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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 시대의 작가로 산다는 것
스테판 말테르 지음, 용경식 옮김 / 제3의공간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조지 오웰, 시대의 작가로 산다는 것>, 이 책을 읽기 전에 사실 조지 오웰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잘 알지 못 했다. 단지 그가 <동물농장>과 <1984>의 저자라는 사실, 그 뿐이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조지 오웰의 생애를 관통하는 여정을 떠났고 나는 <동물농장>과 <1984>를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어졌다.

누군가의 전기를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다. 수업 시간에 저명한 학자에 대해서 배울 때, 굳이 유년기를 살펴 보는 이유를 알지 못 했다.

'그 사람의 삶을 내가 왜 알아야 하지?
내가 궁금한 것은 그 사람이 남긴 흔적일 뿐인데.'

이 책을 통해서 비로소 그 이유를 알게 된 것 같다.
한 사람의 역사를 아는 것은 그 사람이 향한 발자국를 짐작하게 한다.
그리고 왜 그 방향으로 향했는지, 왜 그런 흔적을 남겼는지 이해할 수 있다.


조지 오웰이 되기 전 에릭 블레어의 시절부터, 그의 일생을 따라 걸으며 명작의 탄생 과정을 볼 수 있었다. 절대 쉽게 쓰여진 책이 아니었다. 조지 오웰이 한 권의 책을 위해 들인 노력의 깊이가 너무 아득해서, 심지어 그의 건강까지 앗아갈 정도였다는 것. 이 사실을 알고 그의 책을 읽는다면 그 때 느껴지는 감정은 전과는 분명 다를 것이라 장담한다. 조지 오웰의 작품들은 그의 에너지가 응축된, 그의 분신과도 같다.   

조지 오웰은 한 편의 글을 위해 직접 삶 속으로 들어갔다. 현장에서 직접 사람들과 함께 부대끼며 살아있는, 진짜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한 조지 오웰. 집필을 위해 편안함이 아닌 힘들고 고된 삶을 택한 그를 보며 '글쓰기에 미쳤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서 글쓰기를 빼면 남는 것이 있을까?


조지 오웰은 중립적인 글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글에는 정치적인 색이 들어갈 수 밖에 없으며 사회의 어두움을 고발하는 것이 작가의 의무라고 말했다. 그는 전체주의가 팽배한 시대에 살면서 파시즘에 환멸을 느낀 그는 진정한 '사회주의'의 도래를 꿈꾸었다. 이와 관련된 다양한 활동들을 했으며 이 신념은 <동물농장>과 <1984>가 탄생하게 된 계기가 되어 주었다.

평생을 글쓰기에 미쳤던 조지 오웰은 <1984>의 집필을 마무리하며,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등졌다. 어렸을 때부터 건강이 안 좋았던 그는 자신의 건강보다 책을 완성시키는 것에 더욱 열을 올렸다. 다른 일을 하다가 문득 자신이 글을 쓰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면, 조지 오웰은 하던 일을 중단하고 글쓰기에 몰두할 용기를 가지고 있었다.

나에게는 과연 그런 용기가 있을까?
좋아하는 일을 위해 내 생을 바칠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너무나도 빨리 변화하는 이 시대에서 내 결정이 초래할 결과는 그 누구도 알지 못 하니까. 하지만 조지 오웰을 보며 노력은 배반하지 않는다는, 그 상투적인 문장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한 가지를 꾸준히 파면 뭐가 됐든 결과는 나오지 않을까? 그것만은 조지 오웰의 시대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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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의 감각 - 파리 서울 두 도시 이야기
이나라.티에리 베제쿠르 지음, 류은소라 옮김 / 제3의공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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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 산다.
도시에서 살아간다.
2017년 현재, 도시에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

이들 역시 도시민이다.
하지만 도시를 바라보는 예리한 시각을 가지고
그들 역시 도시를 살아간다.

 

프랑스인 남편과 한국인 부인
그들은 각자의 시각으로 각자의 도시를, 그리고 서로의 도시를 바라본다.

도시를 구성하는 사물에 집중한다.
다리, 쓰레기, 바리케이트
그것들을 중점으로 뻗어나가는 생각의 스팩트럼은 상상 이상으로 광활하다.

