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마돈나보다는 신디 로퍼를 좋아한 취향으로 미루어볼 때 마이클 잭슨보다 프린스에 더 마음을 줬어야 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지만, 이상하게 그건 또 아니었다. 프린스는 왠지 너무 미국적인 천재 느낌이었달까. 약간은 더 거리가 느껴졌다. 그래도 When Doves Cry만큼은 질리도록 재생시키면서 '아 잘 만들었다, 참 잘 만들었다' 하고 감탄하던 때가 있었더랬다. 사람을 들썩거리게 하는 이 놀라운 재주가 어째서 우리나라에서는 별로 안 먹혔을까 궁금해하면서.


지금 미국엔 보라색 풍선 같은 것으로 애도를 나타내는 팬이 많이 있는 모양인데, 그래도 나는 역시 Purple Rain보단 When Doves Cry 쪽이다. 


런던 공연 발표 났을 때 돈이 진짜 간당간당하던 터라 갈까 말까 고민 꽤 했었는데, 얼마 안 가 파리 테러 나고 친히 투어를 미뤄주신 덕에 제가 고민을 덜 수 있었습니다, 고마웠어요, 부디 편히 쉬세요 라고 전할 수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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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쐬고 돌아온 지도 이제 거의 두 달 다 돼간다. 시간이 잘 간다는 식상하고 식상한 말은 굳이 나까지 하고 싶진 않지만, 이런 말이 지겹도록 써먹힌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만큼 빼도 박도 못한 진실이란 얘기. 


내 나라라는 곳에 돌아와서 내 겨레라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별것도 안 하는데 날짜는 잘도 갔다. 그새 눈도 보고 꽃도 보고 미세먼지도 맘껏 흡입했다. 다들 한동안 안 보고 살던 거라서 오랜만에 누리니 반가웠다고 하면 거짓말이고 아무튼 이 모든 게 그래 내 것이었었지, 하는 생각을 실컷 하긴 했다. 따라서 적응도 예상보다 고속으로 할 수 있었다. 적응 잘하는 거야 당연했다. 나는 토종이니까. 미치도록 토종이니까.


물론 돌아와서 한 1~2주는 힘들었다. 각오했던 것보다 더. 달랑 육 개월쯤 나가 있었던 주제에도 횡단보도에서 길 건너기 전에 습관적으로 신호등 버튼을 찾기도 했고, 무단횡단을 시도하려고 이리저리 둘러보는 버릇도 한동안은 계속 갖고 있었다. 또 길을 건너고 있으면 달려오던 차가 무조건 멈춰서주길 바라는 오만방자한 태도도 냉큼 버리진 못했었다. 공공장소에서 뒤에 오는 사람 위해서 문을 잡고 기다려주고 난 다음 뒷사람으로부터 그 어떤 미소도 보지 못한 채 머쓱하게 문을 닫고 다시 가던 길 가면서는 몇 번쯤 속으로 중얼거렸던 것 같다. 아 나 최저시급 육천삼십 원인 조국에 돌아와서 웬 양년 코스프레냐.


어찌 되었든 순대국에 소주를 만 원에 누릴 수 있다는 건 분명 기쁜 일이다. 서빙해주는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같은 건 생각하지 말고 그냥 맛있게 먹고 나오면 더 이상 좋을 수가 없게 좋다. 포장마차에서 꼬막을 먹을 수 있는 것도 좋다. 이렇게 좋은 델 왜 오기 싫어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다. 주로 이런 것에서 기쁨을 누리다 보니 <런던 해즈 폴른> 같은 영화를 봐도 우려했던 것 만큼 그렇게 가슴이 떨리지는 않더라. 우와 병이 다 나았구나. 나도 할 수 있네. 


유튜브만 자주 안 들어가면 병이 더 깨끗하게 나을 것 같다. 예컨대 데이비드 보위 같은 건 최대한 안 찾아보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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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생각이 안 드는 날들을 보냈다. 잘 살고 있었나 보다.

