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남은 시간 - 인간이 지구를 파괴하는 시대, 인류세를 사는 사람들
최평순 지음 / 해나무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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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의 입장에서 보면 나는 진짜 나쁜 놈이다. 청결을 볼모로 희생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물티슈 한 장이면 간편하게 손에 묻은 더러움을 씻어낼 수 있는데... 옷은 한 번 입고 빨아야 하는데... 귀찮을 땐 편의점에서 점심을 때우기도 하고 온라인으로 물건을 사는 것이 익숙한 나에게 환경이라는 잣대는 산처럼 높고 크다.

 

 

하지만 환경 문제가 현재 진행 중이라는 사실만큼은 자명하다. 이것이 내가 발을 동동 구르는 이유이다. 다행히 나에게도 부채의식은 남아있나 보다. 나에게도 부디 인지 부조화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이 생기길, 오늘 소개할 책 <우리에게 남은 시간>을 통해 조금 더 경각심을 가질 수 있길 바라며...

 


 

책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환경 및 생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최평순 PD가 쓴 책이다. 대표작은 EBS 다큐프라임 <인류세>이다. '인류세'란 인류의 활동으로 인해 생겨난 지질시대로 인간에 의한 지구적 변화를 의미하는 용어라고 한다. 이 속에는 인간의 등장으로 지구가 겪게 된 변화를 인정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아직까지는 공식적으로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다수의 학계에서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으며 공식 용어로 인정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도대체 인간의 출몰이 지구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길래 인류세라는 용어까지 출몰한 것일까?

 

 

하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인류세를 통해 기후 위기를 경고하는 한편, 이를 듣도 보도 못한 사람들이 아직 더 많다는 데 있다. 저자는 이런 현실에 심각한 위기감을 느꼈고 책을 집필했다. 책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자신의 경험과 지식에 그들의 이야기를 더해 담담한 문체이지만 그 내용만큼은 너무도 강력한 책 <우리에게 남은 시간>을 완성했다.

 

 

그동안 몇 권의 기후 관련 서적을 읽었던 터라, 대강 이런 식으로 전개되겠지... 하고 예상되는 부분이 있었다. 이는 저자가 다큐멘터리 PD라는 사실을 간과한 내 잘못이었다. 에세이와 비슷하게 하나의 주제를 관통하는 소제목의 글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그 덕에 기후라는 주제에 대한 훨씬 다양하고 풍성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그 덕에 독자의 입장에서도 계속해서 경각심을 가지고 있어 내려갈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역시, 사진의 힘은 대단했다. 책을 읽어 나가게 만든 동력엔 책의 초반에 등장하는 코알라의 사진 한 장이 있었다. 지난 호주의 대형 산불로 목숨을 잃은 코알라의 사진이었다. 불에 그을린 털로 뒤덮여 바닥에 힘없이 누워있는 코알라의 사진. 과학적인 데이터보다, 불에 타는 지구의 사진보다 안타깝게 목숨이 다한 코알라 한 마리가 나에게 더 큰 충격을 주었다.

 

 

잠을 자고 있는 사진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비정상의 일상화'라는 말이 머릿속에 맴돈다. 비정상적인 재난이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시기가 곧 찾아온다는 말이다. 힘든 여름을 겪으며, 벌써 우리나라에서도 발생되고 있는 현상이라는 생각에 두려워졌다. 심지어 우리가 노력을 할지라도, 다소 예견된 미래라고 한다. 우리가 겪을 일이 아니라고, 당장에 일어날 일이 아니라고 무시하고 넘기기에 상황이 너무 심각해져 버렸다.

 

 

책을 읽던 도중, 발밑에 전기난로의 전원을 꺼버렸다. 나의 작은 희생으로 코알라를 살릴 수 있다면! 더 이상은 코알라가 죽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나의 행동 하나가 한 나라를 사라지게 만들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환경과 기후 문제는 전지구가 함께 앓고 있는 병이라는 마음으로 옳은 선택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이번에는 꼭, 달라져 보고 싶기 때문이다.

 

#해나무 #해독단2기 #우리에게남은시간 #최평순 #인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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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우주의 첫 순간 - 빅뱅의 발견부터 암흑물질까지 현대 우주론의 중요한 문제들
댄 후퍼 지음, 배지은 옮김 / 해나무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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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라는 단어를 들으면 가슴이 웅장해지는 한편, 막막한 기분이 들기도 하다. 영화 <그래비티>에서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그 무엇도 예측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슴이 웅장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항상 우주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다. 이 세상에서 달님을 가장 우아한 존재라 여기는 나에게 우주는 신비의 어원이다. 푸른 별 지구를 내려다볼 수 있는 유일한 공간, 우주. 그런 우주를 더 알고 싶은 마음은 어쩌면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소개하는 오늘의 책 <우리 우주의 첫 순간>. 첫 장부터 어려워서 당황하고 말았지만, 대단한 사실은 쉽게 얻어지지 않는 법이다.

