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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번째 천산갑
천쓰홍 지음, 김태성 옮김 / 민음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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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후기를 썼던 소설 <귀신들의 땅>의 저자, 천쓰홍의 신작이 나왔다. 이번에도 제목이 심상치 않다.

천산갑이 뭐지? 생소한 이름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찾아보니 아르마딜로와 비슷하게 생긴 동물이었다. 동물 이름이 참 거창하다고 생각했다. 도대체 저자는 왜 동물의 이름으로 제목을 지었을까? 호기심은 더해갔다.

주인공은 그와 그녀

주인공 '그'는 말이 없는 인물이다. 속으로는 많은 생각들이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데, 도통 말을 하지 않는다. 말이 없는 성격적 특성상 아웃사이더의 삶을 살아갈 것 같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이다. 그의 주변엔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 한 명의 주인공 '그녀' 역시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 중 한 명이다. 심지어 그의 곁에서 잠을 자야 비로소 진정한 잠에 들 수 있다. 침대가 작고 불편해도 상관없다. 그가 곁에 있으면, 비가 오는 놀이터에서도 잠에 들 수 있을 것이다.

그와 그녀는 모두 타이베이 출신이다. 하지만 소설이 흘러가는 배경은 프랑스 파리이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아는 아름답고 낭만적인 파리가 아닌 춥고 을씨년스러운 파리가 배경이다. 그리고 자꾸만 비가 내린다.

천쓰홍만의 독특한 스토리텔링

천쓰홍의 스토리텔링은 독특한 부분이 있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 처음에는 그저 인물과 상황을 묘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다 문득, 툭-하고 중요한 정보가 흘러나온다. 인물의 역사, 배경, 사연 등이 한 번에 등장하는 것이 아닌 한 겹 한 겹 무심하게 밝혀진다. 지난번 책에서도 느낀 부분이어서, 어쩌면 천쓰홍 작법의 스타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서평을 쓰다 보면, 책의 서두부터 어떤 말을 하려는지 알 수 있는 책들이 있다. 솔직히 그런 책들에 고마운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천쓰홍의 책은 조금만 읽어선, 작가가 풀어내려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인내가 필요한 소설이라고 말하고 싶다. 특히 이번 책 <67번째 천산갑>에선 묘사에 할애한 문장의 비중이 높아 독서의 속도가 더욱 천천히 흘러갔다. 하지만 지루하진 않았다. 저자의 번뜩이는 비유가 참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여성과 게이

책의 주인공 그는 게이, 그녀는 헤테로이다. 두 사람의 인연은 어렸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린 시절, 함께 매트리스 광고를 찍은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는 산골 소년이었으나, 그녀는 도시 소녀였다. 소설은 광고 촬영이 아니었다면 결코 만날 일이 없었을 두 사람이 우연한 계기로 중년이 된 지금 다시 만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를 스타로 만들고 싶었다. 열심히 오디션장에 참석하던 중 매트리스 광고를 찍게 되었고, 그곳에서 그와 함께 매트리스에서 잠을 자는 모습이 광고로 만들어졌다.

낯선 남자아이와 침대 위에서 함께 잠을 자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그녀를 놀리기 시작했다. '어린 녀석이 벌써부터 남자를 밝힌다'라고 손가락질했다.

그런 사람들 속에서 소녀의 분노는 금붕어에게로 옮겨갔다. 자신을 아프게 한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금붕어를 차근차근 죽여나갔다.

그녀는 그를 만나 물었다. 너도 금붕어를 죽이고 있느냐고.

하지만 그는 굳이 금붕어를 죽일 필요가 없었다. 자신에게 손가락질하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성별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일을 겪고도 다른 대우를 받는다. 심지어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더 매력적인 인물이래도, 사랑스러운 인물이래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는 상황이 펼쳐진다. 이처럼 소설 <67번째 천산갑>에는 여성이 경험하는 부조리가 현실적으로 담겨 있다. 그리고 이는 소설의 배경인 대만과 한국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별은 성별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게이인 그 역시 사회의 주류에 속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가 거주하는 아파트가 파리의 뒷골목에 위치한다는 것부터, 그는 아름다운 파리의 모습은 볼 수 없는 배척된 존재라는 의미를 담는다.