일하는 데 필요해서, 누군가에게 잘보이고 싶어서 등등 몇몇 이유로 어떤 책은 봐야만 했었다. 그러나 순전히 이거 재밌겠다 싶어서 읽은 글은 몇 줄 되지 않았다. 진짜 잘 살고 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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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도 다녔다. 테러다 뭐다 해서 나라 밖은 뒤숭숭할 것이라 짐작해 고맙게도 안부를 물어봐주는 친구들에게는 철없어 보일까봐 정신없이 놀러다닌다는 답변은 별로 안 해줬었다. 그러나 실은 참 잘만 다녔던 것이다. 지난 며칠 동안은 한국에서 여행 온 친구랑 신나게 놀았다. 철저하게 전형적인 관광객이 되어 이곳저곳을 배회했다. 시장이라고 옮겨 말하면 어딘가 느낌이 살지 않는 '마켓'을 쏘다니고, 다른 사람들에겐 보여줄 일 없는 바보스런 셀카도 함께 두둑히 찍어 나누었으며, 강풍이 몰아치는 밤거리를 걸어다니면서도 하루종일 함께 본 거리 풍경을 돌이키며 시원스레 웃어제꼈다.

 

자잘한 쇼핑과 군것질로 점철되는 관광도 나름의 재미가 있었다만 오랜만에 한국말로 질펀한 농을 주고받으니 그게 또 그렇게 즐거울 수 없었다. 답 안 나오는 조국을 습관적으로 흉보며 입국카드에 국적을 적을 때 혹은 프롬 코리아라고 출신을 밝혀야 하는 대화의 순간마다 단 한 번도 가뿐한 느낌을 가져본 적이 없는 인간도 예외는 아니다. 모국어란 강력한 것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토종이라는 사실을 절감하고 절감한다. 십이 세 전에 외국어로 둘러싸인 환경에 노출될 기회를 갖지 못한 인간인지라 저속한 단어를 간간이 섞어 쓰며 시시덕거릴 수 있는 기쁨은 한국어로밖에는 누릴 수 없는 것이다. 물론 현재 잠자리를 제공하는 혈육이 한국말 상대이긴 하나 이 상대와는 대화할 수 있는 시간 자체가 거의 없다시피 하므로 친구가 떠난 후의 며칠이 생각보다 텅 빈 느낌을 가져다준다. 공허함은 공허함으로 달래야. 일단 남의 말로 된 좋은 것을 듣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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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란 놈과 나는 안부를 별로 묻지 않는 사이다. 이러다 언젠가부터는 안 보고 살아도 별 탈 없는 거 아닐까 싶을 정도로 서로의 안위에 대한 소식을 뜸하게 주고받는다. 이 놈이 장가를 가고 난 후로는 더 심하다. 살가운 대화 자체가 거의 없다. 물론 문자나 카톡으로 말을 거는 빈도는 꽤 된다. 그러나 그 대화에 안부를 묻는 내용은 거의 없다. 교환하는 문장은 거개가 말로 표현되어봤자 별 의미 없고 글로 적히지 않는다 해도 아무 탈 없을 유의 것들이다. 예컨대 이런 말들. 야 요새 개콘 본 적 있냐 웃긴 코너 하나 있더라, (샘 스미스와 샘 해밍턴을 헷갈린 누군가의 댓글을 캡처해서 보여주며) 짱 웃기지 않냐. (턱을 자꾸 내미는 조카의 버릇을 화제로) 양택조 닮지 않게 주의 줘야겠다, (기저귀 바람으로 계산기 들고 있는 조카의 사진을 화제로) 사진의 제목은 일광욕 중인 경리, (우디 알렌 영화 장면을 화제로) 샤워씬 나올 때마다 뒈질 거 같다 등등. 대체 이런 말들의 행간 어디에서 안부를 묻는 정다움이 발견되겠는가.

 

여행 중에도 예외는 없다. 누이에게 밥은 먹고 다니냐 같은 질문은 한번도 없다. 오늘도 기껏해야 "포기, 실패, 그런 건 개나 조버려.. 그라운드는 너에 무덤이 될 것이다..'라고 쓰인, 건너건너 아는 누군가의 카톡 프로필을 캡처한 사진을 뜬금없이 보내며 "안웃겨?ㅋ"라고 묻는 게 다다. 이것이 안부를 묻는 나름의 방식일 수도 있다. 뭐 그런 거 같기도 하다. 고마워해야 하는 건가 잠시 생각해본다. 생각해보니 뭐 별로 고맙진 않다. 둘다 철 들려면 아직 한참 멀었구나 싶긴 하다. ㅋㅋㅋ만 날려대지 말고 담에는 엄마 아버지 얘기도 좀 길게 해볼까. 뭐 잘못 먹었냐고 놈이 또 퉁을 줄 수도 있겠다. 그래도 시도는 해봐야겠다. 서울도 날이 많이 선선해졌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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