 

책 <우리 우주의 첫 순간>의 저자 댄 후퍼는 암흑물질의 최고 권위 연구자라고 한다. 암흑물질을 네이버 지식백과에 검색하니, '질량이 현재 우주 에너지의 27% 정도(물질의 85% 정도)를 차지하고 있으나, 빛을 내지 않아 보이지 않으며, 정체가 아직 알려지지 않은 물질'이라고 나온다. 볼 순 없으나 존재한다는 사실만은 명백하다니, 다소 소름 돋는 이야기지만 이런 것이 우주의 신비가 아닐까? 듣기만 해도 어렵고 알쏭달쏭 한 주제의 권위자가 쓴 책이라고 하니... 여러분도 어렵다고 쉽게 포기하지 않으시길 바란다!

 

지금의 우주는 아인슈타인으로부터 시작한다. 뉴턴에서 아인슈타인으로의 전환. 과학의 발전은 패러다임의 전환으로부터 야기된다는 철학자 토머스 쿤의 말처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출시(?) 됨에 따라 우주론은 큰 변혁을 맞이하게 되었다. 상대성 이론이 당연했던 세상의 진리를 비틀어준 덕분에, 본격적으로 우주의 신비를 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책 <우리 우주의 첫 순간>은 아인슈타인으로 시작해 빅뱅 이론, 물질과 반물질의 미스터리 및 암흑물질의 기원과 우주 급팽창 등 다양한 우주 담론들을 담고 있다. 저자는 그 모든 담론들을 하나씩, 큰 개념에서 작은 개념으로 내려가며 하나씩 설명해 나간다.

 

우주의 비밀이 궁금하다면, 어디선가 들어본 우주 관련 단어들을 자세히 알고 싶다면, 그리고 어려운 개념을 참고 견뎌낼 자신이 있다면, 책 <우리 우주의 첫 순간>과 함께 흥미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읽으며 우주의 신비 속에 젖어드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해나무 #해독단2기 #우리우주의첫순간 #댄후퍼

본 서평은 해나무에서 책을 지원받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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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리스트 카잘스, 나의 기쁨과 슬픔
파블로 카잘스 저자, 앨버트 칸 편자, 김병화 역자 / 한길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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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여행을 갔던 적이 있었다. 건축물을 좋아하는 나는 바르셀로나에 방문하여 가우디 투어에 참여했었는데, 당시 가우디의 화려한 건축양식만큼이나 인상적이었던 것이 있었다. 바로 카탈루냐의 독립 투쟁이었다.

스페인이라는 나라는 멀리서 보면,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즉, 하나의 나라가 나라로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목소리가 들린다. 아주 간절하고도 우렁찬 목소리가!


스페인의 카탈루냐 지역은 지금도 스페인에서 독립을 주장하고 있다. 잘은 모르지만 정치/경제적으로 중앙정부와의 갈등을 빚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그 자신만의 문화를 유지해나가려 한다는 것 정도로 알고 있다. 이 같은 갈등은 꽤 오래전부터 있어왔으나,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않고 있는 문제로 스페인 내부에서는 꽤 큰 이슈로 다뤄지고 있다.

파블로 카잘스 역시 카탈루냐의 문화권에서 성장한 사람이다. 그의 삶 속에는 카탈루냐에 대한 깊은 애정과 사랑이 자리하고 있다. 전 유럽, 나아가 미국에까지 미치는 영향력 있는 첼리스트로서의 삶 속에서도 카탈루냐는 늘 그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 정신이 그의 삶 속에도 고스란히 녹아있었던 것 같다.



예술가이지만, 예술가이기 전에 사람이 되고자 했던 카잘스. 그의 삶은 인류애로 점철되어 있었다. 예술이 삶과 떨어져서는 안된다고 믿으며 그 속에서 끊임없이 번뇌했던 그는 단지 예술가라 칭하기엔 철학자적인 면모가 두드러져 보였다. 그런 사려깊음과 섬세함이 그의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모이도록 만든 거대한 동력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그는 글에서 자주 자신에게 긍정적인 배움을 선사한 사람들을 자주 언급했는데, 첼리스트로서 자신이 명성을 얻기까지 그의 곁에서 조언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이들에 대한 고마움을 평생 안고 살아간 듯 했다. 관계의 소중함, 그 가치를 아는 사람에게는 분명 좋은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은 시대를 관통하는 진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삶에는 그를 지지하는 좋은 동료들이 늘 함께 하였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며, 이타적이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몸에 배어있는 카잘스의 의외의 면모를 보는 것이 무척 재미있었다. 연주 투어 중 투어 매니저가 계약했던 것보다 많은 금액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혼쭐내준 사건이나, 유료 리허설 관습을 타파하겠다는 마음으로 리허설 현장에서 연주를 거부하고 이미 관객이 가득 들어찬 연주회장에서 지휘자가 음악을 폄하하는 이야기를 했다는 사실에 격분하여 연주회장을 뛰쳐나가는 등 카잘스는 자신이 고귀하게 여기는 음악이 자본의 노예로 전락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지 않은 정의의 사도였던 것이다! 이는 카잘스의 음악을 향한 진심을 잘 드러내는 행위였다 생각한다. 자신이 사랑해마지 않는, 평생의 동반자 음악이 자본의 놀이에 전락되는 것을 지켜만볼 수 없는 마음, 음악을 통해 소통하는 관객들에 대한 존중이 그에게는 무척이나 중요한 요소였던 것이다.


