 하나 있더라, (샘 스미스와 샘 해밍턴을 헷갈린 누군가의 댓글을 캡처해서 보여주며) 짱 웃기지 않냐. (턱을 자꾸 내미는 조카의 버릇을 화제로) 양택조 닮지 않게 주의 줘야겠다, (기저귀 바람으로 계산기 들고 있는 조카의 사진을 화제로) 사진의 제목은 일광욕 중인 경리, (우디 알렌 영화 장면을 화제로) 샤워씬 나올 때마다 뒈질 거 같다 등등. 대체 이런 말들의 행간 어디에서 안부를 묻는 정다움이 발견되겠는가.

 

여행 중에도 예외는 없다. 누이에게 밥은 먹고 다니냐 같은 질문은 한번도 없다. 오늘도 기껏해야 "포기, 실패, 그런 건 개나 조버려.. 그라운드는 너에 무덤이 될 것이다..'라고 쓰인, 건너건너 아는 누군가의 카톡 프로필을 캡처한 사진을 뜬금없이 보내며 "안웃겨?ㅋ"라고 묻는 게 다다. 이것이 안부를 묻는 나름의 방식일 수도 있다. 뭐 그런 거 같기도 하다. 고마워해야 하는 건가 잠시 생각해본다. 생각해보니 뭐 별로 고맙진 않다. 둘다 철 들려면 아직 한참 멀었구나 싶긴 하다. ㅋㅋㅋ만 날려대지 말고 담에는 엄마 아버지 얘기도 좀 길게 해볼까. 뭐 잘못 먹었냐고 놈이 또 퉁을 줄 수도 있겠다. 그래도 시도는 해봐야겠다. 서울도 날이 많이 선선해졌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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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고 있었다. 시간은 잘 간다는 것. 짐작하고 있었다. 어딜 가도 역시 시간은 잘 가리라는 것.

시간감각이 좀 무뎌졌다. 사실 돌이켜보자니 뭐 그리 고된 일을 박차고 온 것도 아니다. 내 엄살도 만만찮았다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며칠 자고 먹고 멍때리는 꼴은 마치 거대한 압박을 견뎌내고 과업을 해낸 뒤에 비로소 숨돌릴 만한 한때를 맞이하기라도 한 고득점 사수생 포스. 어쨌든 지금은 순간순간을 열성적으로 낭비하는 중이다. 싫지도 좋지도 않다. 그냥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다는 느낌은 든다. 당분간 눈에 들어오는 것들은 내치지 않고 손에 잡히는 것들도 한 번쯤은 들여다보려고 한다. 그런 식으로 좀더 흘려보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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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구경보다 놀음구경이 훨씬 재밌다.


근데 이 영상을 보면서는 소리없이 웃었는데, 영상 밑에 있던 댓글을 보고는 소리내서 웃었다. 

Steven Segal vs. Samuel L. Jackson!

이거 쓴 사람 누굴까. 오늘 처음으로 크게 웃게 해줘서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실로 고수들 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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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에서 사재낀 누룽지니 라면이니 하는 것들이 집으로 배달온 소리구나 하며 약간은 하이톤으로다가 인터폰을 받았다. 아니다. 경비 아저씨다. "보니까 태극기를 안 다셨던데요." "네." "좀 달아주세요." "네?"

갑자기 왜이러시냐, 장사 하루이틀 하는 것도 아니고 오늘이라고 뭐 다르냐는 말은 나도 물론 하지 않았다. 그냥 "태극기 없는데요"라고만 했다. 사실 나는 우리집에 태극기가 있는지 없는지 알지 못했다. 이사를 다니면서도 태극기를 챙겨둔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경비 아저씨께서 이런 연락을 친히 주신 적도 처음인 것 같다. 위에서 일종의 명이 내려왔나. 올해는 특별히 광복 70주년이라는 이유로 유난을 떠나. 요새는 70세는 노인도 아니라며 떠들썩한 고희연 같은 자리는 번거롭다고 생략하는 어른들도 많아 보이던데, 광복절도 보내온 정도로 보내면 안 되는 건가. 태극기는 안 달아도 유니클로는 안 사는 사람은 좀 봐주면 안 될까. 그건 그렇고 새삼스레 아파트 주민들에게 애국적 행위를 권고하거나 지시한 곳이 있다면 어디일까? 아파트 관리사무소일까? 동사무소일까? 

