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쐬고 돌아온 지도 이제 거의 두 달 다 돼간다. 시간이 잘 간다는 식상하고 식상한 말은 굳이 나까지 하고 싶진 않지만, 이런 말이 지겹도록 써먹힌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만큼 빼도 박도 못한 진실이란 얘기.
내 나라라는 곳에 돌아와서 내 겨레라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별것도 안 하는데 날짜는 잘도 갔다. 그새 눈도 보고 꽃도 보고 미세먼지도 맘껏 흡입했다. 다들 한동안 안 보고 살던 거라서 오랜만에 누리니 반가웠다고 하면 거짓말이고 아무튼 이 모든 게 그래 내 것이었었지, 하는 생각을 실컷 하긴 했다. 따라서 적응도 예상보다 고속으로 할 수 있었다. 적응 잘하는 거야 당연했다. 나는 토종이니까. 미치도록 토종이니까.
물론 돌아와서 한 1~2주는 힘들었다. 각오했던 것보다 더. 달랑 육 개월쯤 나가 있었던 주제에도 횡단보도에서 길 건너기 전에 습관적으로 신호등 버튼을 찾기도 했고, 무단횡단을 시도하려고 이리저리 둘러보는 버릇도 한동안은 계속 갖고 있었다. 또 길을 건너고 있으면 달려오던 차가 무조건 멈춰서주길 바라는 오만방자한 태도도 냉큼 버리진 못했었다. 공공장소에서 뒤에 오는 사람 위해서 문을 잡고 기다려주고 난 다음 뒷사람으로부터 그 어떤 미소도 보지 못한 채 머쓱하게 문을 닫고 다시 가던 길 가면서는 몇 번쯤 속으로 중얼거렸던 것 같다. 아 나 최저시급 육천삼십 원인 조국에 돌아와서 웬 양년 코스프레냐.
어찌 되었든 순대국에 소주를 만 원에 누릴 수 있다는 건 분명 기쁜 일이다. 서빙해주는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같은 건 생각하지 말고 그냥 맛있게 먹고 나오면 더 이상 좋을 수가 없게 좋다. 포장마차에서 꼬막을 먹을 수 있는 것도 좋다. 이렇게 좋은 델 왜 오기 싫어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다. 주로 이런 것에서 기쁨을 누리다 보니 <런던 해즈 폴른> 같은 영화를 봐도 우려했던 것 만큼 그렇게 가슴이 떨리지는 않더라. 우와 병이 다 나았구나. 나도 할 수 있네.
유튜브만 자주 안 들어가면 병이 더 깨끗하게 나을 것 같다. 예컨대 데이비드 보위 같은 건 최대한 안 찾아보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