어린 나이에 우연히 만나게 된 첼로에 마음이 뺏겨, 평생을 첼로와 함께 살아갔던 파블로 카잘스. 사실 이번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지만, 책을 읽으며 그의 매력에 푹 빠져버리고 말았다. 자신도 궁극적으로는 한 명의 육체노동자였다 말하는 그를 보며, 예술인이기 전에 한 명의 사람으로 존재하겠노라 다짐하는 그를 보며 예술가는 뭔가 일반인과는 다를 것 같다 여겼던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어딘가 모르게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을 것 같은, 그리고 동떨어져 있어도 괜찮을 것 같은 예술가를 직업을 기여이 현실 안에 끌어들인 그의 삶의 태도는 나를 퍽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아름다운 삶을 살았던 것 같다. 언젠가 한 번쯤은 살아보고 싶은 삶. 음악에 푹 빠졌던 삶이자 혼자가 아닌 함께의 의미를 알았던 삶으로서 파블로 카잘스의 인생은 참 아름다웠다. 책 <첼리스트 카잘스, 나의 기쁨과 슬픔>을 읽으며 아름다웠던 그의 삶을, 그의 이야기를 만나게 되어 감사했다.



본 서평은 한길사에서 책을 무상으로 지원받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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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기억 - 철학자 김진영의 아포리즘
김진영 지음 / 한길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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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의 힘이 점점 강해지고 있는 요즘인 것 같다.

한 문장, 한 문장에 담긴 의미를 곱씹으며 글을 읽어내려가는 것이 자연스러워진 지금이 좋다.


장황한 글만이 좋은 글이라고 생각했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담담하게 끝맺는 마침표가 더욱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책 <사랑의 기억>을 만났다.

책 <사랑의 기억>은 철학자인 저자가 남긴 삶과 사랑의 아포리즘이라고 소개된다. 아포리즘? 아포리즘이 무엇일까? 낯선 단어였다. 찾아보니 깊은 체험적 진리를 간결하고 압축된 형식으로 나타낸 짧은 글이라고 한다. 멋진 의미였다. '깊은 체험적 진리'라는 표현은 아무나 가닿을 수 없는 표현인 것 같다. 나의 체험을 감히 깊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상당한 자신감 없이는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죽기 전에 아포리즘을 한 편이라도 써볼 수 있을까?


추억의 밖

동물원에 갔다.

곰을 봤다.

시멘트 우리 안에서

곰은 쉬지 않고 원을 그리며 돌고 또 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행동이 곰에게는 반복일까.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행동이 내게는 추억이건만.

곰아, 멈추어라. 멈추고

차라리 시멘트 장벽의 높이를 정확히 재거라.

나는 곰에게 충고한다.

곰이 빙빙 돌다가 나를 바라본다.

얘야, 곰이 묻는다.

네가 사는 밖은 정말 여기와 다르니?

(pp. 63)

저자가 동물원에 방문했었던 모양이다. 그때 한 마리의 곰을 본 것이겠지. 그 곰이 뱅글뱅글 원을 그리며 돌고 있었나 보다. 원을 그리며 돌고 있는 곰을 불쌍이 여겼던 저자는 곰에게 충고한다. '그렇게 돌고 있지만 말고 답답한 공간을 탈출해!' 그런 저자를 빤히 보던 곰은 말한다. '너부터 탈출해. 그 답답한 공간에서!'

이상하게 유독 이 글에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항상 그런 것 같다. 상대방에게는 늘 객관성을 유지하며 현명한 대안을 제안하는 듯하지만, 정작 자기 자신에게는 한없이 부족하고 좁은 시야를 가지고 있다. 남에게 훈수를 두기 전, 지금 자기 자신의 상황을 먼저 돌아보라는 따끔한 곰의 질문에 마음이 쑤셨다. 나나 잘하자고!