프랑스인 남편은 한국의 공동묘지를 보며 프랑스와 무척 다른 양상을 띄고 있다고 말한다.

'파리에서 공동묘지는 바람 쐬러 가는 서울의 뒷산이나 공원처럼 휴일 산책자들의 산책로가 된다.'

이러한 시각의 차이가 흥미로웠다.
한국에서의 공동묘지는 귀신이나 도깨비가 등장하는 무시무시한 장소로 그려지는 것에 반해
프랑스의 공동묘지는 친근하고 따뜻한 이미지를 품고 있다는 것이.

아마도 망자에 대한 인식의 차이 때문일 것이라 생각한다.
한국에서 망자는 함부로 대할 수 없고 모셔야 하는 존재로 인식됨에 반해
프랑스에서 망자는 함께 추억을 공유한 실체 없는 동료라고 인식되는 것 같다.

그래서 한국에서의 공동묘지는 함부로 접근할 수 없는 산 속에 위치하며
프랑스에서의 공동묘지는 누구나 오가는 도심 속에 위치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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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한 단어에 꽂히는 순간이 온다. 이 단어는 언제부터 쓰게 된 것일까? 왜 이 단어를 사용하게 된 것일까?와 같은 물음표가 생겨나는 순간에는 잠시 멈춰서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늘 그 해답을 찾지는 못 했다. 가끔은 지나친 호기심에 검색을 해보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는 그냥 궁금한 상태로 남겨둔다. 핑계는 많지만, 귀찮으니까. 일일이 찾아보는 것은 꽤나 귀찮은 일이다. 그래서 『단어 따라 어원 따라 세계 문화 산책』, 이 책을 선택했다. 나의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을까 하는 기대와 함께.

책은 단락 단락마다 큰 단어 하나를 중심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것처럼 주로 그 단어가 발생한 지역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이야기이다. 단어의 기원에 따라 중세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경우도 있다. 꽤나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담겨 있었다. 그 중 기억에 남는 하나를 소개하려 한다.

 

 

 

 

우리는 멕시코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타코와 브리또, 나쵸 등을 익숙하게 알고 있다. 하지만 이 밖에도 '몰레'라는 음식이 있다고 한다. 이 음식의 특이점은 초콜릿을 사용했다는 것인데, 우리가 흔히 초콜릿을 즐기는 디저트의 형태가 아닌 주식의 형태라는 점이 독특했다. 책은 이 음식이 '몰레'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연유를 설명하는데, 몰레는 수녀원의 한 수녀가 대주교의 방문을 앞두고 특별한 음식을 준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음식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맛은 성공적이었고, 이 음식의 이름을 물었을 때, 스페인어로 '섞어 만든 것'이라는 의미의 '몰레'라고 대답하여 그것이 이름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Comida'(코미다)라는 섹션에 첨가된 이야기로, 멕시코의 음식 이야기 중 하나로 소개되고 있다.