두 사람의 물리적 한계는 결코 그들을 이 사회의 주류로 세우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그녀가 오직 그의 곁에서만 깊은 잠을 잘 수 있다는 현실과 이어진다. 그녀에게 그는 잘 보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 없는 사람이다. 그녀 주변에는 몇 없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다. 너무도 특별한 우정, 더 이상 놓치고 싶지 않은 우정이다.

과연 이야기의 끝은 어떻게 될까? 이는 당신의 몫으로 남겨두겠다. 이전 천쓰홍의 작품을 읽어 본 사람, 그리고 그의 작법을 경험해 본 사람들은 소설의 주제와 소재에 집중하여 독서를 하면 좋을 것 같다. 만일 이번이 첫 입문이라면, 그의 집필 스타일을 천천히 음미하며 소설을 읽어 내려가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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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 종소리 - 김하나의 자유롭고 쾌락적인 고전 읽기
김하나 지음 / 민음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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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는 책의 장르를 꼽으라면 1순위는 문학이다. 그중에서도 소설을 좋아하고 그중에서도 고전을 선호한다. 하지만 이런 마음과 달리, 지금껏 읽은 고전의 양이 많진 않다. 핑계라면 핑계일 테지만, 읽고 싶은 책 이전에 읽어야 하는 책이 더 많았기 때문이라 변명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고전이 좋다.


오늘 소개할 책 <금빛 종소리>의 저자 김하나 작가 역시, 고전을 무척이나 사랑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하지만 그녀의 수준은 나와는 천지 차이이다. 고전 덕후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녀의 방대함은 서문에서부터 드러난다.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 고전을 읽으면 좋은 이유를 그녀보다 장황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책을 읽기 전 작가의 서문을 꼭 읽는 편인데, <금빛 종소리>의 서문을 읽고선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이렇게 구체적인 이유를 대며 할 수 있다는 것에 대단함을 느꼈다. 진정 내가 가지고 싶은 능력 중 하나이다.


하지만 서문은 새 발의 피다. 그러므로 <금빛 종소리>는 읽기 쉬운 책은 아니다. 작고 단단한 책 속엔 옹골차게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책에서 처음 소개하는 책은 카를로스 푸엔테스의 <아우라>이다. 아우라는 남미 소설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남미 소설을 어려워하는 편이라, 직접 처음으로 읽기엔 부담이 있을 수 있는 책이었다. 따라서 <금빛 종소리>를 통해 접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책에서 소개하는 <아우라>는 환상 소설에 속하는 것처럼 보인다. 다만 분량이 짧은 편이라, 입문용으로 좋다고 말한다. 그간의 경험을 토대로 책을 소개하는 책의 구성을 상상해 보았을 때, 대부분은 자신의 감상을 소개하는 편이었어서 이번 책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보다는 소설이 기대고 있는 배경지식에 대한 소개의 비중이 더 많았다. 예를 들어, <아우리>는 독서를 할 때 느껴지는 감각을 중요하다 말하는데 그 중요성을 설명하기 위해 다른 소설을 차용하는 식이다.


예시로 든 작품 중 <사자와 마녀와 옷장>에서 좀약을 밟는 느낌이 눈을 밟는 느낌으로 확장되어 가는 부분을 무척 훌륭하다 칭찬하는 부분이 있었다. 나는 이 부분에서 다른 지점의 놀라움을 느꼈는데, 저 표현을 보고 감탄을 했다는 저자에게 감탄을 했다. 감각의 확장을 글만으로 저렇게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기 때문이다. 진정 글을 쓰는 사람은 글을 읽는 법부터 다르나 보다.


어쩌면 책 <금빛 종소리>가 실제 고전보다 더 읽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저자의 넘치는 지식이 흘러넘치는 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만큼, 일타이피를 노리기 좋은 책이기도 하다. 여러 책에 뻗어 있는 방대한 지식을 이 한 권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문학 책과는 다른 기대를 하고 읽으면 좋을 책, <금빛 종소리>이다.


