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에서 사재낀 누룽지니 라면이니 하는 것들이 집으로 배달온 소리구나 하며 약간은 하이톤으로다가 인터폰을 받았다. 아니다. 경비 아저씨다. "보니까 태극기를 안 다셨던데요." "네." "좀 달아주세요." "네?"

갑자기 왜이러시냐, 장사 하루이틀 하는 것도 아니고 오늘이라고 뭐 다르냐는 말은 나도 물론 하지 않았다. 그냥 "태극기 없는데요"라고만 했다. 사실 나는 우리집에 태극기가 있는지 없는지 알지 못했다. 이사를 다니면서도 태극기를 챙겨둔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경비 아저씨께서 이런 연락을 친히 주신 적도 처음인 것 같다. 위에서 일종의 명이 내려왔나. 올해는 특별히 광복 70주년이라는 이유로 유난을 떠나. 요새는 70세는 노인도 아니라며 떠들썩한 고희연 같은 자리는 번거롭다고 생략하는 어른들도 많아 보이던데, 광복절도 보내온 정도로 보내면 안 되는 건가. 태극기는 안 달아도 유니클로는 안 사는 사람은 좀 봐주면 안 될까. 그건 그렇고 새삼스레 아파트 주민들에게 애국적 행위를 권고하거나 지시한 곳이 있다면 어디일까? 아파트 관리사무소일까? 동사무소일까? 

다들 참 사랑이 넘친다. 아름답다. 꼬인 심사로 하는 말이 아니다. 진정 아름답다. 내 속에서는 바싹 말라 비틀어져버려 자취를 찾기 힘든 애정을 여전히 품고 사는 자들도 생각보다 많은가 보다. 나라의 영광은 나라의 영광이고 일단 내 정신부터 좀 차리고 보자는 나같은 잉여들이, 알고보면 그렇게 다수가 아닌가 보다. 갑자기 조금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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