책의 목차는 알파벳 순서로 되어 있다. 그러니 당연히 책에서 소개하는 단어들은 대게 한글이 아닌 외국, 그것도 주로 서영 / 남미 등지에 기초하고 있다. 이 점이 사실 좀 아쉬운 부분이었다. 한국, 동양의 단어와 문화, 그리고 역사에도 흥미로운 부분들이 많은데, 그 부분들도 다뤄주면 어땠을까? 세계 문화 산책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좀 더 다양한 세계의 이야기를 전해 주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단어의 뒷 배경을 읽으며 그 탄생의 시작을 알게 되고, 나아가 그 단어를 사용하는 문화권까지 순차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책이었다. 대체적으로 무척 흥미롭고 재미있는 책이라, 누구든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책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처럼 단어에 호기심이 많은 사람들 뿐만 아니라 문화, 역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도 편하게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 않더라도 머리 아픈 어려운 책이 싫은 분들에게 상식을 쌓기 위한 책으로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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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링허우, 사회주의 국가에서 태어나 자본주의를 살아가다
양칭샹 지음, 김태성 옮김 / 미래의창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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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을 읽은 후 가장 먼저 든 느낌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무척 중국스러운 책이다.
책 제목에서부터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책의 저자는 중국인이다. 그러니 당연히 중국스러운 책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말을 굳이 언급한 이유는 저자의 사고가 중국이라는 나라의 문화적 영향을 무척 많이 받았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저자가 중국 사회를 관찰하고 기술한 이 책은 중국의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이 쓴 글이라는 느낌을 책을 읽는 내내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은 중국인들 가운데 바링허우라 불리는 80년대 생들에 대한 고찰을 담고 있다. 중국은 워낙 인구가 많아서 그런지 몰라도 '약 10년 전부터 중국에서는 출생 연대에 후(後)라는 글자를 붙여 10년 단위로 세대를 구분했다'고 한다.(책에서 인용) 바링허우는 80의 중국식 발음인 바링에 '후'자를 붙인, 80년대 생을 일컫는 단어이다.
중국의 80년대 생들은 사회주의적 국가관에서 성장기를 보내고 그 속에서 꿈을 꾸었다. 특히 농촌 출신의 아이들은 교육을 통해 출세할 수 있다는, 일명 개천에서 용나는 꿈을 꾸었다. 교육을 통해 최소한의 조건을 만족시킨다면, 그 후의 인생은 평탄할 것이라 꿈꿨던 것이다. 하지만 그 시기, 사회는 변화하고 있었다. 시장 경제에 문을 열어준 것이다. 이제 중국에도 자본주의적 경제관이 자리하게 되며, 경제적 수준에 따른 계급이 발생하게 되었다.
자본이 없는 사람이 성공하기에 무척 어려운 환경이 되어버린 것이다.
저자는 바링허우들이 딱 그 시기에 걸쳐 있는 세대라고 말한다. 그들은 혼란한 사회 속에서 아둥바둥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묻는다. 바링허우, 어찌할 것인가?
하지만 저자는 바링허우들을 그리 따스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역사 허무주의라는 개념으로 그들을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 나는 중국 문화에 기초한 저자의 사고관을 볼 수 있었다.
나는 묻고 싶었다. 그게 왜 잘 못된 것인지에 대해서.
저자는 사회주의적 경제 체제가 무너지고 자본주의 경제관이 우위를 독점하여 자본이 계급을 결정하게 된 이 사회를 역사적인 관점에서 숙고하지 않고 YOLO의 삶을 살아가는 그들을 비판한다. 하지만 사회가 변화하면 그에 따라 문화, 생활 방식, 심지어 역사까지 변화할 수 있지 않을까? 다시 말해서
바링허우의 삶의 모습은 변화한 사회에 따른 당연한 결과이지 않을까?
물론 자본주의가 들어옴에 따른 부작용은 존재한다. 그런 부작용은 모든 자본주의 국가들이 안고 있는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재의 바링허우들이 전에 비해 가벼운 문화를 사유하는 것까지 비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건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일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이 규제를 완화하며 다양한 이야깃거리들이 생겨났고, 어쩌면 그들은 이제까지 알지 못 했던 또 다른 문화에 눈을 뜬 것일 수도 있다. 단지, 그 뿐 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는 이것을 역사의 위에 올려놓고 삿대질을 하고 있다. 왜 여기에서 굳이 역사를 언급해야 하는 것일까? 저자가 '새로운 이데올로기로 인해 붕괴되어가는 상황에 과거로의 향수에 젖어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과격하게 말하면, 사대주의인 것은 아닐까?
자본주의의 도래로 자본이 없는 사람들이 좋지 않은 여건에서 일을 하고 위로 올라갈 구멍은 보이지 않은 상황은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문제를 굳이 개개인의 문화적 취향까지 논하며 비판할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이 또한 자본주의의 결과라 해도 그들이 만들어낸 하나의 새로운 문화로 받아들일 수는 없을까? 그들은 지금 역사를 쓰고 있는 것이다. 그 모습이 과거의 그것과 조금 다를 뿐.
이 책을 읽으며 현재 중국 사회와 우리나라의 사회가 무척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정말 놀랍도록 비슷했다. 하지만 그것을 해석하는 눈은 분명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적어도 이 책의 저자만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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