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맥이라는 말을 듣고 그게 뭐냐고 했었다. 치맥같은 줄임말이란다. 책이랑 맥주란다. 말이 돼? 나는 선뜻 이해하기 어려웠다. 책을 읽으면서 맥주를 마신다고? 맥주 마시면서 책을 읽는다고? 그게 된단다. 그리고 즐긴단다, 누군가는. 와.

 

이러한 정보를 접하고는 다시 생각해본다. 나는 맥주를 위한 공간을 일상의 한 부분에 아주 조그맣게나마 마련해놓고 있는 처지이긴 하나, 그렇다고 '맥주가 술이냐'라며 맥주 도수를 폄하하는 부류에 속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홀짝홀짝 마시기보단 벌컥벌컥 들이켜는 것이 익숙해서인지는 몰라도, 내게 맥주는 어쨌든 명확하게 '주'다. 몸속에 들어가면 들어가기 전이랑 아주 약간이나마 뭔가를 달리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기특한 알콜 성분의 그 무엇이란 얘기다. 그런데 그런 맥주를 마시면서 책을 본다고? 알콜을 들이켜면서 문장을 씹는다고? 그럼 문장이 안주가 되는 건가? 아니면 맥주의 성분이 문장의 이해를 고양시킬 수 있는 건가? 그런 상황에서는 맥주를 읽는 거냐, 아님 책을 마시는 거냐? 


일단 궁금해졌다. 실행에 옮겨보자. 이영돈마냥 제가 먹어보겠습니다, 읽으면서. 혹은 읽어보겠습니다, 마시면서.

속으로만 중얼거리고는 나도 실시해보았다, 그 책맥이라는 것을.


실시 결과는? 이거 어렵다. 예상보다도 더 어렵다는 것을 몸소 깨달았다. 이거 대체 어떻게들 하시나요? 묻고 싶어졌다.


일단, 맥주는 캔으로 마시든 병으로 마시든 잔으로 마시든 간에 암튼 차가운 용기로 마시지 않나. 최근 내가 금요일 퇴근후에 방구석에서 주로 까는 아이템으로 말하자면, 기네스는 그렇게까지 차갑게 마시진 않으니 예외가 될 수 있겠지만 어쨌든 하이네켄이나 오비, 맥스, 하이트, 코젤 등등은 백 번이면 백 번 모두 충분히 차갑다고 느낄 때 마신다. 그런데 그 차가운 잔 혹은 병 혹은 캔을 들었다 놨다 하다 보면 손가락이 젖게 마련이다. 여기서부터 난관에 봉착한다. 젖은 손으로 책장을 넘겨야 하는 것이다. 이게 뭐 침 묻힌 손가락으로 책장을 척척 잘도 넘기는 분들에게는 별로 난관이랄 게 아닐 수 있겠지만, 나로서는 상당히 힘들었다. 책장을 넘기기 전에 나도 모르게 옷자락에 손을 닦고 있었다. 이게 우선 은근히 신경쓰였다.


또 다른 어려움도 있다. 책에서 좀 재미있는 대목이 나오면 맥주를 잠시나마 잊는 불상사도 생긴다. 이 경우 곧 김빠지고 미지근한 하이네켄을 맛보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유쾌하지 않은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반대로 더럽게 지루한 대목만 줄줄 읽고 있다 보면 겨를이 날 때마다 맥주만 흘깃거리고 있는 나를 목격하게 된다. 지적인 활동보다 잠을 부르는 무엇을 더 밝히는 내가 바로 거기에 버티고 있다. 이걸 목격하는 일 또한 별로 유쾌하지 않긴 마찬가지다. 결론적으로 책이 재미있건 재미없건 간에 책맥이란 건 결국 아쉬워하는 나, 없어 보이는 나 같은 거나 마주하게 만드는 짓궂은 무엇이었던 것.


책맥은 도대체 어떻게 즐기는 것입니까?라며 제대로 우아하게 그것을 즐기는 누군가를 붙잡고 한번 물어보고 싶어지기도 했지만, 설사 그 요령을 전수받는다 해도 이미 겪은 난관에 대한 기억이 또다시 난관으로 작용할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


역시나 나는 트렌디하고 있어 보이는 인간이 되기는 상당히 어렵구나 하는 것을 이 기회에 새삼 다시 한번 절감하고 만다. 맥주엔 그저 노가리나 음악이지. 책맥씩이나? 욕심이 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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