문학 책과는 다른 기대를 하고 읽으면 좋을 책, <금빛 종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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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에 만나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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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문학 수업을 들으며, 처음으로 남미 소설을 읽게 되었다. 보르헤스의 '불한당들의 세계사'라는 책이었는데, 뭔가 흥미로워 보이는 제목과 달리 소설의 내용이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이해가 안 되니, 오히려 낯설게 느껴졌다. 그래서 포기를 했었다. 심지어 내 인생엔 라틴계 문학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마르케스라는 작가가 나를 찾아왔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콜롬비아 출생의 작가로, 19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남미를 대표하는 유명 작가이다. 책 <8월에 만나요>는 마르케스의 유고 소설로, 그가 세상을 떠난 이후 아들들에 의해서 출간되었다. 그는 죽기 전 치매를 앓으며 기억력이 감퇴되었으나, 작품 활동에 꾸준히 정진하였다. 하지만 지난 그의 작품들과 비교했을 때, 자신의 마지막 원고가 완성도 측면에서 아쉬움이 많았던 것 같다. 따라서 죽기 전 자신의 가족들에게 해당 원고를 절대 출간하지 말라는 당부를 했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몇 해 동안은 그의 유언이 잘 지켜졌다. 하지만 세월이 흐른 후, 두 아들은 결심한다. 아버지의 투쟁과도 같았던 마지막 원고를 세상에 내보이기로 결심한 것이다.

책 <8월에 만나요>의 외양은 봄을 알리는 듯한 분홍빛 표지와 연보라색 속지가 어우러져, 굉장히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어딘가 나들이를 갈 때 들고나가면 좋을 것 같은 그런 가벼운 느낌이었다. 거장의 작품이라기엔 귀여운 이 소설은 과연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을까?

소설의 주인공은 중년의 여성이다. 그녀는 유언에 따라 돌아가신 어머니를 섬에 묻었고, 이후 매년 8월, 어머니에게 꽃을 올리러 섬을 방문한다. 섬까지 가는 길은 쉽지 않다. 따라서 1박 2일의 일정을 그녀는 혼자 소화하고 있다.

지금껏 그녀는 일탈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특히 남자관계에 있어서만큼은 문제가 없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진정으로 혼자가 되자, 그녀는 자신의 마음속에 타오르던 불꽃을 발견한다. 어느덧 매년 이름 모를 다른 남자와 하룻밤을 보내는 것이 1년을 살아가는 힘이 되어 버린 아나 세바스티안 바흐.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오직 하룻밤이다. 이름도 필요 없으며 흔적을 남겨서도 안 된다. 누구에게도 들켜선 안 된다.

하지만 천성을 버릴 순 없었던 것일까? 섬에서의 하루가 지나고 집에 돌아간 이후, 혹 남편이 자신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될까 조마조마하는 모습을 보인다. 처음에는 자연스럽게 대처했지만, 관계에 빠져들수록 죄책감도 커져 오히려 남편을 추궁하기에 이른다. 일상이 위태로워질수록 섬에 대한 집착은 심해져 간다.

주교였던 남자와의 밤을 잊지 못하고 그와의 인연을 포기한 스스로를 원망하게 될 때쯤, 그녀는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더 이상 남자를 방으로 들이지 않겠다고 결심한 순간, 그녀는 자신에게 벌어진 이 모든 일의 어렴풋한 비밀을 알게 된다.

책 <8월에 만나요>의 주인공 아나 세바스티안 바흐는 현실과의 연결고리가 사라진 곳에서 진정한 자유를 느낌과 동시에 끊임없이 죄책감을 느끼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 작가는 이런 그녀의 행동을 '운명'이라는 키워드로 설명한다. 어머니가 섬에 묻히고 싶어 했던 이유와 자신이 섬에서 겪은 일들이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암시를 던지는 것이다. 책의 논점이 바뀌는 순간이다.

마르케스는 이 소설을 통해 무엇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일까? 작품 해설에 따르면, 그는 살아생전 자신의 어머니와 깊은 유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어머니를 기리는 마음을 담아 마치 연결고리처럼, 생과 죽음을 잇는 이야기를 남긴 것은 아닐까 추측한다.

책을 다 읽은 이후에도 물음표가 남지만, 결론적으론 재미있게 읽었다. 특히 마르케스의 시적인 표현과 사건을 전환시키는 반전이 무척 흥미로웠다. 기억력이 감퇴되고 건강이 좋지 않다고 한들, 무기는 여전히 그의 두 손에 쥐어져 있었다. 거장은 거장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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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귀신들의 땅
천쓰홍 지음, 김태성 옮김 / 민음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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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의 대표하는 작가, 천쓰홍. 농가의 아홉째 아들로 태어난 그는 게이이다. 오늘날 타이완 문학계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성소수자 작가 중 한 명이기도 하다.

