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도 다녔다. 테러다 뭐다 해서 나라 밖은 뒤숭숭할 것이라 짐작해 고맙게도 안부를 물어봐주는 친구들에게는 철없어 보일까봐 정신없이 놀러다닌다는 답변은 별로 안 해줬었다. 그러나 실은 참 잘만 다녔던 것이다. 지난 며칠 동안은 한국에서 여행 온 친구랑 신나게 놀았다. 철저하게 전형적인 관광객이 되어 이곳저곳을 배회했다. 시장이라고 옮겨 말하면 어딘가 느낌이 살지 않는 '마켓'을 쏘다니고, 다른 사람들에겐 보여줄 일 없는 바보스런 셀카도 함께 두둑히 찍어 나누었으며, 강풍이 몰아치는 밤거리를 걸어다니면서도 하루종일 함께 본 거리 풍경을 돌이키며 시원스레 웃어제꼈다.

 

자잘한 쇼핑과 군것질로 점철되는 관광도 나름의 재미가 있었다만 오랜만에 한국말로 질펀한 농을 주고받으니 그게 또 그렇게 즐거울 수 없었다. 답 안 나오는 조국을 습관적으로 흉보며 입국카드에 국적을 적을 때 혹은 프롬 코리아라고 출신을 밝혀야 하는 대화의 순간마다 단 한 번도 가뿐한 느낌을 가져본 적이 없는 인간도 예외는 아니다. 모국어란 강력한 것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토종이라는 사실을 절감하고 절감한다. 십이 세 전에 외국어로 둘러싸인 환경에 노출될 기회를 갖지 못한 인간인지라 저속한 단어를 간간이 섞어 쓰며 시시덕거릴 수 있는 기쁨은 한국어로밖에는 누릴 수 없는 것이다. 물론 현재 잠자리를 제공하는 혈육이 한국말 상대이긴 하나 이 상대와는 대화할 수 있는 시간 자체가 거의 없다시피 하므로 친구가 떠난 후의 며칠이 생각보다 텅 빈 느낌을 가져다준다. 공허함은 공허함으로 달래야. 일단 남의 말로 된 좋은 것을 듣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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