+ 이 밖에도 책에는 아우를 기리는 글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었다. 아마..., 아우를 먼저 보낸 것 같다. 그 상심의 글들이, 덤덤한 듯 사무치는 글들이 참 마음이 아팠다. 누군가를 먼저 떠나보낸 경험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를 먼저 떠나보내는 일에 익숙해질 수는 없는 것 같다. 언제나 처음처럼 아프고 고통스러운 일. 어쩌면 책 <사랑의 기억>은 저자가 아우에게 쓰는 편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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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명의 완벽주의자 - 내 안의 완벽주의로 더 행복한 나를 만드는 법
이동귀.손하림.김서영 지음 / 흐름출판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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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주의. 완벽주의라는 용어를 들으면 가장 먼저 거부감이 느껴진다. 견고하고 틈이 없을 것 같은 느낌. 완벽주의자와 융통성은 결코 어울리지 않는 단어인 것 같다. 그래서 그런가, 나에게 완벽주의는 꽤 부정적으로 느껴지는 용어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완벽'하기를 꿈꾼다. 자신이 하는 모든 일에서 완벽할 수 있기를. 스스로도 인정할 수 있을 정도의 완벽함을 갖추고자 노력한다. 완벽으로부터 오는 스트레스는 성장을 위한 필연의 거름이라 생각하며, 지친다는 생각은 사치라고 여기며.

 

나 역시 예외는 아니다. 완벽주의를 꺼려 하면서도 완벽하고 싶어 한다. 특히 내가 주도하는 일 앞에서는 밤낮이 뒤바뀌는 것도 모를 정도이다. 문장 하나하나를 곱씹으며 단어 하나를 두고 몇 시간을 고민하기도 한다. 그 과정이 너무 괴로워서 대충 넘길까 하다가도 이내 '아니지. 나중에 후회하게 될 거야.'라는 생각에 마음을 돌려 노트북 앞에 앉는다.

 

그저 과제물의 완성도를 높이겠노라, 가벼운 욕심으로 치부할 수 없는 나의 집착은 완벽을 좇는 나의 자아였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완벽주의자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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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네 명의 완벽주의자>는 한국인의 2명 중 1명은 완벽주의자라는 놀라운 연구 결과를 제시한다. 나와 같은 완벽주의자들이 이 땅 위에 상당히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위안이 될 법도 한데, 나에게는 위로보다 씁쓸한 감정이 먼저 찾아왔다. '아, 나처럼 완벽함을 추구하며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이 있구나!'

 

 

재미있는 것은 일부 완벽주의자들이 보이는 아이러니한 행동 중 하나가 꾸물거림이라는 것이다. (pp. 45)

 

완벽주의자들은 자신이 맡은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해내고 싶어 한다. 빠르게 일처리를 하는 대신 실수를 하는 것보다 조금 더디더라도 완벽하게 해내고 싶어 한다. 이 같은 마음이 극단적으로 발현된 것이 바로 '꾸물거림'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그들의 꾸물거림은 결이 조금 다르다. 귀찮고 게을러서, 오늘의 일을 내일로 미루는 꾸물거림이 아니라 정말 잘하고 싶어서, 잘하고 싶은 마음에 두세 번 검토하다 발생하는 꾸물거림인 것이다.

 

완벽주의자들은 자신의 실수를 용납하지 못한다. 실수는 태초부터 고려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태도는 악순환을 유발하는 계기가 된다. 절대 실수하면 안 된다는 강박이 스스로를 구속하는 완벽한 태도를 강요하게 된다. 완벽하고자 하는 마음이 너무 강하게 발현되면, 행위를 시작하기 전부터 고려 사항들이 많아진다. 하지만 오탈자가 발생하는 것이 두려워서 거듭 문서를 검토했음에도 미처 수정되지 않은 오탈자를 마주한 순간, 모든 것은 물거품이 되어버린다. 실수할까 봐 불안한 상태가 지속되고 불안은 부정적인 결과를 예상하게 한다. 모든 것을 빈틈없이 해낼 것만 같았던 완벽주의자가 오히려 주저하고 머뭇거리며 예기불안의 상태에 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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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네 명의 완벽주의자>는 이 밖에도 완벽주의자의 특성들을 통찰력 있게 관찰해내었다. 그들의 특징적인 사고와 행동, 그로부터 야기되는 문제점들을 일목요연하게 집어내며 완벽주의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이를 더욱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지 그 방안까지 살펴주고 있다. 행복한 완벽주의자로 나아가는 일종의 가이드북처럼 말이다.

 

책을 읽으며 나 자신이 생각보다 더, 완벽주의자에 가깝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이왕 이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이 완벽주의 성향을 나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십분 활용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겼다. 적당한 완벽주의와 적당한 여유가 적절히 어우러진 사람. 프로페셔널한 모습과 인간적인 모습이 두루 묻어나는 사람. 책에서 말하는 행복한 완벽주의자가 되는 것을 추구하는 삶, 지금 당장 변화하기는 어려워도 시도해볼만한 도전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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