 

 

오늘 소개할 책은 그의 장편 소설인 책 <귀신들의 땅>이다. 그에 대한 정보와 함께 읽으면 더 잘 이해가 되는 소설이기에, 그의 사생활(?)을 일부 공개하며 시작하는 바이다.

 

 

책 <귀신들의 땅>에는 정말 많은 등장인물들이 나온다. 이야기는 아버지와 어머니, 할머니, 그리고 5명의 딸과 2명의 아들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책에서 다뤄지는 비중으로 보았을 때, 메인 주인공은 아버지와 둘째 아들 천톈홍으로 보인다. 아버지는 이미 세상을 떠난 귀신이고 천톈홍은 소설을 쓰는 게이이다.

 

 

처음엔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다소 어렵게 느껴지는 책이었다. 메인은 두 명이지만, 다섯 명의 딸의 시점이 차지하는 비중 또한 상당하기 때문이다. 책은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쓰였는데, 챕터마다 주인공이 달라지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가뜩이나 인물도 많고 이름도 비슷한데, 시점이 자꾸 바뀌니 화자가 누구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다행히 작가의 우수한 필력 덕분에, 책을 읽다 보면 인물들이 정리가 되긴 한다. 따라서 포기하지 않고 읽어 나간다면, 끝내 정리된 하나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시작은 어렵지만, 집중이 잘 되는 책이어서 속도감 있게 읽어나가기엔 어려움이 없었다. 다만 책의 두께가 상당하다 보니, 읽어도 읽어도 끝이 안 난다는 기분이 들긴 하다. 흥미롭고 지루하진 않으니, 약간의 여유를 가지고 읽으면 좋을 책이다.

 

 

책의 배경은 타이완, 대만이다. 과거 대만에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남아선호사상이다. 책에 다섯 명이나 되는 딸이 등장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아들을 낳지 못하면 죄인 취급을 받던 시절, 오로지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집념 하에 무려 5명에 달하는 딸을 낳은 것이다. 책 속에는 딸 중 한 명의 입을 빌려 '애초부터 사랑받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는'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들 속에서도 딸들은 항상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다. 따라서 책 속의 딸들은 저마다의 아픔을 가지고 있는 인물들로 그려진다. 심지어 무더기의 딸을 낳은 엄마, 겉보기엔 무식하고 야만적인 아찬마저 알고 보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주체적인 삶을 살지 못한 피해자였다.

 

 

작가는 그 아픔이 어른이 된 이후의 삶과도 연결시켜 비극을 극대화하고 있다. 일례로 다섯의 딸들 중 표면적으로 가장 성공한 것으로 보이는 셋째 딸마저, 알고 보면 폭력적인 남편의 통제 하에 불행한 삶을 살아내고 있다. 누구 하나 행복한 삶을 쟁취한 이가 없는 것이다.

 

 

동성애를 혐오하는 사회적인 분위기도 등장한다. 작가의 자전적인 경험이 반영이 된 부분인지는 몰라도, 책 속에는 다수의 게이들이 등장한다. 발각이 되는 순간, 경찰에 끌려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앞에서도 사랑을 멈출 수는 없기에 그들은 하나같이 음지에서 사랑을 나눈다. 그로 인해 원치 않은 피해자가 생기기도 했다. 피해자는 톈홍뿐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책의 두께에 사실 겁이 났던 것이 사실이었다. 과연 내가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을까?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까면 깔수록 양파처럼 드러나는 반전에 눈을 멈출 수 없었다.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과연 어떤 이야기가 이어질지 알고 싶어서 늦은 시간까지 독서를 하기 일쑤였다. 말 그대로 양파같았다.

 

 

올 설 연휴는 책 <귀신들의 땅>의 몫이었다. 온전한 나의 시간을 투자한 것에 후회는 없다.