다들 참 사랑이 넘친다. 아름답다. 꼬인 심사로 하는 말이 아니다. 진정 아름답다. 내 속에서는 바싹 말라 비틀어져버려 자취를 찾기 힘든 애정을 여전히 품고 사는 자들도 생각보다 많은가 보다. 나라의 영광은 나라의 영광이고 일단 내 정신부터 좀 차리고 보자는 나같은 잉여들이, 알고보면 그렇게 다수가 아닌가 보다. 갑자기 조금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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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맥이라는 말을 듣고 그게 뭐냐고 했었다. 치맥같은 줄임말이란다. 책이랑 맥주란다. 말이 돼? 나는 선뜻 이해하기 어려웠다. 책을 읽으면서 맥주를 마신다고? 맥주 마시면서 책을 읽는다고? 그게 된단다. 그리고 즐긴단다, 누군가는. 와.

 

이러한 정보를 접하고는 다시 생각해본다. 나는 맥주를 위한 공간을 일상의 한 부분에 아주 조그맣게나마 마련해놓고 있는 처지이긴 하나, 그렇다고 '맥주가 술이냐'라며 맥주 도수를 폄하하는 부류에 속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홀짝홀짝 마시기보단 벌컥벌컥 들이켜는 것이 익숙해서인지는 몰라도, 내게 맥주는 어쨌든 명확하게 '주'다. 몸속에 들어가면 들어가기 전이랑 아주 약간이나마 뭔가를 달리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기특한 알콜 성분의 그 무엇이란 얘기다. 그런데 그런 맥주를 마시면서 책을 본다고? 알콜을 들이켜면서 문장을 씹는다고? 그럼 문장이 안주가 되는 건가? 아니면 맥주의 성분이 문장의 이해를 고양시킬 수 있는 건가? 그런 상황에서는 맥주를 읽는 거냐, 아님 책을 마시는 거냐? 


일단 궁금해졌다. 실행에 옮겨보자. 이영돈마냥 제가 먹어보겠습니다, 읽으면서. 혹은 읽어보겠습니다, 마시면서.

속으로만 중얼거리고는 나도 실시해보았다, 그 책맥이라는 것을.


실시 결과는? 이거 어렵다. 예상보다도 더 어렵다는 것을 몸소 깨달았다. 이거 대체 어떻게들 하시나요? 묻고 싶어졌다.


일단, 맥주는 캔으로 마시든 병으로 마시든 잔으로 마시든 간에 암튼 차가운 용기로 마시지 않나. 최근 내가 금요일 퇴근후에 방구석에서 주로 까는 아이템으로 말하자면, 기네스는 그렇게까지 차갑게 마시진 않으니 예외가 될 수 있겠지만 어쨌든 하이네켄이나 오비, 맥스, 하이트, 코젤 등등은 백 번이면 백 번 모두 충분히 차갑다고 느낄 때 마신다. 그런데 그 차가운 잔 혹은 병 혹은 캔을 들었다 놨다 하다 보면 손가락이 젖게 마련이다. 여기서부터 난관에 봉착한다. 젖은 손으로 책장을 넘겨야 하는 것이다. 이게 뭐 침 묻힌 손가락으로 책장을 척척 잘도 넘기는 분들에게는 별로 난관이랄 게 아닐 수 있겠지만, 나로서는 상당히 힘들었다. 책장을 넘기기 전에 나도 모르게 옷자락에 손을 닦고 있었다. 이게 우선 은근히 신경쓰였다.


또 다른 어려움도 있다. 책에서 좀 재미있는 대목이 나오면 맥주를 잠시나마 잊는 불상사도 생긴다. 이 경우 곧 김빠지고 미지근한 하이네켄을 맛보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유쾌하지 않은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반대로 더럽게 지루한 대목만 줄줄 읽고 있다 보면 겨를이 날 때마다 맥주만 흘깃거리고 있는 나를 목격하게 된다. 지적인 활동보다 잠을 부르는 무엇을 더 밝히는 내가 바로 거기에 버티고 있다. 이걸 목격하는 일 또한 별로 유쾌하지 않긴 마찬가지다. 결론적으로 책이 재미있건 재미없건 간에 책맥이란 건 결국 아쉬워하는 나, 없어 보이는 나 같은 거나 마주하게 만드는 짓궂은 무엇이었던 것.


책맥은 도대체 어떻게 즐기는 것입니까?라며 제대로 우아하게 그것을 즐기는 누군가를 붙잡고 한번 물어보고 싶어지기도 했지만, 설사 그 요령을 전수받는다 해도 이미 겪은 난관에 대한 기억이 또다시 난관으로 작용할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


역시나 나는 트렌디하고 있어 보이는 인간이 되기는 상당히 어렵구나 하는 것을 이 기회에 새삼 다시 한번 절감하고 만다. 맥주엔 그저 노가리나 음악이지. 책맥씩이나? 욕심이 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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