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에 만나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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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문학 수업을 들으며, 처음으로 남미 소설을 읽게 되었다. 보르헤스의 '불한당들의 세계사'라는 책이었는데, 뭔가 흥미로워 보이는 제목과 달리 소설의 내용이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이해가 안 되니, 오히려 낯설게 느껴졌다. 그래서 포기를 했었다. 심지어 내 인생엔 라틴계 문학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마르케스라는 작가가 나를 찾아왔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콜롬비아 출생의 작가로, 19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남미를 대표하는 유명 작가이다. 책 <8월에 만나요>는 마르케스의 유고 소설로, 그가 세상을 떠난 이후 아들들에 의해서 출간되었다. 그는 죽기 전 치매를 앓으며 기억력이 감퇴되었으나, 작품 활동에 꾸준히 정진하였다. 하지만 지난 그의 작품들과 비교했을 때, 자신의 마지막 원고가 완성도 측면에서 아쉬움이 많았던 것 같다. 따라서 죽기 전 자신의 가족들에게 해당 원고를 절대 출간하지 말라는 당부를 했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몇 해 동안은 그의 유언이 잘 지켜졌다. 하지만 세월이 흐른 후, 두 아들은 결심한다. 아버지의 투쟁과도 같았던 마지막 원고를 세상에 내보이기로 결심한 것이다.

책 <8월에 만나요>의 외양은 봄을 알리는 듯한 분홍빛 표지와 연보라색 속지가 어우러져, 굉장히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어딘가 나들이를 갈 때 들고나가면 좋을 것 같은 그런 가벼운 느낌이었다. 거장의 작품이라기엔 귀여운 이 소설은 과연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을까?

소설의 주인공은 중년의 여성이다. 그녀는 유언에 따라 돌아가신 어머니를 섬에 묻었고, 이후 매년 8월, 어머니에게 꽃을 올리러 섬을 방문한다. 섬까지 가는 길은 쉽지 않다. 따라서 1박 2일의 일정을 그녀는 혼자 소화하고 있다.

지금껏 그녀는 일탈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특히 남자관계에 있어서만큼은 문제가 없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진정으로 혼자가 되자, 그녀는 자신의 마음속에 타오르던 불꽃을 발견한다. 어느덧 매년 이름 모를 다른 남자와 하룻밤을 보내는 것이 1년을 살아가는 힘이 되어 버린 아나 세바스티안 바흐.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오직 하룻밤이다. 이름도 필요 없으며 흔적을 남겨서도 안 된다. 누구에게도 들켜선 안 된다.

하지만 천성을 버릴 순 없었던 것일까? 섬에서의 하루가 지나고 집에 돌아간 이후, 혹 남편이 자신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될까 조마조마하는 모습을 보인다. 처음에는 자연스럽게 대처했지만, 관계에 빠져들수록 죄책감도 커져 오히려 남편을 추궁하기에 이른다. 일상이 위태로워질수록 섬에 대한 집착은 심해져 간다.

주교였던 남자와의 밤을 잊지 못하고 그와의 인연을 포기한 스스로를 원망하게 될 때쯤, 그녀는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더 이상 남자를 방으로 들이지 않겠다고 결심한 순간, 그녀는 자신에게 벌어진 이 모든 일의 어렴풋한 비밀을 알게 된다.

책 <8월에 만나요>의 주인공 아나 세바스티안 바흐는 현실과의 연결고리가 사라진 곳에서 진정한 자유를 느낌과 동시에 끊임없이 죄책감을 느끼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 작가는 이런 그녀의 행동을 '운명'이라는 키워드로 설명한다. 어머니가 섬에 묻히고 싶어 했던 이유와 자신이 섬에서 겪은 일들이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암시를 던지는 것이다. 책의 논점이 바뀌는 순간이다.

마르케스는 이 소설을 통해 무엇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일까? 작품 해설에 따르면, 그는 살아생전 자신의 어머니와 깊은 유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어머니를 기리는 마음을 담아 마치 연결고리처럼, 생과 죽음을 잇는 이야기를 남긴 것은 아닐까 추측한다.

책을 다 읽은 이후에도 물음표가 남지만, 결론적으론 재미있게 읽었다. 특히 마르케스의 시적인 표현과 사건을 전환시키는 반전이 무척 흥미로웠다. 기억력이 감퇴되고 건강이 좋지 않다고 한들, 무기는 여전히 그의 두 손에 쥐어져 있었다. 거장은 거장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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