직접 읽어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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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환자, 로젠한 실험 미스터리 -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무너뜨린 정신의학사의 위대한 진실
수재나 캐헐런 지음, 장호연 옮김 / 북하우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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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심리학을 전공했다. 대학에서 마음을 주제로 수학하며 프로이트에서 시작하여 아들러 등에 이르기까지, 정신분석과 심리학을 아우르며 다양한 인물들과 이론을 듣고 배웠더랬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정신질환도 다루었다. 정신질환을 진단하는 도구와 기준 등도 함께였다. 지금은 거의 대부분 잊혔지만, 당시에는 뻘뻘 대며 열심히 외웠던 기억이 있다. 당시엔 나도 멋진 임상 심리학자나 상담사가 되는 것을 꿈꾸었으니까. 내가 속할 세상을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마음에 열심히도 공부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때의 난, 오직 '진단'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 이 진단이 잘못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과 오진으로 불필요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아니, 이건 단지 그 당시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책 <가짜 환자, 로젠한 실험 미스터리>를 읽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보지 못한 사각지대가 있을 수 있을 것이라는 의심조차 하지 못했다.

 

 

 

책의 저자 수재나 캐헐런은 촉망받는 기자였다. 하지만 24이라는 어린 나이에 삶을 뒤흔드는 경험을 하게 된다. 바로 정신질환 오진을 받게 되는 것이다. 실제 그녀가 앓은 병은 '자가면역 뇌염'이었으나, 외적으로 보이는 증상이 '조현병'과 너무 닮아 있었던 탓에 정신병원에 수감될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러나 한 의사의 노력 끝에 자신이 정신질환자가 아님을 밝힐 수 있었고,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의 걱정은 끝나지 않았다. 자신의 경험을 통해, 자신과 같은 오진 피해자가 어딘가에 또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기자 출신으로서, 끈질긴 취재를 시작했다. 그 결과 2023년 현재, 우리는 <가짜 환자, 로젠한 실험 미스터리>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책을 읽으며 소름이 끼쳤다. 정신질환을 판단하는 주체 또한 사람이라는 사실에서, 분명 실수와 착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뉴스를 통해 들려오는 의료사고에서조차 정신질환과 관련된 사건은 보지 못했을뿐더러, 대부분이 생각하는 '정상'의 범주에서 조금만 벗어나는 행동을 하더라도 너무도 쉽게 정신과 감정을 받아보라 말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당연하게 느껴지는 세상이었다.

 

이런 세상에서 정신적인 문제가 있어 보이는 사람을 정신과 진료를 받도록 조치하고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도록 권장하는 것. 사실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해결법이다. 그런데 정신 이상으로 보이는 증상이 신체 질환으로부터 발현된 것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 결과 적절한 치료를 적시에 받지 못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저자 자신이고 그보다 더 유명한 사례가 로젠한의 실험이었다. 그는 정상의 범주에 속하는 사람들이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척 연기를 하여 의도적으로 정신병원에 들어간 후 다시 원래의 모습 즉, 평범하게 일상생활을 영위했을 때, 의사 및 간호사들이 이를 인지할 수 있는가를 확인하는 실험을 하였다.

 

결과는 어떠했을까? 그들은 구분을 하지 못했다. 단지 정신병원에 들어와 있다는 이유만으로 일반적인 행동조차 이상 행동으로 여겨졌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환경의 힘이 이리도 무서운 것이구나를 다시금 깨닫게 되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나라고 다를 것 같지도 않다. 같은 행동이라 해도 가까운 친구의 행동과 정신병원의 환자가 한 행동을 동일선 상에 둘 수 있을 것이냐는 질문에 속 시원히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을 것 같다.

 


 

책 <가짜 환자, 로젠한 실험 미스터리>는 정신의학계의 어두운 면모를 가차 없이 지적하고 드러낸다. 진단뿐만 아니라 정신병원의 환경 또한 다루고 있는, 정신질환자들을 짐승만도 못한 존재로 대우했던 과거의 역사가 현대의 교도소로 이어지고 있음을 지적하는 내용도 담겨 있다.

 

심리학을 지지하고 애정 하는 나이지만, 거부감이 들기보다 흥미로웠다. 그리고 정신의학 및 정신질환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라면, 독서의 과정이 나와 같으리라 예상한다. 알고 보니 몰라서 놓쳐왔던 부분들이 많았다. 어쩌면 지금껏 그저 쉬운 방법을 택한 것일지도 모른다. 좀 더 예민하고 뾰족한 시각이 필요하다. 인간에게는 늘 실수가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해나무 #해독단2기 #북하우스 #가짜환자로젠한실험미스터리

본 서평은 해나무에서 책을 지원 받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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